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시장 진출한 '간장회사'..도대체 왜?

조회수 2018. 10. 22.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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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1987.6.1 매일경제 10면에 실린 커피 시장 관련 기사)

1987년 국내 코피(커피) 시장에 전운이 감돌았다. 대표적 식품기업이던 샘표식품을 비롯한 여러 회사들이 시장에 새롭게 뛰어든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특히 샘표는 방계회사인 조치원식품을 통해 커피업체 시스코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당시 시장을 점령하고 있던 동서식품(점유율 85%)에 도전장을 던졌다.


사실 샘표라는 브랜드를 떠올릴 때 가장 익숙하게 따라 붙는 제품은 간장이다. 지금에 와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당시에도 샘표하면 떠오르는 건 간장이었다.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라는 CM송까지 큰 화제가 됐을 정도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샘표’의 유명세가 오히려 커피 사업에 악영향을 끼쳤다면 어떨까? 

출처: 1977.03.22 동아일보 7면
(시스코가 인수되기 전 신문에 게재한 타임커피 지면 광고)

당시 샘표식품은 간장에서 비롯된 ‘샘표’ 브랜드 인지도를 무기로 커피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앞서 설명했듯 국내 캔커피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던 시스코를 인수하며 ‘타임 커피’를 판매한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냉담했다. ‘샘표 간장’이 가진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커피에서 간장 맛이 날 것만 같다” “커피가 짤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결국 타임커피는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샘표 역시 뼈아픈 실패 이후 커피 시장에서 등을 돌렸다. 

(샘표하면 떠오르는 간장의 이미지 때문에 소비자들은 샘표의 커피에서도 간장을 연상했다 (실제 제품이 아닌 합성 이미지))

샘표가 브랜드 확장(brand extension)에 실패한 이유는 ‘모(母)브랜드와 확장브랜드 간 카테고리 유사성이 어떻게 작용했는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브랜드 확장의 성공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카테고리 유사성이 있는 경우 소비자들이 확장 브랜드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언제나 통용되는 법. ‘샘표=간장’ 처럼 특정 카테고리나 속성에 대한 연상 작용이 지나치게 강한 경우엔 역으로 브랜드 확장성이 줄어들고 만다. 혹자는 커피와 간장이 둘 다 검은색 액체였던 것 역시 이러한 연상작용을 촉진 시킨 요소라고 말한다.


비슷한 사례로 2013년 농심에서 야심차게 출시한 강글리오 커피의 실패를 들 수 있다. 샘표와 마찬가지로 ‘농심=라면’이라는 이미지에 네모 반듯한 포장, 물에 녹아 내리는 분말 제형까지 더해지며 강글리오는 “라면 스프 아니냐” “라면맛 커피냐”는 오명만을 새기고 사라졌다. 


하지만 이러한 실패가 샘표에게 남기고 간 것은 있는 듯 하다. 커피 시장에서의 실패 이후 샘표는 또다른 제품을 통해 꾸준한 브랜드 확장을 시도했고 2007년 내놓은 육포 브랜드 ‘질러’의 성공을 일궜다. 출시 10주년을 맞은 지난해까지 질러의 누적 판매량은 5700만 봉.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을 뿐 아니라 샘표의 효자 브랜드 역할까지 하고 있다. 

출처: 샘표 홈페이지
(질러(왼쪽)와 순작 제품 이미지)

커피시장에서의 실패와 육포 시장에서의 성공은 “어떤 브랜드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했는가”에서 갈린다. 샘표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실패한 커피와 달리, 육포의 경우 출시 초기 샘표 대신 질러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통해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 했던 것이 주요했다는 분석이다.


질러 뿐만이 아니다. 샘표의 서양식 전문 프리미엄 브랜드 폰타나나 차 전문 브랜드 순작 역시 초창기 샘표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대신 개별 브랜드를 강조했다. 이 같은 브랜드 전략을 두고 “‘샘표’ 브랜드는 등록상표 중 가장 오래되었을 정도로 장류 브랜드 인지도면에서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 회사에서 최근 나온 신제품들 에는 ‘샘표’라는 기업명은 찾아 볼 수가 없다.”는 보도(매일경제 2005.7.5)도 나왔다.  


브랜드 확장 실패의 대표 사례로 손꼽히는 타임은 비록 샘표에 커피 얼룩처럼 짙은 흑역사를 남겼지만, 또다른 성공을 만든 양분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인터비즈 황지혜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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