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유교사상 때문? "그러라고 한 적 없다"

조회수 2018. 10. 15. 17: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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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쯤은 만나게 되는 '꼰대'와 '갑질하는 사람'.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우선 둘 다 권력이나 지위를 이용해 누군가에게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같다. 그러나 꼰대는 인성 자체가 나쁜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갑질은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동반하는 나쁜 행위이지만, 꼰대는 단지 권위적이고 완고할 뿐 상대에게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꼰대는 결코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다. 여전히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은 면할 수 없어 보인다.

출처: 해당 프로그램 캡처 후 편집
(KBS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불상사' 코너에서는 직장 내 다양한 '진상 상사'의 모습이 등장한다)

꼰대질의 유래는 유교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유교는 가부장제를 만들어 여성과 어린이를 억압하고, 신분제를 공고화해 사회를 정체되게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 외세의 침략에도 대응하지 못한 문약(文弱)한 나라로 만든 망국 정치의 장본인이다. 뜬구름 잡는 학문만을 최고로 숭상하면서 탁상공론을 일삼고, 농업, 공업, 상업은 천시해 경제의 발전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 유교의 특징 아닌가? 이쯤 되면 사실 꼰대나 갑질도 슬쩍 유교에 뒤집어씌우면 될 것 같다. 유교의 수직문화가 결국 오늘날 꼰대정신(?)의 밑바탕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꼰대질의 유래를 유교에서 찾는 것은 큰 오해다. 우리는 가부장제와 신분제, 남녀차별 등을 유교의 산물로 일컫지만 사실 근대 이전의 거의 모든 문화에서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15세기의 영국에 신분제와 가부장제, 여성 차별이 있다고 해서 그곳을 유교사회라고는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것은 전근대사회의 특성이지 유교사회의 특성이 아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비록 문(文)을 숭상했고 상대적으로 무(武)가 약했지만, 오히려 이 덕분에 500년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이 망했던 것은 왕조의 수명이 다한 시점에 식민제국주의가 침략했던 탓이지 결코 문을 숭상했기 때문이 아니다. 엄격한 상하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일례로, 유교국가에서는 왕권(王權)이 결코 신권(臣權)보다 강하지 않았다. 

출처: tvn 드라마 미생 캡처

이렇게 해명을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여전히 일반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된 꼰대와 유교의 유착성을 지우기는 부족할 것이다. 이른바 오늘날의 어르신 중 상당수가 예의와 도덕을 중시하면서 젊은이를 훈계하는 데 열을 올리고, 남의 말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필자가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며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말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유교사상 속 '꼰대 방지' 내지는 '꼰대 극복법'을.

겸손부터 행하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맹자)

사실 꼰대가 존경받는 어르신으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너무 쉽다고 생각하는가? 머리로 알기는 쉬우나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 바로 이 겸손이다.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겸손은 매우 중요한 미덕이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선비들은 모두 겸손을 몸에 익히고 있었다.


맹자에 따르면, 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면 기뻐했고, 우임금은 선한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한 사람에게 절을 했다고 한다. 순임금은 사람들과 더불어 선을 행하면서 자신을 버리고 남을 따르며, 남들의 선한 면모를 본받기 좋아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 역시 겸손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신진 학자 율곡 이이와 고봉 기대승에게 많이 배웠는데 늘 "가르침을 줘서 감사하다"고 당연하게 인사할 만큼 상대의 얘기를 듣고 자신이 틀린 부분이 있으면 고치기를 서슴지 않았다.

겸손은 왜 실천이 어려운가?

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사람들은 겸손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작 실천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단계에 제시돼 있듯 사람은 타인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있다가는 인정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무의식적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더 드러내려고 한다. 또 하나는 우월감의 추구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특별한 존재이기를 원하며 우월감을 추구한다. 맹자가 "사람들의 병통(결점)은 남의 스승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있다"고 꼬집었듯 우월감 획득의 손쉬운 방법 중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이나 지시를 내리는 일이다. 특히 남을 가르치는 일에 맛을 들이기 시작한 순간 겸손은 멀어지고 꼰대에의 길은 가까워진다.


남을 훈계함으로써 잠깐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마약으로 얻는 잠깐의 쾌락과 같은 일종의 착각이다.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순간 자신이 그 사람보다 우월한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고 우쭐해진다. 꼰대는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자꾸만 젊은이를 훈계하는 데 빠져든다. 게다가 그 훈계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니 가치 있는 일이며 세상을 조금 더 산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도 착각이다. 그 마음은 단지 우쭐해지고 싶은 욕구가 마각을 드러낸 것일 뿐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을 버려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중국상하오천년사)
(공자)

제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공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마음이 없었다고 전한다. '내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없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고집하는 마음'도 없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도 없었다. 공자가 전해주는 겸손의 메시지다.


세상은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고집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커녕 다른 사람 한 사람도 바꿀 수 없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은 누군가의 의지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저절로 바뀌는 것이다. 컨트롤 가능한 범위를 넘어 의미 없이 끙끙댈 시간에 자신의 일에 충실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꼰대는 굳이 남에게 참견하고, 가르치려 들고, 겸손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을 내 기준에 맞춰 바꾸려 노력할 시간에 스스로 돌아보며 자신을 바꿔가려는 노력, 그것이 꼰대 방지책이자 꼰대 극복법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49호
필자 이치억 성균관대 초빙교수

인터비즈 박근하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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