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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커피에 '녹용' 뿌리기..농심의 흑역사

맛도 없고, 라면스프 같이 생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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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흔히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상품, 서비스로 승부를 봐야한다고 말합니다. 애플의 스마트폰, 테슬라의 전기차도 기존 시장과는 차별화된 재화들로 판도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라면 업계 절대 강자였던 농심도 '건강 커피'라는 콘셉트의 '강글리오'를 만들어 커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차별화에도 조건이 있는 것일까요. 건강 커피는 왜 실패했을까요?

지난 2013년 초, 커피 업계는 물론 식품 업계 전반에 전운이 감돌았다. 2012년 말부터 한국 식품 업계의 절대 강자이자 라면 업계 1위 농심의 커피시장 진출이 기정사실화 돼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명으로 언제쯤 시장에 나올지 역시 베일에 싸여 있었다.

(농심은 업계의 기대와 경계 속에서 '건강한 프리미엄 커피'라는 타이틀을 단 녹용 성분의 강글리오 커피를 출시했다)

출처농심 홈페이지

그리고 2013년 1월, 다소 생경한 이름의 커피 제품 하나가 등장했다. 바로 농심의 ‘강글리오’다. 녹용, 녹골, 모유 등에 포함된 성분이라는 강글리오사이드가 들어갔음을 강조하기 위해 성분명에서 제품명을 따왔다. ‘프리미엄’ ‘기능성’ ‘건강에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라면시장 1위 업체로서 보유하고 있던 왕성한 영업력과 넓은 유통망을 활용해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실제로 식품업체 관계자들 모임에서 농심 측 임직원들은 커피시장 1위 동서식품 임직원들에게 “이제 우리의 경쟁상대는 동서식품”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강글리오는 소비자들로부터 "포장은 물론 가루 모양과 물에 퍼지는 모습까지도 라면 스프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출처DBR

현재 강글리오는 어떻게 됐을까? 시장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SNS 반응을 살펴보면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적나라한 불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모양은 라면스프, 맛은 보약 맛”이라는 의견부터 “비주얼이 라면스프다. 포장만 라면스프인줄 알았는데 커피도 라면스프처럼 갈아 놨다. 물에 녹는 모습도 라면스프이고 맛은 들척지근하다” “강글리오 살까 말까 했는데 포장지에 적혀 있는 너무나 선명한 ‘농심’이라는 글자를 보고 그냥 카누 사왔어요”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농심은 왜 커피사업에 뛰어들었나?

(인스턴트 커피 시장은 독보적 1위 업체인 동서식품(맥심)을 비롯해 네슬레(네스카페), 남양유업(프렌치카페) 등의 업체가 경쟁하는 레드오션이다)

농심이 이미 라면시장에서 1위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레드오션’인 인스턴트 커피 시장으로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농심의 이 같은 선택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현재 국내 식품 시장은 포화 상태이자 위기 상황이다. 다이어트나 웰빙 열풍의 여파와 더불어 인구구조의 변화가 전통적 식품산업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분유업계는 출산율이 낮아져 위기에 봉착했으며 과자와 라면 업체들 역시 아이들 수가 감소하고 ‘좋은 먹거리’를 찾는 주부들이 많아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분유시장 1위 남양유업, 우유업계 강자 서울우유, 국내 제과업·유통업 강자 롯데의 롯데칠성음료, 그리고 라면시장 1위 농심까지 모두 ‘커피시장’에 뛰어든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농심이 강글리오 출시 직후 약 두 달에 걸쳐 투자한 마케팅 비용만 해도 업계에서는 약 22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신춘호 농심 회장은 골프장에서 녹용과 커피의 결합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당시 농심의 판단은 이랬다. 사측은 골프장에서 VIP들에게 녹용커피나 홍삼커피를 제공하는 걸 보고 녹용과 커피의 결합을 기획했다.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지만 건강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분명 있다. 때문에 건강을 보장하는 개념으로 커피를 출시하면 고객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몸에 좋은 커피’를 구매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출시 당시 농심 관계자는 “건강까지 생각한 강글리오 커피는 집에서나 카페에서나, 클래식하고 트렌디하게 언제 어디서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다양한 모습으로 힐링타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

