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속 누가 들어도 '가짜' 웃음 소리 ..도대체 왜 쓰는 걸까?

조회수 2018. 11. 6.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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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을 설명하는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Robert Cialdini) 저, 21세기북스)』에는 사업가들이 인간의 심리학적 본능을 이용해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다양한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가짜 웃음(canned laughter)’에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방송 중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가짜 웃음’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짜 웃음이 바보스러우며 어색하다고 느끼고, 또한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TV 제작자들은 가짜 웃음을 프로그램에 자주 사용한다. 인간의 심리 분석에 능한 제작자들이 억지웃음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출처: MBC 『무한도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왜 누가 들어도 명확히 구분되는 가짜 웃음 소리를 사용하는 것일까?)

저자는 TV 제작자들이 사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회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코미디 프로그램에 가짜 웃음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더 자주 더 오래 웃을 뿐만 아니라 그 프로그램이 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짜 웃음은 프로그램의 수준이 낮을 때 더욱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는 TV 제작자들이 억지웃음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책의 저자는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고 말한다. 바로 가짜 웃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의 유머에 공감해 자연스럽게 웃는 게 아니라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위조된 웃음에 우리는 왜 우호적으로 반응하는 걸까? 

원인은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치알디니에 따르면 가짜 웃음이 왜 그토록 효과적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라는 설득 법칙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쉽게 말해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논리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이 법칙은 특정 상황에서 우리 행동의 옳고 그름은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 상황이 극장에서 먹다 남은 팝콘 봉지를 어떻게 할까의 문제이든,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빨리 달릴 것인가의 문제이든, 무단횡단을 할 것이냐의 문제이든 상관없이, 해답은 우리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면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은 여러모로 매우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사회적 증거'에 따라 행동하게 되면 실수할 확률이 줄어든다. 많은 경우 다수의 행동은 올바르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증거의 이러한 특성은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 된다. 앞에서 살펴본 가짜 웃음의 예는 우리가 사회적 증거에 따라 아무 생각 없이 반응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유머 자체에 반응해 웃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웃음소리에 반응해 웃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고 꼭 집어 말했다.   

어미 칠면조와 박제 족제비 실험

출처: 픽사베이

이 책에 제시된 어미 칠면조와 족제비의 예는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미 칠면조와 족제비는 천적 관계다. 족제비를 발견하면 어미 칠면조는 꽥꽥 소리를 지르고 부리로 쪼고 발톱으로 할퀴는 등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이렇듯 천적 앞에서는 거친 어미 칠면조이지만 새끼에게는 한없이 유하다. 새끼 칠면조가 ‘칩-칩-’이라는 소리를 내면 어미 칠면조는 갑자기 모성애를 발휘해 새끼 칠면조를 정성으로 보살핀다.


재미난 사실은 동물 생태학자 폭스(Fox, 1974)의 박제 족제비 실험에서 나타난다. 박제된 족제비 속에 녹음기를 장치해 ‘칩-칩-’이라는 소리를 내자 어미 칠면조가 박제 족제비를 우호적으로 대할 뿐만 아니라 품에 안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녹음기를 끄자마자 어미 칠면조는 다시 박제 족제비를 공격했다. 가짜 새끼 칠면조 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미 칠면조는 ‘칩-칩-’이라는 녹음기의 소리에 의해 자동적으로 모성애라는 테이프를 작동시킨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유감스럽게도 어미 칠면조와 박제된 족제비의 관계는 가짜 웃음을 사용하고 있는 TV 제작자들과 일반 시청자들과의 관계와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언제 웃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코미디의 유머의 질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웃음소리에 따라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치 새끼 칠면조 없이 ‘칩-칩-’ 소리만 가지고도 어미 칠면조의 행동을 유도해 낼 수 있는 것처럼, 진정한 유머 없이 ‘하하’라는 가짜 웃음 소리만 가지고도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도해 낼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에서 TV 제작자들은 사회적 증거에 따라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우리의 성향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오페라 극장의 ‘박수 부대’

인간이 사회적 증거에 자동으로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한 또 다른 예는 TV를 벗어나 오프라인(Offline)에서도 발생한다. 책에 등장한 오페라 역사 중 한 사건을 보자.

