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인양품' 회장이 '한국 청년'에 주목한 사연

조회수 2019. 3. 25. 22: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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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17년 11월의 어느 날. 도쿄 이케부쿠로의 한 대학교 강연장에 무인양품(MUJI)이 매년 개최하는 ‘양품 콘퍼런스’가 열렸다. 1년에 한 번, 가나이 마사아키(金井政明·60) 회장을 비롯해 파트장급 매니저들이 모두 모여 회사의 글로벌 전략을 논의하고 리더십을 점검하는 자리다. 이 해의 행사에는 특이하게도 한국인 연사가 초대돼 ‘브랜드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는 명문대학 교수도, 컨설턴트나 럭셔리 브랜드 담당자도 아니었다. 서울 홍대 앞, ‘주차장 골목’이라 불리는 동네에서 가방 장사를 하는 이의현이었다. DBR 255호에 실린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로우로우(RAWROW) 이의현 대표(37))

‘가방 장수’는 이 대표가 본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2011년, 당시 서른 살이었던 그는 자본금 2000만 원을 가지고 캐주얼 가방 브랜드 로우로우를 만들었다. 이젠 가방장사라고 하기엔 덩치가 커졌다. 신사동 가로수길의 두 평 공간에서 시작해 지금은 오프라인 매장 5곳과 온라인 매장을 운영 중이다. 그래도 38년의 역사와 연 매출 3조 원을 자랑하는 무인양품에 비하면 구멍가게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무인양품 가나이 회장은 2016년에 한국 방문 당시 로우로우 매장과 사무실을 둘러보고 직접 이 대표를 연사로 섭외했다. 그는 ‘이 브랜드의 이야기를 무인양품 직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페이스북 팔로워들이 보내온 '나의 로우로우' 제품 사진)

무인양품 같은 존경받는 글로벌 브랜드가 왜 로우로우 같은 자그마한 브랜드에 주목했을까. 무엇을 배우고자 했을까. 이케부쿠로 강연에서 이 대표는 로우로우 고객들이 찍어 보내온 사진들을 보여줬다. 페이스북에 ‘당신이 가지고 있는 로우로우 제품을 보여주세요’라는 포스팅을 올리자 팔로어(follower)들이 자발적으로 올린 사진들이다. 무려 26개의 제품을 찍어 보낸 사람도 있었다. 이 대표는 청중에게 말했다. “이런 사진이 100여 장 왔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이럴수록 저희는 제품을 더 진실되게 만들려 노력하게 됩니다. 고객과도 우정을 쌓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출처: 로우로우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한 페이스북 유저가 로우로우 페이지에 리뷰를 남겼다.)

고객과의 소통을 이야기하는 브랜드는 많다. 고객의 충성심을 자랑하는 브랜드도 많다. 로우로우는 고객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 소통이나 충성이 아니라 그들과의 우정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동네 벼룩시장에서 이웃들이 만나 안부도 물으며 거래하듯이 이들 역시 고객과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무인양품 가나이 회장이 주목한 것도 이런 모습이다.

우정(友情)의 사업적 가능성을 본 '민우가방'

홍대 앞에 사무실 겸 매장을 내고 1년 반 정도 지난 2014년 7월, 군인 한 명이 팥빵을 사 들고 찾아왔다. 이 대표는 그가 누군지 어렴풋하게 기억해냈다. 처음 쿤스트할레 벼룩시장에서 가방 10개를 팔았을 때 그 중 하나를 사 갔던 청년이었다. 너무나 고마웠던 고객들이라 그 10명의 얼굴을 대충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었다. 청년은 그동안 군에 입대했고, 휴가를 나와서 홍대 앞에 놀러 왔다고 했다. 길을 지나가다가 로우로우가 번듯한 사무실까지 낸 것을 보고 반가워서 인사하러 들어왔다고 했다.

