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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안알랴줌!' 그런데 3조9천억 매출 올리는 음향기업

조회수 2018. 11. 29. 17: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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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 회사로 남겠다" 음향회사 BOSE의 고집

고객들에게 '우리 상품의 성능은 몰라도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놀랍게도 제품의 스펙을 공개하지 않는 기업이 실제로 있다. 무슨 배짱인가 싶지만 2015년 기준 1만 명이 넘는 직원 수에 매출은 무려 35억 달러(약 3조 9천억 원)에 달한다. 전세계적인 음향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창업주의 경영 철학에 따라 여전히 비상장회사로 남아있기를 고집한다. 바로 50년 전통의, 초보자와 전문가 모두에게 사랑 받는 세계적인 음향 브랜드 '보스(BOSE)'다.

'89:11 법칙' 믿고 뒷면에 스피커 탑재한 괴짜... 오디오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다

출처: 위키피디아
(故 아마르 보스 창업자)

보스는 여러모로 괴짜 같은 구석이 있는 기업이다. 그런 이미지에 걸맞게 故 아마르 보스(Amar Bose, 1929~2013) 박사가 보스를 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답답해서'였다. 그는 전자제품에 관심이 깊었다. 이미 13살 때 라디오 수리로 용돈을 벌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MIT 전자공학 교수 커리어까지 이어진다. 전자공학의 전문가였을뿐만 아니라 상당한 클래식 마니아였던 그는 큰 맘 먹고 구입했던 오디오 기기의 음질에 크게 실망하고 만다. 1960년대 당시 고급 오디오 시장은 음질보다는 커다란 진공관을 꽂아 출력을 높이거나 외관을 화려하게 꾸며 인테리어 제품으로 어필하는 흐름이었기 때문에 음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1964년, 보스 박사는 자신이 교편을 잡고 있던 MIT에서 산학협력 연구소 형태로 '보스 코퍼레이션(BOSE Corporation)'을 설립했다. 그는 MIT의 고급 연구진과 최첨단 컴퓨터 시스템 등 인프라를 바탕으로 하이엔드 오디오 시스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보스는 이때부터 철저히 음향이론과 실험에 입각하여 제품을 설계하고 생산한다는 방침을 지켜오고 있다. 

출처: BOSE 공식 홈페이지
(BOSE 901 시리즈 VI 버전)

하지만 당시로서는 이러한 음향과 과학의 결합은 생소한 조합이었고, 자연스레 기존 스피커들이 가지고 있던 통념에 도전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67년 보스의 첫 공식 모델인 '보스 901'부터 파격 그 자체였다. 이 제품은 기존 스피커와 달리 스피커를 뒷면에 8개, 앞면에는 고작 한 개만 배치되는 설계를 갖고 있었다. 앞면보다 뒷면에 달린 스피커 갯수가 많았기에 고객들이 앞뒤를 혼동해 반대로 설치하는 일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보스의 연구진은 자신감이 있었다. 콘서트장에서 들리는 소리의 성분을 연구진이 직접 분석해본 결과 직접 들리는 소리는 고작 11%에 불과한 반면, 반사음은 무려 89%에 달했다. 당시 보스 스피커의 설계는 이러한 간접적인 반사음까지도 모두 고려하는 최신 기술이 적용된 결과였다. 단순히 좋은 소리를 내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청음자의 환경과 경험까지도 고려하는 최초의 스피커 였던 것이다. '89:11' 법칙이라 불리는, 보스의 이러한 실험 결과는 오늘날의 제품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최신 음향기술이 집약된 901 모델의 성능은 예상대로 뛰어났지만 높은 가격과 생소한 디자인 탓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후 901 모델을 소형화한 301 모델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판매가 늘기 시작했고,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형 음향 시스템 시장에 뛰어들며 보스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12년 간 5천만 달러 투입... "상장기업이었다면 나는 수백 번도 더 쫓겨났을 것"

보스는 창업 50년을 훌쩍 넘긴 전통 있는 기업이며, 규모 또한 세계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상장기업으로 남기를 고집하고 있다. 이 또한 보스라는 기업의 본질이 수익이 아니라 끊임 없이 기술을 혁신하는 데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창업주의 경영 철학에 따른 것이다. 그는 상장을 하게 되면 주주들의 성화에 못 이길 것임을 알았다. 지금처럼 순이익 전부를 R&D에 투자하지도, 장기적인 관점을 유지하지도 못하게 된다면 회사의 정체성이 흐려질 것을 걱정했다.

