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CIA 비밀문서에서 발견된 '조직 망치는 법'

조회수 2018. 12. 17. 14: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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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도?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 중앙정보국 CIA의 전신인 OSS는 적국에 침투한 스파이들에게 비밀 소책자를 배포했다. 어떻게 하면 적진에 잠입한 스파이가 적국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연합군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안내하는 책자였다. 이른바 '사보타주(태업·怠業) 현장 매뉴얼'이다.

출처: CIA 트위터, 위키피디아 커먼스
(2008년 비밀 기간이 해제된 뒤 CIA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보타주 매뉴얼(오른쪽))

이 지침에는 한 가지 매우 독특한 전략이 포함돼 있다. 바로 적국 조직 내에 '복잡성'을 만들어내라는 것이다. 구체적 지침으로는 △모든 일을 정해진 경로나 창구를 통해 진행하자고 고집할 것 △의사결정을 단축하기 위한 어떤 방법도 용인하지 말 것 △지시를 내리는 절차나 방식을 늘릴 것 △한 사람이 충분히 승인할 수 있는 사안도 세 사람이 결재하게 만들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CIA는 이런 지침들이 모두 "적발될 가능성을 최소화하면서도 조직을 망칠 수 있는 간단한 행동"이라고 묘사하며 실제로 이러한 행동들은 "미묘하지만 매우 파괴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사보타주 현장 매뉴얼의 항목들을 하나하나 읽다 보면 왠지 낯설지 않다. 현재 우리 조직에서도 이러한 복잡성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대한 자주 회의를 열어라', '모든 명령은 서면으로 요구하라'와 같은 항목들은 우리가 현대 직장에서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들이다. 실제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미국 및 유럽의 100여 개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복잡성 현황을 추적 관찰한 결과, 기업의 복잡성은 해마다 평균 6.7%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5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35배 복잡해진 수준이다. 

복잡성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

복잡성은 시간과 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본질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비본질적 업무에 시간과 자원을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보고, 부서 간 업무 떠넘기기, 비효율적인 회의 등으로 인한 근무시간 낭비가 여기 해당한다. 문제는 이러한 비효율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수익성을 저하시킨다는 점이다. 독일의 기업용 솔루션 업체 SAP가 2013년 발표한 '글로벌 복잡성 지수(Global Complexity Index)'에 따르면, 복잡성은 기업의 수익성을 약 10분의 1 이상 감소시킨다. 이는 세계 상위 200대 기업의 수익 2370억 달러(한화 267조 2175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두 번째로 복잡성은 조직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와 동기를 저하시킨다. 직원들은 대개 처음에는 어려운 구직 전쟁을 뚫고 들어왔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기도 하고, 열심히 업무를 배우며 그 과정에서 발견한 기존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조직 내에서 어떻게 벽에 부딪히는지, 조직의 복잡성이 시스템의 개선을 얼마나 어렵게 만드는지 절실히 경험하면서 좌절과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직무로부터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몰두하지 않는다. 

출처: 동아일보

이러한 자원낭비와 조직원들의 사기 저하는 결국 고객과 시장에 대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전통적인 기업 조직은 직급 체계에 따라 승인 절차를 층층이 거치는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매년 다음 해 기업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보고와 수정, 협의 미팅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전략 수립 활동이 반복되는 동안 제때 처리돼야 할 많은 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채 쌓이게 된다. 내부적인 회의와 보고를 수없이 반복하며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동안 회사의 본질적 경쟁력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은 낭비되는 것이다.

조직의 위계질서와 관료주의... 기업을 복잡성의 늪으로 빠뜨린다

출처: 동아일보

복잡성은 기본적으로 '리더의 불안'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되도록 안전하고 확실하게 일하고 싶어 하고, 동시에 그 일에 대해 자신이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 한다. 이런 상충하는 욕망은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가령 이런 식이다.


