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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검정고시 봐서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 학위 딴 소녀

조회수 2019. 1. 22. 17: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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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에 살던 7남매 중 3명이 박사학위?

미국 아이다호 주 두메산골에 사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아버지는 아주 극단적인 믿음을 가진 FLDS(편집자 주 : 모르몬교에서 갈라져 나온 근본주의 교회 종파)다. 세상이 곧 망할 것이라 굳게 믿고 노아의 방주를 짓는 심정으로 통조림을 만들고 휘발유를 모은다. 집안 7남매 중엔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가 더 많고 병원은 물론 학교 문턱에 가본 아이가 한 명도 없다. 교통사고가 나도, 폐차장에서 일 하다가 크게 다쳐도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치료한다. 소녀의 아버지는 병원에 가면 악령이 씌운다고 믿으며 교육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출처: 네이버 책
(책 '에듀케이티드(Educated)' 표지)

수많은 미국 매체에서 2018년 최고의 책 중 하나로 선정한 ‘에듀케이티드(Educated, 국내 미번역)’라는 책의 내용이다. 저자인 소녀의 이름은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 집안의 막내인 소녀는 독학을 하고 검정고시를 봐서 브리검영대에 들어간 뒤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이 회고록을 썼다. 옛날 얘기도 아니다. 저자는 1986년 생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산골에서 FLDS교도 소녀로 살다가 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다.. 학교나 병원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이가 세상과 부딪히는 과정이 어떤 때는 코믹하고 어떤 때는 어처구니 없으며 또 어떤 때는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7세에 진통제를 먹고 효과에 신기해하는 모습, 모든 시험은 검정고시와 같은 객관식 시험인 줄 알았는데 대학 첫 시험이 주관식으로 나와서 시험을 망치는 모습, 강의 시간에 나온 ‘홀로코스트’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냐고 질문했다가 모두의 눈총을 받는 모습은 그야말로 웃기다 못해 슬프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빠와 잘 해줄 때는 간도 빼내 줄 것 같지만 마음에 안들면 폭력을 행사하는 가학적인 오빠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다. 저자는 자신이 배움을 길을 걸은 덕분에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털어 놓는다. (그래서 제목이 ‘에듀케이티드’다.)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읽은 책이라고는 성경뿐이고, 에세이 쓰는 방법도 몰랐던 사람의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문체가 유려하다.. 소설도 아닌 회고록을 밤을 세우다시피 하면서 읽었다. 충격적이고 곱씹어볼 만한 내용이 많지만,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눈길이 확 가는 부분이 있으니…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바로 아이다호 주의 시골에서 학교 한번 안 가본 7남매 중 3명이나 박사학위가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학사가 아니고 박사. 반면 4명은 검정고시를 보지 않았거나 통과하지 못해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다. (하지만 대부분 멀쩡하게 잘 산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박사가 된 3명의 공통점이라면 뭔가 읽는 걸 좋아했다는 점이다. 집에 책이 없어도 성경을 반복해서 읽거나 백과사전이라도 계속 읽은 아이들이 결국은 대학을 가고 박사가 됐다. 박사가 되지 못한 4명 중에도 검정고시 생각을 했지만 떨어지거나 아예 실력이 안돼서 시험을 보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공부 머리가 있으면 가만 놔둬도, 어떤 난관이 있어도 결국엔 기를 쓰고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갔다. 그것도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부모는 저자의 대학 입학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지만 내심 가지 않기를 바란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면 일단 공부를 시작한 아이들은 모두 박사까지 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건 추측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지만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백지 같은 아이들이 대학에 가자 스폰지같이 학문을 빨아들인 건 아니었을까.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르는 셈이다. 물론 박사는 공부를 잘 해서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만의 궁금증, 자신만의 문제의식이 있어야 되는 건데 자발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만큼 줏대가 있는 성격도 박사 학위를 받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난관을 딛고 어렵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목표의식이 뚜렷했다고 볼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남들 대학 간다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 아이들이 아니란 얘기다.

출처: JTBC 스카이캐슬 공식 홈페이지
(명문대를 보내려는 학부모들의 욕망을 그린 드라마 '스카이캐슬')

아이들은 결국 그냥 놔두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닐까. 적어도 현재의 대한민국에서처럼 좋은 유치원, 좋은 학교, 좋은 학원을 보내면서 대학을 가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인 마냥 다그칠 필요는 없는 거 아닐까. 공부할 아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알아서 공부를 할 것이다. 공부할 생각이 없으면 알아서 다른 길을 찾게 돼있다. 아이의 앞길을 부모가 걱정하기 시작하면 애는 자신의 미래에 더욱 신경을 안 쓴다.


사실 부모 세대는 이제 아이 세대의 앞날을 걱정할 능력이 안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는 와이어드지에 지난해 쓴 글(Yuval Noah Harari on what the year 2050 has in store for humankind)에서 10대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다. 하라리 교수에 따르면 어른들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말을 하지만 사실 세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안전했다. 그들이 세상을 잘 알고 있었고 세상은 느리게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으며, 어른들의 조언이 시대를 초월한 지식인지, 오래된 편견인지를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 


이젠 부모들이 “내가 학교 다닐 땐 말야…”하면서 잔소리를 해봐야 소용이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다그치고 혼내고 답답해 할 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러면 적어도 사는 데 필요한 감정적인 균형감과 회복 탄력성은 키워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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