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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의 늪?.. "신에게는 아직 12명의 결재라인이 남아있습니다"

조회수 2018. 11. 15.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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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습니까 부장님!"


그(녀)는 자신의 제안서를 살펴보는 부장 앞에서 긴장을 숨기지 못한다. “좋네”라는 시원스런 부장의 대답에 “해냈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쥔 것도 잠시. 부장의 뒤로 늘어선 수 많은 결재라인에 그는 두 눈을 질끈 감는다.

(스태프서비스그룹 광고 캡처 후 편집)

“다음은 본부장, 이어서 상무, 다음은 전무, 그 다음은 부사장, 마지막으로 사장!... 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선 회장, 드디어 고문에 이어 슈퍼 고문, 또 하이퍼 고문, 마침내 그레이트 고문. 아! 글로벌 확인도 받아야….”


눈 앞에 펼쳐진 결재의 늪에 경악한 그는 결국 스마트폰을 들어 이직처를 검색하고 만다.


일본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었던 ‘오- 인사, 오- 인사オー人事、オー人事’라는 제목의 TV광고다. 채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태프서비스그룹スタッフサービスグループ의 광고로, 총 6편의 시리즈가 제작·방영됐다. 앞서 소개한 광고는 이 중 <승인> 편이다.

이 기업의 ‘오- 인사’ 시리즈 광고는 1997년 처음 방영돼 많은 직장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국내외 광고상도 수상했다. 광고가 말하는 바는 간단하다. 기업 내에서 ‘있을 수 없지만,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부조리하고 비효율적인 상황과 문화를 꼬집은 후 “이런 직장에선 일할 수 없다”는 줄거리가 반복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8년 2월, 이 ‘폐부를 찌르는 광고’는 부활했다. 스태프서비스그룹의 홍보 담당자는 “지난해 11월 온라인에 공개한 현대판 오-인사 광고가 400만 회 가량 재생을 기록했다”고 밝히며 해당 광고에 공감을 한 직장인들이 많아 TV광고로까지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소개한 ‘승인’ 편 역시 그렇다. 슈퍼 고문, 하이퍼 고문을 거친 12명의 결재라인이라니…. 처음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지만, 왠지 있을 법한’ 이야기다. 당신이 사원이라면 그 위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본부장을 거쳐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등의 임원급과 부회장, 회장까지 12단계의 상사가 존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출처: 인터비즈
(당신의 기안서는 한 달이 넘는 ‘결재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일본의 수직적 기업구조를 닮아 있는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격하게 공감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서구권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한 국내 기업들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중소기업에서는 딴 나라 이야기다.(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했다고 말하는 기업 역시 겉과 속이 다를지 모른다.)


과거 국내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수직적 조직문화, 즉 계층적 의사결정 문화는 사실 오늘날의 비즈니스가 요구하는 부분과 상충하는 지점이 많다. 앞선 광고 사례에서 등장했듯 수많은 결재라인을 거치느라 늦어지는 의사결정이 가장 큰 문제이고, 조직원들의 창의적 활동을 제한하는 문제도 있다. 계층과 위계로 인해 굳어버린 조직은 신속한 대응과 유연한 사고를 하기 어렵다. 홀라크라시(관리자 직급을 없애고 조직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의사결정과 업무를 수행하는 제도)를 도입했던 미국 기업 자포스가 성공적인 혁신을 일궜다고 평가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장은지 이머징 리더십 대표는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DBR)를 통해 “빠른 가치사슬의 재편, 파괴적인 진화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 속에서 기존 수직적, 위계적 조직이 가진 대응력이 한계를 보이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최근 많은 대기업들이 수평적 조직으로의 변신을 시도하며 직급 및 호칭 파괴 등의 뉴스들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나 온라인 시장 경쟁력이 중요해진 현시대에 이르러서는 빠른 의사결정이 더욱 중요해졌다. “기존 조직과 같이 계층적 의사결정을 거치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온라인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을 정도다.


물론 수직적 조직이 갖는 장점과, 그러한 조직문화가 더욱 적합한 업종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면의 약점들이 변화하는 비즈니스 시장에 내몰린 기업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해선 안된다.

인터비즈 황지혜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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