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100만원" 넘는 이유

조회수 2019. 3. 30. 11: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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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1000원을 지불할 때마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고통 수준은 똑같다. 하지만 마케팅에선 다르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1000원의 가치와 1000원을 지불할 때 체감하는 가격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선 체감 가격을 낮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1000원들이라도 훗날 가치는 각각 다르게 될 것이다)

유통업체들은 후불 및 할부 결제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구매 의향을 현격하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화폐에는 시간 가치가 있기 때문에 미래에 지출할 금액은 현재와 비교해봤을 때 더 낮은 가격으로 체감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이자율을 5%라 가정하면 1년 후 1억 원의 현재가치는 약 9524만 원(1억/1.05)으로 낮아진다.  


또 다른 근거도 있다. 모든 종류의 손해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지출을 아까워한다. 하물며 지금 이를 ‘당장’ 느껴야 하는 그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회사가 결제를 조금이라도 미룰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한다면, 소비자는 당장 지갑을 열어야 하는 심적 부담에서 벗어나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지출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또 다른 해법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소비자들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돈을 동일하게 간주하지 않는다. 자금 원천과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심리적 회계 기준을 적용한다. 행동경제학 연구로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73) 미국 시카고 대학교수의 말을 빌려와 쉽게 표현하자면, 각각의 돈뭉치마다 각기 다른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다. 집 살 돈, 여행 경비, 학비, 공돈, 저축액처럼.

출처: 동아일보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 <넛지>라는 책을 쓴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무척 유명하다.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심리적 회계 기준을 마케팅에 가장 잘 활용한 사례가 바로 스마트폰이다. 만일 스마트폰이 단순히 전화를 걸고 받는 '핸드폰'의 연장선으로서 마케팅이 되었다면 지금처럼 온 세상을 휩쓸지는 못했을 터다. 


'전화기에 쓸 돈'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돈뭉치에는 100만 원 씩이나 되는 금액이 들어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창기 스마트폰은 '전화기'로 시장에 접근하지 않았다.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는 조그만 컴퓨터이자, 가치 있는 오락기기로 포지셔닝을 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지출할 금액을 전화기 주머니가 아닌 컴퓨터나 문화, 오락에 쓸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1000달러(112만 원)가 넘는 스마트폰을 사겠다고 사전 예약까지 신청하는 사람이 차고 넘칠 정도다.

출처: 아이폰 인스타그램
(애플의 신형 아이폰 '아이폰 XS 맥스(사진)'는 미국에서 출고가 1099달러(125만 원)에 출시됐다. 향후 한국 시장 출시 시 512GB 모델의 경우 출고가가 200만 원을 넘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디폴트 옵션'을 활용해 구매 확률 높여라

한 이탈리아 통신회사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보자. 당초 이 회사에 서비스 해지를 요청하는 고객들에 대한 콜센터 직원들의 응대 멘트는 “서비스를 유지하시면 100회 무료 통화 보너스가 제공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를 “기존에 적용받고 계셨던 100회 무료 통화 보너스는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로 바꾸자 가입자 유지율이 상승했다. '무료 통화'라는 혜택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자, 그 '공짜' 혜택을 포기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 사례의 '100회 무료 통화 보너스'처럼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신청되는 선택 사항, 즉 '기본값'을 마케팅에서는 ‘디폴트 옵션’이라고 한다. 디폴트 옵션은 소비자가 구매하기 전부터 스스로 해당 옵션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체험 가치가 더 높아진다.


디폴트 옵션이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은 의사 결정자들이 선택 사항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혼란스러워할 때, 혹은 상충되는 요소들로 인해 갈등하고 있을 때다. 특히 선택 폭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적합하다. 수많은 선택으로 인해 갈등과 고민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단, 디폴트는 반드시 대부분 사람들에게 최적의 선택이 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이를 교묘히 적용하여 고객들을 오도하려 했다가는 결국 불신으로 인한 역효과만 낳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지나치게 많은 선택 사항은 금물

디폴트 옵션 제공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지나치게 많은 선택 사항’을 제공하는 건 금물이다. 선택의 폭이 너무 넓으면 소비자 구매 확률은 오히려 줄어든다.


