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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새로운 돼지들이 뜬다 "쌀보다 돼지고기..?"

조회수 2019. 3. 3.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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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농업생산액 '1위' 품목이 무엇일까? 주식인 쌀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답은 '돼지고기'다. 2015년까지는 쌀이었지만 2016년 순위가 바뀌었다. 비록 2018년 다시 1위 자리를 쌀에 내주기는 했지만 쌀의 독주를 막고 2년 연속 1위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돼지고기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돼지고기 소비량은 2013년 20.9kg에서 2018년 25.2kg(추정치)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돼지고기 삼겹살)

그렇다면 우리는 돼지고기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돼지고기는 대부분 한가지 종류다. 우리가 돼지 하면 떠올리는 하얀 살색을 가졌으며 덩치가 큰 편에 속하는 '바로 그 돼지'다. 이는 YLD(요크셔, 랜드레이스, 듀록) 삼원교배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빠르게 살이 찌는 이 종이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국내 소비자들은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나오는 수십 가지의 부위 중 삼겹살과 목살만을 구이용으로 주로 소비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삼겹살만으로는 공급량이 부족해 미국과 유럽에서 저렴한 냉동 삼겹살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일률적인 돼지고기 소비패턴은 한국인의 돼지고기 소비량에 비해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 2019년 돼지의 해를 맞아 우리가 언제부터 이러한 돼지고기 소비패턴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앞으로의 소비패턴이 어떻게 변할지 살펴보도록 하자.

70~80년대, 양돈산업의 급격한 발전

양돈산업의 발전이 초기 국내 수요를 충당하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서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우리가 돼지고기를 보편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1970년대 양돈산업의 대규모 성장 이후라는 점이다. 정부는 부족한 쇠고기의 대체재로 대규모 양돈, 양계산업을 육성하고자 노력했고, 1970년대 삼성을 필두로 재벌들이 대규모 기업형 양돈장을 만들어 돼지고기를 대량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또한, 단순히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것을 넘어 햄이나 베이컨과 같은 육가공식품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출처: 삼성물산 홈페이지
(삼성이 양돈사업을 시작했던 용인자연농원)

1980년대 들어서는 한국에도 과학적인 사육기술이 보급되기 시작한다. 수퇘지의 냄새를 잡기 위해 거세를 하고, 돼지에게 잔반이 아니라 철저하게 관리된 옥수수 사료를 주는 등 근대적인 돼지고기 생산이 시작된 것.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돼지고기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쇠고기 대신 국민들의 식탁을 점령해 나갔다. 더 이상 과거의 냄새 나는 돼지고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소고기처럼 생고기를 그대로 구워 먹을 수 있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소비자들은 육류를 소비하는 외식 행위에 돈을 쓰기 시작했고 기업형 양돈장은 체계적인 사육 방식으로 돼지고기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후 1990년대를 지나면서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맛을 가진 삼겹살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가족 외식이나 직장인 회식 시 단골 메뉴로 각광받게 됐고 그 인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률적인 돼지 사육과 돼지고기 소비

국내 양돈산업의 급격한 성장이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충분한 육류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양돈산업이 겪은 효율성 위주의 성장은 다양성의 상실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 국내에서 널리 사육되던 토종 흑색 재래돼지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이보다 더 빨리 몸무게가 불어나는 삼원교배종에 밀려 우리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또한, 빠르게 살을 찌워 삼겹살 부위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공장식 축사 방식이 모든 축산농가에 적용되기 시작하며 기르는 방식도 일률적으로 바뀌었다.

