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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비즈

“열정을 찾으라”는 말이 헛소리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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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떤이의 꿈 스틸컷)

출처네이버 영화

흔히 젊은이들에게 “해야 할 일을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열정을 찾으라”고 조언하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건 뭘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이런 저런 답들이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열정을 쏟아 붓고 싶은 분야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하는 게 편안했다.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한 사람은 이해가 안될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태어난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찾으라고 하는 건 고문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원하는 것 찾기를 포기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어떤 분야든 즐겁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과학과는 담을 쌓은 문과생인데, 과학 관련 서적들이 재미있어졌고, 사는 곳 주변에 나무가 많으니 산림학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월간지 애틀란틱에 실린 ‘’Find Your Passion’ Is Awful Advice (열정을 찾으라는 말은 터무니 없는 조언이다)’라는 글을 읽게 됐다. 1990년 이후 영어로 출판된 책에 ‘열정을 찾으라’는 말이 등장하는 횟수는 9배로 늘었다고 한다. 모두가 열정을 찾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열정만 찾으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믿는다. 열정을 찾으라는 얘기와 함께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으면 다시는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와 같은 멋진 말도 많이 쓴다.

출처게티 이미지 뱅크

하지만 예일-싱가포르 국립대의 폴 오키프, 스탠포드대의 캐롤 드웩과 그레그 월톤 교수에 따르면 열정은 찾는 게 아니다. 개발하는 거고, 만들어 가는 거다. 열정을 찾으라는 말은 처음부터 잘못된 얘기였던 셈이다. 3명의 교수는 관심사 고정 이론과 성장 이론을 대비한다. 고정 이론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핵심적인 관심사가 정해져 있으며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론이다. 반면 성장 이론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관심사 고정 이론을 믿는 사람은 2가지 약점을 갖고 있다. 우선 관심사가 고정돼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흥미로운 분야나 새로운 기회를 놓치기 쉽다. 관심사가 이미 정해져 있으니 한눈을 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한 분야에 지속적인 열정을 갖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개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루 아침에 열정이 생기지는 않는 법이니까. 월톤 교수는 “만약 열정을 가진 분야가 이미 있고 이를 찾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미친 생각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고정 이론을 믿는 사람들의 또 다른 문제는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점이다. 무언가가 어려워지면 “이건 내 열정이 아니구나”라고 단정 짓기 쉽다는 얘기다. 실제로 고정 이론을 믿는 사람들은 열정을 추구하는 일이 때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열정을 추구하면 무한한 동기부여가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귀찮고 싫은 경우는 어떻게든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귀찮음과 게으름을 열정이 아니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으면 다시는 일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와 같은 말도 반대로 생각해보면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일을 하면, 그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단지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선다는 건 뭐가 잘못 되도 크게 잘못 된 게 아닐까.

출처게티 이미지 뱅크

신경과학도 관심사 성장 이론의 손을 들어줬다. 관심사 발달을 연구해온 스와스모어대 K. 앤 레닝거 교수는 “신경과학에 따르면 관심사는 도움을 받아 개발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는 적절한 도움만 받으면 누구나 어떤 분야든 관계 없이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레닝거 교수에 따르면 8세 이전의 아이는 새로운 일을 쉽게 시도해본다. 8~12세에는 자신의 능력을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보고 자기가 잘 못하는 것 같으면 불안해 한다. 이 때가 아이들이 특정 주제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새로운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인 셈이다.


꼭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성인도 얼마든지 새로운 분야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고 교수들은 설명한다. 내 주변엔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첫째 아이를 낳은 후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하다가 교육심리학 박사학위까지 딴 지인이 있다. 학부에서는 교육학이나 심리학과는 관련이 없는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다.

출처게티 이미지 뱅크

돌이켜 보면 나는 관심사 고정 이론의 피해자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었고, 찾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찾아 지지 않았다. 그래서 헤매다가, 열정은 아니지만 나름 재미있어 보이는 직업을 선택했고 즐겁게 일했다. 열정을 찾지는 못했지만, 개발은 한 셈이다. 하지만 열정을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또 열정이 없는 것 같이 느껴져 자괴감이 들었던 적도 많았다. 그러다가 열정 찾기를 포기 했고 (즉, 관심사 성장 이론으로 갈아탔고), 그 뒤로는 어떤 분야든 편견을 버리고 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니 앞으로 젊은 세대건 누구에게건 ‘열정을 찾으라’는 조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정은 찾는 게 아니고 만들어가는 거니까.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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