카이스트 나와 "돼지고기 판다"는 이 남자의 사연

조회수 2019. 4. 12. 18: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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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각 김재연 대표(28)는 2016년 유학 날짜를 확정해 놓고 재미삼아 '돼지고기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카이스트와 돼지고기. 언뜻 들으면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다. 김재연 정육각 대표(28)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중학교를 조기 졸업하고, 한국과학영재학교를 거쳐 카이스트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한 엘리트다. 미국 유학 준비까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레 창업, 그것도 전통산업으로 알려진 축산 유통 분야를 선택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현재 신선고기 온라인 유통업체 정육각은 지금 도축 후 1~4일 신선육이라는 새로운 사업 카테고리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초신선 유통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정육 분야에선 비교적 발 빠르게 차별화 브랜딩 전략을 펼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현재까지 투자 유치액만 50억 원에 이른다. 연매출은 100억 원을 바라본다.

출처: 인터비즈 임현석, 이슬지
(김재연 정육각 대표(28))

그가 창업을 결심한 시점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도 말에 미국 국무성 장학생에 선발된 그는 2016년 8월을 유학 날짜로 확정해 놓고 남은 시간동안 재미있는 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고기를 유독 좋아했던 김 대표는 친구와 함께 ‘돼지고기 여행’을 떠났다.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에 맛있다고 소문난 돼지고기 집을 찾아다녔다.


이 고기 저 고기 다 먹어봤던 김대표는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갓 잡은 돼지는 맛이 어떨까?' 도축장에선 소량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해서 덜컥 40-50인 분에 달하는 돼지고기를 구매했다. 열심히 구워먹어도 워낙 많은 양이기에 냉장고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남은 고기를 주변 친구들한테 팔기도 하고 동네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런데 김대표에게 하나같이 돌아왔던 말. “이 고기 대체 어디서 사?”. 그렇게 정육각이 시작됐다.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어딘가 신선한 이 사람을 만났다.

낡은 업종이라는 인식 있는 축산업, 인재 영입에 어려움..

출처: 정육각 공식 유튜브
(항정살)

Q. 소위 말하는 ‘엘리트코스’를 밟았습니다. 축산업에 뛰어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는지요?

김대표 :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식이 창업 전선에 뛰어든다고 하면 우려하는 부분이 있으세요.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안정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죠. 그런데 대학 시절에도 1년 정도 휴학하고 친구랑 컴퓨터 자연어처리 사업에 뛰어든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사업을 시작한다는 사실 자체에는 걱정을 안하셨지만 축산업이라는 업 자체에 대한 우려를 하시더라구요. 아무래도 제가 축산업의 ‘ㅊ’도 몰랐으니까. 그래도 ‘하다가 지치겠지 뭐’ 하시고 열심히 응원하셨어요.

Q. 축산업은 낡은 업종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사업 운영 시 고정관념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은 없는지요?

김대표 : 사실 축산업을 향한 편견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어요.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할 생각도 없고요. 다만 업에 대한 편견으로 젊은 인재를 영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죠. 한번은 팀에 들어올뻔한 여성분이 있었는데 축산 스타트업이라 하니 예비 시어머니가 말리시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회사로 데려오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에게 고기부터 보내요. ‘아 이정도면 충분히 다른 고기구나. 가능성이 있구나.’ 생각이 들게끔 하려고요.

'초신선 돼지고기'라는 금기 구역을 건드리다

사업 초기 8개월 정도는 고기 손질부터 포장까지 모든 과정이 김 대표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축산업은 기존 관행이 강한 보수적인 업계로 통한다. 그가 신선육이라는 시장을 열고, 이를 위해 고기를 직접 받으려고 할 때에도 업계 반응은 '잘 알지도 못하는 얼치기가 얼마나 버티자'였다고. 그는 직접 가공부터 포장 등 밑바닥부터 배우며 축산업에 대해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본인 스스로 축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갔다.

출처: 인터비즈 임현석, 이슬지
(임현석 기자와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재연 대표.)

Q. 축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고 했는데, 사업 초기 운영에 어려움은 없었는지요?

김대표 : 사실 ‘초신선’이라는 컨셉 자체가 축산업에서 금기시 하는 단어에요. 기존 업자들도 굳이 건드리지 않는 부분이죠. 금기시 했던 부분을 들춰냈다는 것에서 욕도 많이 먹었죠.


실제로 정육각에 대한 기사가 처음 났을 때에 댓글 중 90%가 악플이었어요. 처음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악플 주인의 블로그에 소심하게 들어가보니 대부분이 정육업자더군요. 사실 정육각이 많은 부분 업계의 금기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존 업계에선 불만이 있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예컨대 제가 사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재래시장에서 도축날자를 적어놓지 않는 경우도 흔했죠. 요샌 도축일자를 적어놓는 방향으로 업계가 많이 바뀌었죠.

Q. ‘초신선 돼지고기’는 그동안 왜 금기시 됐을까요?

김대표 : 축산업에는 ‘카더라’가 많습니다. 아마 ‘돼지고기는 숙성이 필요하다. 갓 도축한 돼지고기는 딱딱하다’라는 카더라를 그냥 믿었더라면 지금의 사업 모델은 없었을 거에요. 오히려 근본없이 시작한 부분. ‘뭐 어찌됐든 신선할 때 먹으면 맛있는거 아니야?’라는 시작점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한번은 축산업에 20-30년 몸을 담고 계신 조합장님과 초신선 돼지고기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조합장님은 돼지고기가 ‘초 신선 상태일 때에 고기가 단단해서 못먹는다. 숙성해야 한다’ 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제 나름대로 돼지에 관한 논문도 읽고 열심히 공부하고 갔죠. 초신선 돼지고기에 대한 열띈 토론을 하다 조합장님이 “그럼 한번 먹어보게나”하시며 고기를 떼어주셨죠. 저는 초신선 고기가 더 맛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초신선 고기 유통구조는 어떤 모습일까.

