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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식 분만 병원' 80달러에 애를 낳는다고?

조회수 2019. 2. 8. 18: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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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여성 중 병원에 안 가고 집에서 출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도 같은 개도국에선 상황이 다른데요. 대부분 여성들이 집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병원에서 애를 낳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입니다. 이 문제를 철저한 선택과 집중, 소위 ‘맥도널드식 표준화’를 통해 해결한 병원이 있는데요. 바로 단돈 10만 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한 인도 라이프스프링병원(LifeSpring Hospitals)입니다.



인도는 해마다 10만 명 이상이 출산 중 사망할 정도로 임산부 사망률이 높은 나라다. 10만 건의 정상 출산 중 임산부 사망 건수가 무려 540건(2000년 기준)으로, 중국(56건)의 약 10배, 미국(17건)의 약 32배 수준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인도에서 임산부 사망률이 이렇게 높은 이유는 전문 의료진의 도움 없이 집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공립병원은 분만실이 부족하고 사립병원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대부분 비좁은 단칸방에서 아이를 낳는다.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분만 중 목숨을 잃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무사히 아이를 낳는다 해도 출산 전후 여러 가지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당연히 신생아 사망률도 높다. 국제구호개발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전 세계 신생아 사망 건수의 약 3분의 1이 인도에서 발생한다. 출산 도중 신생아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경우가 많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돼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아서다.  

인도의 라이프스프링병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출범한 모자(母子) 의료 전문 병원이다. 인도 국영 헬스케어 기업 HLL라이프케어와 미국 뉴욕 소재 임팩트 투자기관 어큐먼펀드가 합작해 세운 병원으로, 지금까지 약 550만 명의 임산부(2017년 7월 기준)가 이곳을 거쳐 갔다. 현재 해마다 2만 명 이상의 건강한 아이들이 라이프스프링병원에서 태어나고 있다.

1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애를 낳는다?

출처: 라이프스프링병원 내외부 전경

라이프스프링병원의 최대 강점은 일반 사립병원보다 훨씬 싼 값에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대개 인도 일반 사립병원의 경우 자연분만은 160~300달러(약 18만~33만 원), 제왕절개는 280~500달러(약 32만~55만 원) 정도를 환자에게 청구한다. 인도 전체 인구의 약 60%가 월 소득 60~140달러(약 7만~16만 원)로 생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꽤 비싼 금액이다.

출처: 라이프스프링병원 내외부 전경

반면 라이프스프링병원에선 환자(일반병실 입원 기준)에게 자연분만은 80달러(약 9만 원), 제왕절개는 180달러(약 20만 원) 정도를 청구한다. 자연분만의 경우 10만 원도 채 안 되는 가격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셈이다. 그것도 깨끗한 병원에서 전문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최극빈층이라면 80달러도 버거울 수 있지만, 대도시에 사는 근로자들이라면 저소득층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라이프스프링병원은 이 점을 간파했고, 처음부터 인도 내륙부의 상업중심지인 하이데라바드 도심 외곽에 병원을 차렸다.

출처: 인도 현지 방송에 소개 된 라이프스프링병원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호 병원을 개원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겼을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이었다. 현재 라이프스프링병원은 약 20여 개 체인(extension center 포함)을 운영 중이다. 이 중 절반이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대체 라이프스프링병원은 어떻게 이처럼 싼 값에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던 걸까? 우선 라이프스프링병원은 시설 투자를 최소화했다. 하이데라바드 도심 외곽에 있는 오래 된 병원, 특히 침상 20개 정도의 소규모 병원을 장기 계약을 맺고 임대했다. 병원 내 가장 비싼 의료장비가 초음파 진단기일 정도로 수술 기구에 대한 투자도 최대한 아꼈다.

출처: 라이프스프링병원에서 가장 '비싼' 의료 장비인 초음파 진단기

심지어 약국도 외주 서비스로 돌려 초기 투자비용을 최대한 억제했다. 병실은 전체 공간의 70% 이상을 일반 병실로 할애했고, 1인실이나 준1인실은 두 세 개로 제한했다. 하지만 라이프스프링병원의 진정한 차별점은 따로 있다. 바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운영 효율 극대화다.

자연분만·제왕절개에만 집중, 맥도널드식 표준화 추구해 운영효율 극대화

라이프스프링 병원은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수술에만 집중했다. 산모나 태아의 상태에 따라 정상적인 분만이 어려운 복잡한 케이스는 아예 다루지 않았다. 만약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일찌감치 이를 다룰 수 있는 인근 병원(예: 소아과 관련 전문 의료진이 있는 병원)으로 보냈다. 철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전문화를 꾀한 것. 이는 전체 임산부 중 극히 일부의 출산 수술에만 필요한 특수 의료 장비나 기구를 구비할 필요가 없다는 걸 뜻한다. 일반적인 출산 수술과 판에 박힌 산전·산후 관리에만 집중함으로써 시설 투자는 최소화하되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전략이었다. 

출처: 자연분만과 제왕절개에만 집중하는 라이프스프링병원 수술실

의료 서비스의 전문화는 인건비 절감으로도 이어졌다. 정상적인 분만(자연분만, 제왕절개)에만 집중하다 보니, 구조적으로 굳이 고숙련 인력이 없어도 큰 문제없이 병원을 운영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라이프스프링병원은 경험이 많은 산과 전문의 대신 하이데라바드 인근 지역 의대를 갓 졸업한 ‘젊은’ 의사들을 고용하는 데 집중했다. 간호사 역시 3년 반의 전문 교육과정을 거친 전문 간호조산사(GNM, graduate nurse midwife)보다 1년 반 정도 트레이닝을 받은 간호조산원 보조(ANM, auxiliary nurse midwife)를 더 많이 채용했다.

특히 라이프스프링병원은 수술 과정에 필요한 조치들을 최대한 세분화해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간호사들이 숙지하도록 했다. 수술 준비 및 실제 수술에 소요되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기 위해 수술에 필요한 도구 세트도 표준화했다. 마치 글로벌 외식 프랜차이즈의 대명사인 맥도널드가 제품과 서비스의 표준화를 통해 전 세계 매장에서 똑같은 맛의 햄버거를 신속하게 제공하듯, 라이프스프링병원 역시 매뉴얼과 표준화를 통해 운영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출처: 라이프스프링병원에선 해마다 2만 명 이상의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

‘회전율’ 측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인도 일반 사립병원(20~30병상 기준)의 분만 횟수는 한 달에 15~20건(2008년 기준)이지만, 라이프스프링병원의 경우 100~110건에 달한다. 의사 1인 당 수술 횟수도 사립병원의 경우 1주일에 1~2회에 그치지만, 라이프스프링병원에선 4~5건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라이프스프링병원은 선택과 집중, 전문화와 표준화를 통해 의료 서비스의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출산과 관련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도 받지 못하던 소외된 계층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글 신현암 팩토리8 대표·이방실 동아일보 기자
미표기 이미지 출처 라이프스프링병원 홈페이지

* 참고문헌: 빅프라핏(흐름출판, 2017)


* 신현암 약력

- 서울대 경영학과 학·석사,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 사회공헌연구실장 역임. 現 팩토리8 대표

* 이방실 약력

- 서울대 영어교육과 학·석사, 미국 듀크대 MBA, 서울대 공학박사(기술경영)

- 한국경제신문 기자, 올리버와이만 어소시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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