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로 만든 닭 인형', KFC를 살리다

조회수 2018. 10. 27.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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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미식축구 선수를 스카우트하듯이 최고경영자(CEO)를 뽑는다면, 데이비드 노박이 단연 1순위다. 그에게 버크셔해서웨이의 경영을 맡기고 싶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데이비드 노박 전(前) 얌브랜드 CEO)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버핏도 극찬한 데이비드 노박은 KFC, 피자헛, 타코벨 등 유명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소유한 얌브랜드(Yum! Brands)의 CEO를 역임한 기업가다. 펩시코의 마케팅 및 영업 총괄 임원직을 거쳐 KFC와 피자헛 사장을 지내고, 1999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얌브랜드 수장을 맡아 2012년 <Chief Executive> 매거진이 선정한 ‘올해의 CEO’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쥔 노박은 경영학에서 모범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내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출처: Chief Executive
(2012년 <Chief Executive>가 선정한 올해의 CEO로 꼽힌 데이비드 노박)

1994년 노박이 KFC 사장을 맡았을 당시 회사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노박 스스로가 밝혔듯 “당시 KFC는 펩시코의 골칫덩어리”였다. 몇 년째 매출 부진과 적자가 이어지며 프랜차이즈 운영사업자들은 물론 내부 직원들조차 회사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심지어 경영진과 가맹점주들 간 불신의 골이 깊어 서로를 싫어하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노박은 경영진들을 한데 불러모았다. 그리고 “싸움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많은 가맹점주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KFC에 피와 땀, 눈물을 쏟아 부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신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동시에 가맹점주들과의 신뢰 회복을 위해 9개 지역 프랜차이즈 협회에 일일이 참석, “당신이 KFC 사장이라면 무엇을 하겠소?”라고 물으며 적극적인 소통에 나섰다. 이 같은 노력을 통해 KFC는 가맹점주들과 긴밀히 협력, ‘크리스피 스트립(Crispy Strips)’과 ‘치킨 팟 파이(Chicken Pot Pie)’라는 신메뉴를 탄생시켰다. 이 메뉴들로 KFC는 그간의 매출 부진의 늪에서 벗어난 것은 물론 흑자 전환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출처: KFC
(KFC 크리스피 스트립)

노박은 가맹점주들은 물론 내부 직원들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힘썼다. 그는 무엇보다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는 직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것이야 말로 활기를 잃은 조직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조직원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노박이 택한 방법은 사소한 것이라도 직원들을 ‘인정(recognition)’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유쾌한 방법으로 말이다.


노박은 고무로 만든 닭 모양 인형(floppy chickens)을 가방에 가지고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좋은 성과를 내는 직원들에게 다가가 그 인형을 건넸다. 가령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라면 “조리법이 끝내준다”고 칭찬하며 난데없이 가방에서 고무 치킨 인형을 건네는 식이었다. 인형에는 일렬 번호와 함께 간단한 메시지를 적고 직접 사인도 해서 줬다. “고무 닭을 먹지는 못할 테니…”라며 100달러를 선물로 챙겨주는 ‘센스’도 발휘했다.

출처: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
(KFC 사장 재직 시절 데이비드 노박은 조직원 간 서로의 헌신과 노고를 인정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무 치킨 인형을 가방에 넣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우수 직원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노박은 해마다 100명 정도에게 고무 치킨 인형을 선물했다. KFC의 많은 직원들이 그에게 고무 치킨 인형을 받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다. 단적인 예로, 얌브랜드의 유능한 엔지니어였던 척 그랜트는 세상을 떠날 때 그의 부인에게 “내가 죽어서도 가지고 가고 싶은 건 고무 치킨 인형”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내는 남편의 유지를 따랐고, 노박이 준 인형은 그랜트의 시신과 함께 관 속에 안치됐다. ‘인정의 힘(power of recognition)’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출처: SHRM
(SHRM(Society for Human Resource Management)이 개최한 컨퍼런스에서 '인정'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데이비드 노박)

1996년 피자헛 사장직을 맡아서도 그의 인형 돌리기는 계속됐다. 단지 이번엔 닭 모양 인형이 아니라 브랜드 특성에 맞게 플라스틱 치즈 인형을 만들었다. 이어 얌브랜드— KFC와 피자헛, 타코벨 3개 브랜드가 1997년 펩시코에서 스핀오프 돼 설립된 회사로 당시 사명은 트라이콘 글로벌 레스토랑(Tricon Global Restaurants)이었다—의 CEO가 된 이후엔 환하게 미소 짓는 치아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내는 소리이자 회사명(Yum)을 연상케 하는 재치있는 선택이었다. 

출처: 얌브랜드 홈페이지
(데이비드 노박(좌측 사진 왼쪽)은 우수 직원(좌측 사진 오른쪽)에게 인형을 선물로 준 후 해당 직원과 단독 사진을 찍어 기념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스꽝스러운 인형과 CEO의 진심 어린 칭찬은 얌브랜드 직원들을 춤추게 만들었다. 1999년부터 2014년 12월31일까지 노박이 얌브랜드 CEO로 재직했던 기간 중 회사의 시가총액은 40억 달러에서 320억 달러로 8배나 늘었다. 2011년 미국 경제 전문지 <Fortune>이 선정한 가장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에도 오른 얌브랜드는 현재 전 세계 135개국에 4만5000여 개의 매장을 두고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노박은 현재 얌브랜드를 떠났지만, 이 회사에는 직원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일은 심각하고 진지하게 해도 일터는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노박의 경영 철학이 기업의 DNA로 깊게 각인된 덕택이다. 혹시나 “왜 우리 조직원들에겐 소속감도 없고 주인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까” 고민하는 리더가 있다면, 열정 없이 일하는 조직원들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이 노박과 같은 리더십을 보이고 있는지 먼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고문헌]

- The Education of an Accidental CEO(Crown Business, 2007)

- 이기려면 함께 가라(흐름출판, 2012)         

인터비즈 이방실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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