출처: 로우로우 공식사이트
(이의현 대표가 로우로우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했던 글)

감격에 찬 이 대표는 팥빵 사진과 함께 첫 가방을 팔았던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 “전역하는 날! 우리가 찾아가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가방 10개든, 100개든 원하는 대로 선물 드리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 옆에는 “#이화면캡쳐해두세요”라고까지 썼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민우가방 시안')

회사 공식 계정에 이렇게 큰소리를 뻥뻥 쳐놨으니 만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100개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이 청년이 원하는 가방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민우라는 이름의 청년이 군에서 전역하기로 예정된 날은 2015년 2월.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어떤 가방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청년은 건축에 관심이 많다며 노트북보다는 책과 노트 등을 넣을 수 있는 가벼운 토트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건축학에서 쓰는 많은 필기도구와 문방구들을 수납할 수 있도록 포켓이 많았으면 좋겠고, 휴대폰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가방 커버 위에도 포켓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출처: 로우로우 공식사이트
(실제 '민우가방'의 광고모델이 된 이민우씨)

그렇게 맞춤 제작된 가방이 완성됐다. 이 모든 이야기를 담아 ‘민우 가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시판에 들어갔다. 군에서 전역해 대학교 복학생이 된 청년을 불러다 약속대로 가방을 주고 광고 모델을 부탁했다. “민우에게 꼭 필요한 가방 만들어 선물해 주려다가 오히려 저희가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설명을 붙였다. 


SNS에서 이 이야기가 퍼지며 민우 가방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도 민우 가방은 로우로우에 고객과의 협업, 고객과의 우정이 가능하며, 이것이 사업적으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가 됐다. 진정성을 갖고 친구나 지인처럼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젊은 고객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출처: 로우로우 공식사이트
(실제 우체부 가방(좌) 로우로우의 메신저백 'R MESSENGER 902 POST'(우))

이후 로우로우는 가방을 주제로 여러 번의 협업 프로젝트와 스토리텔링을 진행했다. 아이를 출산한 직원을 위한 기저귀 가방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1970년대 우체부들이 쓰던 가방을 그대로 복각해 메신저백으로 만들기도 했다. 또 노숙인들을 위한 매거진 ‘빅이슈’와 협업해서 매거진 판매원들을 위한 조끼도 만들었다. 그럴 때마다 SNS를 이용해 적극 홍보한 것은 물론이다. 이런 맞춤 제작 상품들은 일반 범용제품과 비교해 큰 매출을 가져오지는 않았지만 친구 같은 브랜드로서의 이미지를 굳히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점잖은 복장에도 어울리는, 출퇴근할 때 들어도 튀지 않는 카메라 가방이 있나요?

2017년 9월, 로우로우 페이스북 페이지의 팔로어가 10만 명을 찍었다. 로우로우의 마케팅팀장 양안나와 전략팀장 김인혜는 특별한 이벤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민우 가방 사례 때처럼 누가 봐도 획기적이고 깜짝 놀랄 만한 선물이어야 마케팅적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어떤 이벤트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혼자의 힘으로 하기 힘든 일, 그게 뭐든 그대로 해주자.” 그리고 한 명이 아니라 팔로어 모두에게 공모를 받았다. 2017년 9월 25일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달았다. “10만 명 FAN이 생겼습니다. 이참에 한 분과 ‘협업다운 협업’ 하려고 합니다. 미친 척하고 당신이 원하는 뭐든 하려고 합니다.” 그런 다음 댓글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안해달라고 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팬이 보내온 카메라 가방 아이디어)

3주의 이벤트 기간 동안 반짝반짝한 아이디어와 상세한 설명이 담긴 댓글들이 달렸다. ‘휴가 나온 군인을 위한 가방’ ‘당뇨환자를 위한 혈당기 세트 가방’ ‘재난 대비용 가방’ ‘색소폰용 가방’ ‘도시농부를 위한 가방’ ‘육아가방’ ‘정장에도 어울리면서 따뜻한 울 장갑’ 등의 아이디어가 제안됐다.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그림을 그리고 그래픽 작업을 해서 시안을 올린 사람들도 있었다. 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로우로우 팀은 가장 많은 댓글 요청이 들어온 카메라 가방 안을 선택했다.