맛 없는 '보약맛' 커피에 소비자 외면 


농심이 노리고 들어간 그곳. 이미 레드오션인 인스턴트커피 시장에서 자신들이 자리매김하게 될 곳이라고 생각했던 ‘프리미엄·기능성·건강 커피’ 영역.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농심은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녹용 성분의 강글리오 커피는 농심의 기대와 달리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일반적으로 커피를 가장 많이 즐기는 20∼30대 여성들의 경우 ‘녹용 성분’을 강조한 게 오히려 강글리오를 외면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약’의 핵심 재료인 녹용은 여성들 사이에서 ‘살이 찐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성분이다. 또 커피믹스와 같은 인스턴트커피는 사무실에 비치돼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해소나 휴식을 위해 마시기 때문에 여타 속성들보다 ‘맛’이 강조된다. 한 봉지당 70원 수준인 마트 자체상표(PB·Private Brand)가 가장 힘을 못 쓰는 제품군이 바로 인스턴트커피인 이유는 봉지당 50원을 더 내더라도 사무실 직원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검증된 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타사 제품보다 두 배 이상 비싼 돈을 지불하고 ‘건강’을 이유로 강글리오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커피전문점의 원두커피 맛을 즐기는 젊은층은 필요에 의해 ‘원두커피 스틱’을 구입할 순 있지만 굳이 강글리오를 선택할 이유가 없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이미 검증된 맛있는 믹스커피를 두고 굳이 다른 것을 마실 이유가 없었다. 건강을 생각하는 장년 및 노년층 역시 커피를 대체할 다른 음료를 마시면 될 뿐이었다. 또 주부들의 경우 가정에서 간편 접대용으로 필요한 기존의 커피믹스를 두고 굳이 다른 선택을 할 이유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원두 스틱 커피는 값이 비교적 비싸더라도 맛과 품질을 따지는 소비자들이, 기존 커피믹스는 다방커피의 맛에 익숙하고 저렴한 커피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찾았다. 그러나 강글리오는 그 어느 것에서도 대체재가 되지 못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좀 더 분석하면 기존의 커피믹스는 1000원짜리 다방커피의 대체재였고, 아메리카노 원두 스틱커피는 3000∼4000원짜리 커피전문점 커피의 대체재 성격이 있었지만 강글리오는 그 어느 것의 대체재도 되기 힘든 제품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사후 분석만으로 ‘애초에 시장이 없었다’고만 판단하는 것은 다소 섣부르다. 초기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농심의 제품을 구매할 시장은 진정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말 그대로 한약 맛 나는 애매한 ‘양탕국’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강글리오를 위한 시장은 존재했다.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건강'보다는 '맛'이나 잠을 깨기 위한 '각성제'를 이유로 커피를 찾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건강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농심의 강글리오가 너무도 당연하게 ‘예정된 실패’의 길로 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농심은 스스로도 밝혔듯 기능성 커피 시장을 노렸다. 기존 커피 소비자들은 '커피가 건강에 해롭지는 않을지'와 같은 건강에 대한 우려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농심은 먼저 건강에 대한 관여도가 높고 가격민감성이 낮은 노년층, 수험생 자녀의 잠을 쫓아주기 위해 커피를 타주는 주부, 웰빙 추세를 따르는 젊은층 등을 공략해볼 만한 여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심은 출시 약 2년 만에 쓰라린 패배를 겪고 초라한 성적표를 안은 채 돌아가야 했다. ‘건강 지향성 프리미엄 커피’에 대한 욕구를 지닌 소비자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자사의 브랜드가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글리오 커피 제품 상단 좌측에 표기된 '무병장수를 추구하는 농심'은 오히려 프리미엄 커피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구매에 악영향을 미쳤다)

출처농심 홈페이지

강글리오의 실패 원인을 마케팅 전략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 각 영역 별 전략을 통해 알아보자. 첫째로 '소비자를 고려하지 못한 제품(Product) 전략'이다. 농심은 '건강 지향성 프리미엄 커피'라는 위상을 구축하려 했으나 소비자의 인식 속 '농심=라면'이라는 이미지가 오히려 강글리오의 프리미엄 커피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다. '직접적 하위 브랜드 확장 전략'이 아니라 '간접적 하위 브랜드 확장 전략'으로 농심을 강조하지 않는 방향에서 접근했다면 어땠을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대부분이 스틱형인 타사 제품 포장과 달리 강글리오는 마치 라면스프처럼 보이는 사각형의 패키징으로 출시되었다)