출처: 위키미디어

‘박수 부대(claquing)’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1820년 당시 오페라 극장의 단골손님이었던 소통(Sauton)과 포르셰(Porcher)라는 두 사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둘은 단순한 오페라 관객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실 ‘박수’라는 제품을 팔고 있던 사업가였다. ‘공연 성공 보장보험(L' Assurance des Succes Dramatiques)’이라는 공식 직함까지 내걸고, 그들은 청중의 열화 같은 반응을 보장하기 원하는 가수나 오페라 극장 경영자에게 자신과 종업원들을 대여했다.


소통과 포르셰에 의해 꾸며진 반응은 너무도 효과적이어서 나머지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었다. 그 결과 이러한 박수꾼의 사용은 오페라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지속적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 사학자인 사빈(Sabion)은 이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830년에 이르러 박수 부대는 그 절정을 맞게 됐다. 이들은 밤에는 박수치느라 바빴고 낮에는 그들의 수고에 대한 돈을 걷느라고 바빴다. 그러나 소통과 포르셰 식의 박수 부대가 모든 종류의 오페라에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가 그린 박수꾼 모습을 담은 작품 ‘Le claqueur(1842)’)

박수 부대가 점차 성업하게 되면서 박수꾼들도 점차 다양한 전문영역을 갖추게 됐다. 가짜 웃음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킥킥거리는 웃음, 껄껄대는 웃음, 배꼽을 잡는 웃음 등 각종 웃음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처럼, 박수꾼들의 전문영역도 언제라도 울 수 있는 사람, 열광적으로 ‘앙코르’를 외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현대의 코미디언처럼 주위 사람들을 가장 빨리 웃게 만들 수 있는 웃음을 가진 사람 등으로 세분화됐다. 이러한 관행은 이탈리아, 비엔나, 런던, 뉴욕 등으로 퍼져갔다.


책에 따르면 이들 박수 부대와 현대의 TV 속 가짜 웃음 사이의 공통점이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들 박수 부대가 그들이 가짜라는 사실을 전혀 숨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오페라 공연 때마다 동일한 좌석에서 박수를 보냈고 해를 거듭해 박수꾼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박수꾼의 리더는 20년이 넘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박수 부대는 당당하게 공개적인 서비스 광고를 게재했다. 그들이 영향을 미쳐야 하는 청중들이 해당 내용을 읽는다 해도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그들은 공공연하게 그들의 서비스를 광고했다. 박수 부대가 등장한 지 100년도 넘은 후에 영국 런던에서 발행됐던 『음악 세계(Musical Times)』의 독자들은 이탈리아 박수꾼들이 그들의 서비스 요금을 공개적으로 광고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편집자주: 오늘날 다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업가들은 소통과 포르셰처럼 잠재 고객들이 사회적 증거 법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행동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공하는 사회적 증거의 출처를 숨길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이를 마케팅 수단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이는 사업자 입장에선 비열한 행위가 아닌 전술의 일환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이 어딘가 속고 있다는 뒤통수 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본능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니 저, 21세기북스)』 내용 기반으로 재구성

*책에 실린 논문 출처

Fuller, R. C. C., & Sheehy-Skeffington, A. (1974). Effect of group laughter on responses to humorous materials, Psychological Reports, 35, 531~534; 

Smyth, M. M., & Fuller, R. G. C. (1972). Effect of group laughter on responses to humorous materials, Psychological Reports, 30, 132~134;

Nosanchuk, T. A., & Lightstone, J. (1974). Canned laughter and public and private conformity.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 29(1) , 153-156.

인터비즈 박성준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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