고전적인 실험을 통해 살펴보자. 24가지 잼 시식회를 연 식료품 매장들과 6가지 잼 시식회를 연 식료품 매장들의 고객수와 매출을 비교했다. 쇼핑객들은 더 다양한 잼을 먹어볼 수 있는 매장(24가지)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실질적 매출은 6가지 잼만 시식할 수 있었던 곳이 5배 이상 높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형 매장 내 상품 구성은 두 가지 측면에서 마케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첫째, 선택의 폭이 너무 많아 소비자들이 선호 옵션을 찾기 더 어려워진다. 이는 실질적 구매 결정에 오히려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구색을 통해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옵션마다 ‘부정적’ 측면이 오히려 부각되어 보일 수 있다. 상품별 기능을 비교함으로써 다른 상품에서는 제공되나 특정 옵션에서는 빠져 있는 선호 기능들을 더욱 극명히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옵션 수를 축소하면 소비자들은 더 쉽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도 더 큰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명백하게 열등한 옵션을 함께 제공하라

경제학은 모든 것에 가격이 있다고 가정한다. 개인별로 지불 의사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 수준의 최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등식은 마케팅의 제품 포지셔닝 방식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진다.


한 보석상의 사장은 위탁 판매 중이던 터키석 판매가 부진하자 디스플레이를 화려하게 바꾸고, 영업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하지만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사장은 해당 제품 가격을 절반으로 낮추기로 결정하고 직원에게 'x1/2’란 메모를 남기고 출장을 떠났다. 그 사이 메모를 본 직원은 가격을 두 배로 올리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제품을 판매했다. 그러자 판매량이 급증했다.


위 사례에서 고객들은 의사결정 기준을 가격 수준의 최대치에 두지 않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높아진 가격을 근거로 보석 품질과 등급이 높을 거라 추론함으로써 해당 상황에 국한된 지불 의사가 생겨났던 것이다.

(보석상이 100만 원 손해다)

상대적인 포지셔닝의 힘은 왜 마케터들이 소기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종종 명백하게 열등한 소수의 옵션을 함께 제공하는지를 잘 설명한다. 이러한 제품은 실질적으로 팔리진 않지만, 매장에서 주력 판매 종목으로 설정한 상급 제품 판매 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레스토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와인은 해당 매장에서 두 번째로 고가이거나, 두 번째로 저가인 경우가 많다. 두 번째로 비싼 와인을 선택한 고객들은 매우 특별한 와인을 주문했다는 자긍심과 함께 자신의 소비가 극도로 과도한 지출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두 번째로 저렴한 와인을 선택한 고객들 역시 최저가의 저급 와인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을 마신다는 상대적인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을 위해 옵션을 포지셔닝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의 디스플레이 방식과 관련이 있다. 식료품점에서 아이스크림을 구매하려는 고객의 구매 의사결정 과정은 어떤 순서로 이루어질까? 맥킨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객들은 아이스크림을 살 때 브랜드를 가장 먼저 확인한다. 그다음에는 맛을,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가격을 따져본다.


이러한 사고 순서를 이해하고 소비자 선호에 따라 제품을 진열하면 고객 만족감이 높아져 가격을 기준으로 구매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적어진다. 상점 주인은 이윤이 많이 남는 고가 제품을 판매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 가격 순으로 상품이 진열된 경우가 매우 드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가격을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 품목들도 있다. 자동 온도조절장치와 같은 품목은 소비자들이 일반적으로 제일 먼저 가격을 보고 그다음으로 기능을 본다. 브랜드는 가장 마지막 고려 사항이다. 물품 진열 방식은 그에 맞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출처: 스포츠동아
(홈플러스 스페셜)

마케터들은 비이성적 사고가 소비자 행태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인지해왔다. 행동경제학은 이러한 비이성적 사고의 예측 가능성을 증대시킨다. 상품 및 서비스 구성의 작은 변경이 소비자들의 대응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적은 비용으로 막대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54호
필자 네드 웰치, 맥킨지 컨설팅 사무소 캐나다 토론토 지부 경영 자문
인터비즈 권성한, 박은애 정리
inter-biz@naver.com

*미표기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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