출처DBR

'강글리오'라는 네이밍의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강글리오사이드라는 성분에서 따온 이름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강글리오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은 사람들만 인지할 수 있는 내용이다. 패키징 역시 실패의 원인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강글리오의 포장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왜 하필 ‘라면스프 봉지’에 담았냐는 것이다. 강글리오는 라면시장의 일인자인 농심이 출시했기 때문에 고객들은 라면스프 봉지에 담긴 커피가루로 인식했다. “짜파게티 맛이 날 것 같다”는 소비자들의 SNS 글은 그래서 그냥 웃어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제품전략을 구상하지 못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높은 가격(Price)'이다. 강글리오 1봉지당 가격이 500원으로, 평균 130~150원 수준의 대형마트 묶음 포장 믹스 커피 가격의 3배 이상이다. 프리미엄 포지셔닝에 따른 높은 가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 소비자의 머릿속에 인스턴트 커피는 저관여 제품으로 인식되어 있다. 강글리오는 소비자의 인식을 바꿔 커피에 대한 관여도를 높이지 못하고 '저관여 제품에 어울리지 않는 가격만 비싼 제품'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위 CF중 일부 장면. '고급스러운' '건강' 커피라는 이미지가 전혀 전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는 소비자의 반응이 많았다)

출처nongshimPR 농심 공식 유튜브 페이지

다음으로 '길 잃은 촉진 전략(Promotion)'이다. 광고는 표적고객들에게 제품의 포지셔닝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즉, ‘우리 농심에서 출시한 강글리오 제품은 건강 지향성 프리미엄 커피입니다’라고 타깃마켓에 알리는 것이 광고의 역할이다. 그런데 위의 배우 이범수를 활용한 광고를 살펴보자. 건강에 대한 언급 하나 없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강글리오 커피가 예술품이라 카더라∼” 와 마지막의 "강글리오 커피, 농심"이라는 대사를 통해 강글리오가 ‘건강 지향성 프리미엄 커피’라고 소비자의 마음속에 위상이 정립되길 바란다는 것은 무리한 기대다. 샹송 '오 샹젤리제'에 가사를 덧붙인 '오~ 강글리오~'를 반복한 CM송도 프리미엄 커피 이미지와는 전혀 어우러지지 않았다.

(농심은 할인마트 및 편의점 등 넓은 유통망을 강점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품의 포지셔닝에 알맞는 유통 전략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마지막으로 '유통(Place)전략'을 살펴보자. 빠른 시장 확산을 위해 제품의 포지셔닝을 포기한다면 더 이상 고객은 그 제품을 구매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농심은 할인마트 및 편의점 등 전국적으로 강력한 유통망 파워를 가지고 있다. 백산수, 신라면, 수미칩 등 농심 제품들이 할인마트 및 편의점에 유통된다고 해서 동일하게 유통한다면 고객의 마음속에는 강글리오가 백산수, 신라면, 수미칩과 같이 대중적이고 어디서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저렴한 ‘저관여 제품’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이미 농심 스스로가 강글리오를 신라면과 동급으로 취급해놓고 고객들만이 강글리오를 ‘예술품’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란다는 건 모순이다.

(강글리오는 결국 시장 기회를 상실하고 시장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출처농심 홈페이지

강글리오는 타겟팅 전략, 포지셔닝 전략을 비롯한 마케팅 전략 전반의 실패로 시장기회를 상실했다. 농심은 프리미엄 제품 개념을 달성하기 위해 좋은 제품을 개발해 고가격전략을 시행했다. 그러나 촉진 및 유통전략에서 그 제품개념을 받쳐줄 수 있는 원동력이 부족했고 제품 및 가격전략과의 보완성을 이루지 못했다. ‘건강 지향성 프리미엄 커피’에 대한 욕구를 지닌 소비자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지만 농심은 자사의 브랜드가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임을 표적 소비자들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강글리오의 사례는 '녹용 커피'와 같은 독특한 소재만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차별화는 성공의 핵심 요소중 하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소비자 욕구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포지셔닝과 타겟층에 맞는 전략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강글리오 커피가 소비자에게 '예술품'이 아니라 '라면 스프'로 받아들여진 이유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143호
필자 이승연

인터비즈 송은지 정리, 그래픽 이정아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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