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좋은 당근을 '정크푸드'라고 주장한 CEO

조회수 2019. 1. 1. 17:3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근은 그저 흔한 채소다. 맛있다고 해서 평소에 당근을 스낵처럼 찾아먹는 사람은 흔치 않다. 하지만 2008년 미국 볼트하우스팜스(Bolthouse Farms)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제프리 던(Jeffrey Dunn)은 달랐다. 당근과 주스, 드레싱 제품을 만드는 볼트하우스팜스에 합류하기 전, 던은 코카콜라를 비롯한 소프트드링크 업계에서 20여 년간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그는 당근도 잘 포장하고 광고하면 감자칩처럼 좋은 간식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통념을 뒤집을 수 있는 기발한 마케팅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가령 당근을 정크푸드에 빗대어 묘사하는 도발적인 광고 캠페인 같은 아이디어 말이다.

당근이 건강에 좋은 야채? 당근은 정크푸드!

출처: 볼트하우스팜스 광고 영상 캡처

2009년 볼트하우스팜스는 연 3~4%씩 당근 판매가 하락하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몇몇 광고대행사에 '기발한' 마케팅 캠페인 아이디어를 제안해 보라고 요청했다. 그중엔 당시 창의적인 광고들을 연달아 성공시킨 크리스핀 포터 앤 보거스키(Crispin Porter+Bogusky)도 포함돼 있었다. 크리스핀 포터 앤 보거스키는 서 너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정크푸드처럼 먹어라(Eat 'Em Like Junk Food)"라는 캠페인 광고였다. 당근이 정크푸드와 같이 맛있고 일상적인 군것질거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자는 내용이었다. '건강'이나 '몸에 좋다'는 것을 강조하던 기존 야채 광고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가장 위험하지만 동시에 가장 훌륭한 발상이었다. 그리고 던은 이 위험천만한 아이디어를 최종적으로 선택했다.  

물론 볼트하우스 직원 모두가 이 도발적인 캠페인 광고 집행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몇몇 직원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전통적으로 농산물 업체는 소비자를 상대로 한 광고를 잘 하지 않는다. 볼트하우스팜스가 1915년 창립 이후 9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케팅에 쓴 돈 역시 고작 10만 달러(한화 약 1억 1300만 원) 남짓이었다. 그런데 이 캠페인은 내용도 도발적일 뿐 아니라 한 해에 무려 200만 달러(한화 약 22억 원)를 쏟아부어야 했다. 심지어 2008년 닥친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미국 기업들이 광고비를 줄이고 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던은 이 캠페인을 밀어붙였다. 그는 경제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마케팅 활동에 대한 투자가 더 중요해진다고 믿었다. 불황기에는 경쟁사들이 모두 긴축재정에 돌입해 광고단가가 저렴해지고, 이는 평상시보다 비용 대비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 결과적으로 캠페인은 멋지게 성공했다. 특히 '당근 총알' 탄띠를 두른 여성이 엔진 달린 카트로 사막을 내달리는 남성을 향해 미니 당근을 사격하는 TV 광고가 큰 인기를 끌었다. TV 광고만 만든 게 아니라 다양한 채널에 적합한 콘텐츠를 다각도로 제작했다. 가령,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웹 시리즈 영상에는 게으른 식료품 직원들이 등장해 '미니 당근을 맛있게 먹는 법' 등을 우스꽝스럽게 설교한다. 인기 있는 정크푸드 브랜드와 자사의 제품을 익살스럽게 비교하는 트위터 피드 또한 시도했다. 누가 원조 '주황색 과자(orange snack)'인지 가려보자며 치토스 공식 트위터를 태그 하는 식이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2010년 매출은 전년 대비 13%나 상승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볼트하우스팜스의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진 건 물론이다.  

3A 전략 : 맛있는 당근을 콜라 한 캔 가격에 드립니다

건강식품인 당근을 정크푸드와의 경쟁 속으로 이끈 볼트하우스팜스의 마케팅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이른바 3A 전략이다. 첫째는 접근성(accessibility)으로, 제품의 호감도와 매력도를 높여 사람들이 당근을 먹고 싶어 하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근을 '쿨'하게 만드는 광고뿐 아니라 상세한 소비자 조사와 혁신적인 제품 개발 역시 필요하다.