출처: 동아일보
(공장식 축사에서 구제역에 걸린 돼지들)

일률적인 품종을 기르는 일률적인 생산 방식이 가져오는 문제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발생했다. 우선, 생산의 측면에서는 어둡고 좁은 공장식 축사의 오염된 환경이 돼지들의 면역력을 약화시켰다. 같은 품종의 돼지들이 동시에 면역력이 약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구제역과 같은 질병이 전염되기 쉬워졌고, 이는 축산농가의 근심거리가 됐다. 소비 측면에서 보면, 저렴하게 고기를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나 모든 소비자들이 획일화된 품질과 맛의 돼지고기만을 소비하게 됐다. 다양한 품종의 다양한 부위를 맛보고 싶은 소비자들은 선택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돼지고기 시장의 새로운 바람, 고급품종, 다양한 부위

하지만 최근 생산성과 효율성의 늪에 빠져있던 우리나라 돼지고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방목해 도토리를 먹여 키운 스페인의 '이베리코' 돼지가 우리나라에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이 돼지고기도 품종별로 맛, 색, 향, 식감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베리코 돼지는 우리나라 돼지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마블링과 식감을 자랑한다. 이에 따라 다수의 외식업체들이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유통업계에서도 이베리코 돼지의 온·오프라인 판매가 증가했다. 2013년 6445톤이던 스페인 돈육의 수입량이 2017년 3만 5189톤으로 급증한 것은 이베리코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스포츠동아
(이베리코 돼지와 돼지고기)

이베리코에서 시작된 돼지고기 소비의 변화는 국내 농가에도 영향을 주어 우리나라의 축산농가에서도 버크셔, 듀록과 같은 품종을 방목 사육하는 등 다양성이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버크셔k'이다. '버크셔k'는 국내 흑돈 종자로 만든 한국형 버크셔 품종인데, 일반적인 흑돼지와 달리 몸통이 전부 까맣지 않고 발과 코 부분이 하얀 것이 특징이다. 버크셔k 품종은 현재 외식업계에서 구이뿐만 아니라 돼지곰탕, 하몽, 샤브샤브 등에 이용되고 있으며 점점 인기를 더해가는 추세이다.

출처: 버크셔k 페이스북, 옥동식 인스타그램
(버스셔k 돼지, 버크셔k 품종으로 만든 돼지곰탕)

한편, 농촌진흥청에서도 '축진참돈', '축진듀록', '우리흑돈', '난축맛돈' 4 품종의 국산 돼지 품종을 개량해 보급하고 있다. 특히 '축진참돈'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우리 고유의 재래돼지를 지키기 위해 1988년부터 20년에 걸친 복원 사업을 통해 탄생했다. '축진참돈'은 문헌 속 재래돼지와 유사한 생김새를 가진 품종으로 재래 돼지의 유전자원 확보라는 큰 의미를 갖는 품종이다.

출처: 신도세기, 셰프몰
(SGP(슈퍼골든포크) 숄더랙 부위, 뼈등심 부위)

이런 돼지고기 품종의 다양화는 소비자들의 돼지고기 소비 행태도 바꾸고 있다. 그동안 주로 먹었던 삼겹살이나 목살뿐만 아니라 뼈등심, 숄더랙, 뒷목살 등이 새로운 구이용 부위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 다양한 부위가 소비되면 삼겹살 위주의 수익구조를 갖던 축산농가에게 다양한 수익원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효율성과 생산성에만 초점을 맞춰온 생산자에게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는 여력을 준다. 또한, 삼겹살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수입 삼겹살에 쓰이던 소비자의 돈이 국내 생산자의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을 더 확장한다는 점에서 농촌경제가 활성화되는 데 보탬이 되기도 한다.

소비자들이 각각의 돼지고기를 차별화된 상품으로 즐기기 시작하면 생산자들은 운영의 폭이 넓어진다. 효율성의 늪에서 벗어나 어떤 생산자는 더 친환경적인 사육 방식을, 또 어떤 생산자는 식감을 극대화하는 돼지 품종과 부위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웃돈을 얹어서라도 더 맛있는, 더 가치 있는 소비를 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수요와 맞물려 시장의 성장을 촉진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많은 돼지들을 공장식 축사 밖으로 꺼내는 첫걸음이 된다. 돼지고기 시장의 이러한 바람이 한순간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자리 잡을 것인지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인터비즈 이태희, 장재웅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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