기존 축산업의 유통구조를 ‘농장-도축장-육가공장-도매-소매-소비자’로 봤을 때 우선 가축들이 각 농장에서 화물트럭에 실려 각 도축장으로 이동한다. 이후 도축장에서 도축한 육류를 육가공업체에 배송한다. 육가공업체에서 이를 분류한 뒤 대형 도매업체를 통해 정육점이나 마트와 같은 소매점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소비자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빨라야 7일이다.


김 대표의 관심은 유통기한 보다는 제조일자에 있었다. 도축한지 1~4일 이내의 돼지고기라는 정육각만의 까다로운 기준. 이를 위해 기존의 축산물 유통 단계를 대폭 단축해야 했다. 현재 정육각은 육가공 작업을 거친 육류로 자체적인 세절 작업을 진행한 후 온라인 몰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여기에 생산 시스템 효율화를 위해 정보기술(IT)를 접목했다. 실시간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육류 가공부터 작업 순서, 포장, 배송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화시스템 하에 이루어진다. 현재 정육각의 직원 수는 26명. 전체 직원 중 약 30% 이상이 시스템 개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다.

샛별배송, 당일배송, 신선식품 시장 경쟁 치열... 오히려 정육각에는 호재

Q. 온라인 신선 식품 시장이 치열해지는 상황입니다. 돼지고기, 닭고기, 계란, 우유 등 정육각의 품목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요. 혹시 타격은 없나요?

김대표 : 아니요. 오히려 정육각에는 현 상황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어요. 사실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식재료가 정말 신선할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거든요. 온라인 신선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계몽시키기가 가장 어려워요.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마케팅 비용이 필요하고요. 그런데 마켓컬리나 타 대형업체에서 높은 퀄리티의 신선식품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다른 좋은 곳은 어디있나’ 하고 더 관심을 갖고 보시더라고요. 처음에 마켓 컬리가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이었을 때에 그저 경쟁자라고 생각했지만 정육각과는 다른 분야더군요. 오히려 마켓컬리를 시작으로 신선식품 배송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온라인 육류 시장이 확대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Q. 정육각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가 있다면?

김대표 : 현재도 빠른 배송∙당일 배송∙새벽 배송을 하고 있지만 저는 만족스럽지가 않네요. 초신선 돼지고기를 파는 것과 동시에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중이에요. 온라인 배송 업체의 특성상 ‘지금 고기가 바로 먹고싶다’라는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지금 고기가 먹고싶을 때 여러 선택지가 있잖아요 1번 고기집에 가서 먹어야지. 2번 정육점이나 마트에 가서 고기를 사와야지. 그런데 3번. 정육각에서 주문해야지로 이어지는게 쉽지가 않네요.

정육각의 올해 목표는 '신선한 육류=정육각'이라는 브랜드 락인(Lock-in)

출처: 인터비즈 임현석, 이슬지
(김재연 정육각 대표의 사진)

Q. 올해 정육각만의 목표가 있다면?

김대표 : 정육각 상품 퀄리티는 제가 원하는 데 까지 왔어요. 성남에 있는 공장 운영도 안정화 됐고요. 정육각이 원하는 스펙의 돼지를 키울 수 있는 양돈 농장의 환경도 조성했어요. 처음에는 신선도에만 집중을 했다면 현재는 양돈 농장에서 사료는 어떤 제품을 쓰는지 항생제는 어떻게 맞추는지 세심한 부분까지 관리하는 수준으로 올라왔죠.


올해는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할 예정이에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육각을 한번쯤 먹어보게끔 하는 것. 신선한 고기 하면 정육각을 직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포지셔닝을 하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Q.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

김대표 : 잠실이나 반포쪽에 정육각 오프라인 플래그쉽 스토어를 오픈할 예정이에요. 단순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매출을 내겠다? 아닙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오프라인 매장으로 정육각이라는 브랜드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전국 물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고 마지막이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매출 증대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신선만큼은 정육각이 최고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네요.

정육각은 고공행진 중... 시장에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즉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다

김대표는 “새로운 게 없어 보이는 시장에서 혁신적인 것이 불쑥 튀어나온다”라고 말했다. 전통산업이던 축산업의 정의를 바꾸는 정육각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정육각은 지금 고공행진 중이다. 지속적으로 월평균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또 사업 초기 정육각의 재구매율이 30%였다면 현재는 80%가 넘는 수준이라고.


그가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인터뷰 말미에 들을 수 있었다. 김 대표가 7~8살 때 살던 곳이 지리산 부근 산골 마을이었다고. 당시만 해도 그가 살던 마을에서 갓 잡은 돼지고기를 먹는 문화가 남아 있었던 동네였다. 그는 당시 마을에서 나눠먹던 고기맛이 기막혔다는 기억만을 어렴풋이 품고 있었다고.


"예전엔 제가 먹던 게 막연히 흑돼지라고 생각했는데, 전국 어딜 돌아도 흑돼지 맛과는 달랐어요. 어렸을 때 먹었던 게 초신선육이었다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 그래서 신선육이 맛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고요."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추출할 줄 알았다. 바로 '한국의 식자재 유통 과정이 음식을 오히려 맛없게 만든다'는 불만이었다. 그는 이 문제의식을 빠르게 변화하는 IT 및 유통 역량에 더해 어엿한 사업모델로 구성했다. 그는 지금도 음식을 맛없게 만드는 유통 구조에 대한 문제를 짚어내고 있다. 다음엔 쌀, 또 다음엔 토마토. 그는 식자재를 어떻게 유통해야 맛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인터비즈 이슬지,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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