출처: 볼트하우스팜스 인스타그램

대표적인 예가 '야채 스내커스(Veggie Snackers)'의 매운맛 당근 개발 사례다.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에서 실시한 포커스그룹 인터뷰에 응한 16세 소년이 "볼트하우스의 당근이 쿨랜치 맛 도리토스나 바비큐 맛 레이즈 감자칩처럼 자동판매기에서 판매된다면, 왜 맛의 종류는 그만큼 다양하지 않죠?"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결과 매콤한 맛의 당근이 탄생했다.  


두 번째 전략은 가용성(availability)이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볼트하우스팜스가 월마트나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부터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 그리고 일반 소매점까지 유통 범위를 확장한 이유다. 또 매장에는 볼트하우스의 직간접 경쟁 제품과 묶어 진열대를 크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진열 규모가 커져야 유통업체들도 책임감을 갖고 물건을 팔아주기 때문이다. 

출처: S.I. Newhouse School Of Public Communications 홈페이지

이뿐만이 아니다. 회사는 고등학교 두 곳에 볼트하우스팜스 제품 전용 자판기를 설치해 10대 소비자층을 공략하고자 했다. 미니 당근을 판매하는 이 자판기는 '정크푸드처럼 먹어라'라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감자칩과 탄산음료로 가득한 일반 자판기 옆에 나란히 놓였다. 단돈 50센트(한화 약 570원)에 든든한 간식거리가 생기자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세 번째 전략은 감당할 수 있는 가격(affordability)이다. 가령 코카콜라는 캔 하나당 가격이 1달러(한화 약 1100원)가 채 되지 않는다. 유명 과자업체들 역시 과자를 작은 봉지에 담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그렇다면 볼트하우스팜스 역시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을 설정해야 했다. 예를 들어 앞서 나온 야채 스내커스는 단돈 79센트(한화 약 890원)였다. 소비자가 아무리 채소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하더라도 가격이 비싸 선택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는 운영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지속적인 원가절감으로 얻어진 이익이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볼트하우스팜스는 채소의 이미지를 180도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특히 '정크푸드처럼 먹어라'와 같은 새로운 시도는 볼트하우스만의 신념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신선식품 업계 전체에 힘을 실어줬다. 이 도발적인 광고 캠페인을 계기로 회사는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2012년에는 15억 5000만 달러(한화 약 1조 753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미국의 거대 식품 기업 캠벨수프(Campbell Soup)에 인수됐고, 이후 실적 역시 급상승 곡선을 탔다. 2014년 연간 매출은 5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13억 8100만 달러(한화 약 1조 5626억 원)를 기록했다. 


출처: 볼트하우스팜스 홈페이지
(당시 리콜 대상이 된 제품들)

안타깝게도 올 8월 캠벨수프는 볼트하우스팜스가 속한 신선식품 사업부(Fresh division) 매각 계획을 밝혔다. 매각의 직접적인 원인은 캠벨수프의 전반적인 경영 위기다. 웰빙 문화의 확산으로 사람들이 통조림 수프를 멀리하면서 2015년 이래 판매량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트하우스팜스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2016년 리콜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미국 전역에 공급했던 단백질 셰이크와 카푸치노 음료에서 "이상한 맛과 냄새가 난다"는 고객들의 항의와 식중독 발병 신고가 이어진 것이다. 이 사태로 회사는 약 380만 개의 음료를 자진 리콜해야 했다. 이처럼 볼트하우스팜스는 획기적인 마케팅 캠페인을 통해 당근이라는 평범한 농산물을 스타 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비즈니스의 기본인 품질 및 공급망 관리에 소홀한 결과 위기를 맞이했다.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을 충실히 지키지 못한 결과다. 인수된 지 6년 만에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나온 볼트하우스팜스는 과거의 실패를 교훈 삼아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 이 글은 HBR 2015년 10월호 '당근을 '쿨'하게 만든 볼트하우스팜스 CEO' 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인터비즈 임유진, 이방실 정리
inter-biz@naver.com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