로우로우 팀은 먼저 카메라 가방을 요청한 7명의 페이스북 팔로어에게 연락을 했고, 참여 의사를 밝힌 3명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각자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어떤 카메라 가방을 사용했는지, 그 제품들의 장단점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로우로우가 만드는 카메라 가방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사용자들은 긴 설문지를 채우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그림을 그려 보내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여러 개의 샘플을 제작했다.


샘플들이 완성되자 이번엔 사용자가 함께 참여하는 기획 회의를 열었다. 수고비는 지급되지 않았고 그들의 팬심만 믿었다. 세 명의 사용자와 함께 로우로우의 전략팀장, 마케팅팀장, 제품디자이너와 생산 담당자 등 총 7인이 참석했다. 11월의 어느 날, 평일 저녁 7시에 시작한 회의는 예상외로 길어졌다. 밥도 먹지 않고 밤 11시까지 진행됐다. 세 명의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출처: 와디즈
출처: 와디즈

원하는 바는 각자 달라 의견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공감대는 찾을 수 있었다. ‘점잖은 복장에도 어울리는, 출퇴근할 때 들어도 튀지 않는 카메라 가방’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됐다. 까다로운 프로젝트였다. 다행히 직원 대부분이 DSLR 카메라를 구매하고 다뤄본 경험이 있으므로 필요한 기능에 대해 전반적인 이해도는 높았다. 로우로우 기존의 가격과 스타일을 유지하는 동시에 적당한 수납공간과 충격 방지 패드, 방수 커버 등을 갖춘 시제품을 제작했다. 거기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들도 더했다. 여행용 캐리어 손잡이에 끼워 넣을 수 있는 구멍, 벨크로로 탈부착 가능한 내부 수납 파티션, 핸드폰 충전을 위해 케이블을 뺄 수 있는 구멍이 더해졌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완성된 카메라 가방)

약 4개월간의 시간이 흘러 2018년 봄, 마침내 완성품이 나와 생산에 들어갔다. 물론 딱 그 3명의 패널에게만 주려고 로우로우 팀이 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10만 명’ 이벤트를 할 때부터 최대의 마케팅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SNS를 통한 홍보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한 홍보가 시작됐다. 


로우로우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거나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있는 제품, 색상이 특이한 한정판 제품 등을 팔 때 1차 판매 채널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즐겨 사용해왔다. 사회적 메시지가 있거나 스토리텔링이 재미있는 제품은 주로 카카오펀딩을, 카메라 가방처럼 ‘테크’ 이미지가 있는 제품은 와디즈(wadiz.kr) 플랫폼을 이용한다. 펀딩은 와디즈에서 4월10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됐다.

4주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469개의 카메라 가방이 판매됐다. 이를 통해 약 35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반 판매도 시작했다. 최초 제안자인 3인의 팔로어에게는 약속대로 가방 하나와 별도의 선물을 증정했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매거진 DBR
(로우로우 임직원)

카메라 가방 이벤트는 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고 업무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도 있었다. 김인혜 팀장은 3인의 사용자가 각자 직장일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로 회의에 참석했는데도 불구하고 밤 11시까지 열띠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고 말한다. 양안나 팀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10만 이벤트를 시작했을 때, 고객은 과연 우리가 무엇까지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벤트를 통해서 ‘로우로우와 함께라면 이런 캠페인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제품 관련 캠페인뿐 아니라 무형의 캠페인까지 우리 고객들과 함께해보고 싶다.”

양 팀장은 또 이렇게 말한다. “로우로우에 오기 전까지 여러 브랜드를 거쳐봤는데 매장에서 일하지 않으면 고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여기서는 내가 마케팅 포지션임에도 불구하고 매장에서보다 더 고객과 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브랜드는 앞으로 뭘 하더라도 고객과 쭉 함께할 것 같다. 그게 매력적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55호
필자 이연준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조진서 동아일보 기자
인터비즈 이슬지, 임현석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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