국내 대기업의 한 최고위 임원 A는 위기를 극복하라는 임무를 띠고 계열사 간 이동을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됐다.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은 곧 관리 활동의 증가로 이어졌다. A 임원은 아무 이슈가 없어도 정기적으로 매주 월요일 아침 8시 지방 공장으로 출근해 팀장 이상 전원이 참석하는 회의를 주재했다. 이로 인해 중간관리자들은 딱히 제기해야 할 이슈가 없어도 월요일마다 회의에 올릴 어젠다를 짜내느라 고민해야 했다. 1년간 월요 회의에서 논의된 안건에 대해 후속 작업을 지시받은 과제는 100여 개가 넘었다. 하지만 그 과제 중 실제로 A 임원이 기억하고 점검한 과제는 10% 미만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A 임원과 친분과 신의가 돈독한 B가 해당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하자, A가 조장하던 무수히 많은 관리 활동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월요 회의 시간도 30분 이내로 대폭 줄어들었다. 자신을 믿어주는 상사(B)가 오니 매번 새로운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불안감에서 A 임원이 벗어난 덕택에 생긴 변화였다. 

어떤 리더들은 일을 계획하는 과정 자체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인지적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활동을 계획하고 문제와 해결책을 의논하기 위해 회의를 열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 자체가 성취라고 믿는 것이다. 이럴 경우 조직은 실제 성과를 내는 것보다 형식적인 기획 단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게 된다. 


그런가 하면 조직 내 복잡성이 '전문성과 고민의 결과'라고 착각하는 유형도 있다. 일명 '대가(Master)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난해한 아이디어나 물건을 만났을 때 그것을 날카롭고 뛰어난 지성의 결과물로 여기는 경향이다.  


이렇게 형성된 복잡성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은 이후에 그 복잡성을 더욱 배가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이나 소속 조직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자동적으로 남들이 하는 대로 하게 된다.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기보다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이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은 종종 일관적인 일처리 방식이야말로 조직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정립하는 길이라고 여긴다. 일관성이 없게 행동하는 사람은 조직의 신뢰를 얻기 어렵고 변덕스럽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기존 방식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행동에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이유다. 

조직의 성과를 저하시키는 복잡성, 어떻게 제거해야 할까?

조직 내 복잡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리더 스스로 복잡성의 근간이 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줄여야 한다. 과거 불안과 두려움은 경영 기법으로 중요하게 활용된 심리 기제다.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므로 직원들을 감시해야 하고, 절차를 위반할 때 처벌하지 않으면 조직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 감시와 처벌이 오히려 조직의 성과를 저해한다는 증거가 다수 등장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리더부터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은 통제받지 않아도 일을 잘할 수 있고, 집단 내에서 타인을 돕거나 업무 자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보고서의 숫자가 틀렸고 그것을 자신이 먼저 발견했다 해도 그것이 부서 전체를 발칵 뒤집고, 직원들에게 고함을 칠 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혼내지 않으면 직원들이 배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접어야 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면 실수는 불가피하다. 실수 없이는 건설적인 시도도, 유익한 학습도 일어나지 않는다. 즉 좋은 리더라면 실수를 찾아내 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실수한 사람이 배울 수 있도록 돕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출처: 어린이동아

또한 리더는 자신이 직원을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많은 리더는 직원들에게 전적으로 일을 맡기면 실수가 늘어나거나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 걱정한다. 그래서 자신이 모든 업무와 결정 사항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권한 위임은 오히려 더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리더의 압박은 줄이면서 직원들의 성취감을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 스스로 복잡성의 관성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사회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인지적 폐쇄(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의 것을 반복하려는 인지적 경향)'는 마감이나 의사결정을 빨리 내려야 하는 압박과 두려움에 시달릴 때, 과도한 업무나 책임으로 인한 피로감과 스트레스 등이 생길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따라서 리더들은 인지적 폐쇄가 자신이 일하는 방식이나 환경의 결과라는 점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스로가 쫓기고 있는 상황이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거나 업무가 과중해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건 아닌지 진단해 보고, 더 나아가 업무 외에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도 좋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조직 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일하는 방식 혁신', '워크 스마트', '심플 워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복잡성 해소는 근본적으로 리더의 인식 변화에 달려 있다. 리더는 스스로 불안을 인지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조직의 부담을 없애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이미 관성적으로 존재하는 복잡성의 요소들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모든 것을 통제하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필수적인 역할 외에 의사결정 권한을 하부에 위임해야 한다. 혹시 이러한 변화의 시도도 없이 효율적인 조직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통제 욕구를 그대로 지닌 채 과거의 경영 관리 패러다임을 답습하는 리더 아래에서는, 어떤 현란한 경영 기법도 소용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60호
필자 이경민·장은지 이머징(Emerging Leadership Interventions) 공동대표

인터비즈 임유진, 이방실 정리

inter-biz@naver.com 

* 미표기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 표지 이미지 출처: CIA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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