출처: BOSE 공식 유튜브
(아마르 보스 박사가 비행기에서 노이즈캔슬링 기술을 처음 계산했던 수식)

오늘날 보스가 독보적인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노이즈캔슬링 기술에 관한 에피소드가 그렇다. 1968년, 보스 박사는 스위스 항공을 이용해 해외로 가던 중 비행기의 소음이 매우 거슬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외부 소음을 제거할 수 있는 오디오 기술의 기본적인 수학적 계산을 비행기가 운항하는 동안 간단히 마칠 수 있었다.

출처: BOSE 공식 홈페이지
(노이즈캔슬링 기술 원리(좌) / 노이즈캔슬링 기술이 적용된 이어폰)
출처: BOSE 공식 홈페이지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파동의 특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파동은 자신과 정반대 위상을 가지는 파동을 만나게 되면 상쇄되는 성질을 가진다. 소리 또한 파동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소음을 받아 완전히 반대되는 모양의 파동을 스피커로 쏴줄 수만 있다면 소음을 말끔하게 상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간단한 아이디어가 현실의 제품으로 나오기 까지는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장장 11년이라는 시간과, 지금도 꽤 큰 금액인 5천만 달러(약 568억 원)의 개발자금이 투입되었다. 보스 박사는 개발이 마무리 되고 나서야 투자된 금액의 규모를 알게 되었는데, 그 조차도 "우리 회사가 상장기업이었다면 나는 수백 번도 더 쫓겨났을 것이다"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 개발에 집중한 결과 보스는 노이즈캔슬링 분야에서 후발주자와 큰 격차를 벌리며 1위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며, 특히 파일럿, 군용 제품 등 특수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 


보스의 끊임 없는 기술 혁신 도전은 적용 분야를 찾아 자연스럽게 홈 오디오를 넘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됐다. 대표적으로 카 오디오 시스템 분야를 들 수 있다. 1982년 보스는 캐딜락 스빌(Seville) 모델의 사운드 시스템을 설계했다. 자동차는 공간의 한 가운데 앉을 수 없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음향이 불균형하게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스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설계에 참여해 탑승 환경에 맞는 맞춤 세팅을 제공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들이 개발한 카 오디오 시스템은 이후 아우디, 페라리, 혼다, 폭스바겐 등 다양한 자동차 브랜드에 적용되었다. 비록 상용화에는 실패했지만 노이즈캔슬링의 완충 원리를 차량 서스펜션이나 시트에 적용한 기술을 폭스바겐에서 도입하기도 했다.

고객의 삶의 문제를 개선할 수 있어야 좋은 기업이다

자, 만약 음식을 차갑게 해서 오랫동안 보존하고 싶다면 당신은 냉장고를 살 겁니까? 아니면 가게에 가서 압축기, 냉각기, 냉매, 문짝을 산 다음 조립할 겁니까? 이건 미친 짓이에요. 그냥 단지 음식이 차갑기만 하면 된다고요.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가게에 가서 모든 오디오 장비를 따로따로 산 다음, 이걸 연결하고 조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냥 좋은 음악을 원한다고요! (아마르 보스 박사, 위클리비즈 경영의 신을 만나다 中)

예나 지금이나 보스의 목표는 '고객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여 좋은 음악적 경험을 주는 일'이다. 제품의 스펙을 비공개 하는 결정 또한 이러한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보스 박사의 뒤를 이은 밥 마레카 보스 CEO 역시 단순히 기술력을 과시하는 일은 보스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실질적으로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마르 보스 박사는 2007년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부자 랭킹에서 271위에 올랐던 바 있다.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2013년 타계하기 전 MIT에 대부분의 주식을 기부했다. 보스의 기반이 되어주었던 MIT에 대한 감사 표시이자 후학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보스처럼 장기적으로 도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기업의 본질이 수익이 아니라 인간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다고 말해왔던 그 다운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터비즈 오종택,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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