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년 전통 日 문구점, 가장 비싼 땅에서 '상추' 재배한다?

조회수 2018. 10. 12.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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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의 시대는 끝, 이젠 플랫폼 경쟁이다. 제품의 시대에서 플랫폼의 시대로 세상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다 같은 제품은 편의점에서 팔려도 사이다고, 마트에서 팔려도 같은 사이다이다. 그런데 브랜드는 라이프 스타일을 타고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긴자의 문구점 이토야(Itoya)도 그중 하나다. 이토야는 문구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고 있다.

출처: 이토야 홈페이지

이토야는 1904년(메이지 37년) '스테이셔너리(STATIONERY 문방구)'라는 간판을 내걸고 긴자에 문을 연 114년 전통의 문구점이다. '한 발 앞선 새로운 가치'를 지향해온 이토야는 1987년부터 '레드 클립'을 브랜드 심벌로 간판이나 오리지널 상품에 도입했으며, 2015년 6월에는 리뉴얼한 새로운 본점 G 이토야를 통해 "물건을 사는 점포"에서 "여러 체험을 할 수 있는 점포"로 거듭나고 있다. 

출처: 이토야 홈페이지
(G 이토야와 그 뒤편에 있는 K 이토야. 긴자 본점 위 간판에 붙어있는 레드 클립이 이토야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본점인 긴자의 이토야 외에도 시부야, 신주쿠 등 일본 내 9개 지점을 가지고 있고, 소형 점포인 'Itoya Topdrawer(이토야 탑드로어)'로 일본은 물론 미국 내에서도 점포를 늘려가고 있다.
)

긴자의 이토야는 G 이토야와 그 뒤편에 있는 K 이토야(2012년 본점에서 만년필 코너만 따로 독립시켜 세운 만년필 전문관)로 구성된다. G 이토야의 모토는 ‘머물고 싶은 공간’, K 이토야의 모토는 ‘어른들의 비밀 아지트’다. K 이토야에는 필기구와 노트 등 일반 문구 외에도 여러 문구 관련 재료가 갖추어져있다. 구체적인 콘셉트는 다르지만 결국 고객에게 오래 머물러달라는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돈을 쓰게 될 테니 말이다.


출처: 이토야 홈페이지
(11층에 위치한 수경 재배 농장)

사람들이 오래 머물게 하는 데는 카페나 식당이 필수다. 그래서 이토야는 G 이토야 꼭대기 층을 식당으로 만들었다. 바로 아래층에서는 상추를 수경 재배하고 있다. 그 상추를 가지고 위층 식당에서 샐러드를 만드는데 '가장 비싼 땅에서 만든 상추'라고 불리기도 한다. 호기심에서라도 한번 먹고 싶어질 수 있다. 꼭대기 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고객들은 소화시킬 겸 천천히 매장을 구경한다. 천천히 구경하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호기심은 구매로 이어지게 된다. 이토야를 떠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몇 개의 물건을 구매하게 되는 것이다. 이토야 디자인이 들어간 100엔(약 1010원) 짜리 볼펜을 충동구매하더라도 기분 나쁘기는커녕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2018년 트렌드 중 하나가 소확행(小確幸·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만큼 소비자들은 큰돈 들이지 않고 느낄 수 있는 행복에 만족해한다. 플랫폼은 이런 행복을 한 방에 제공해 줄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고객이 플랫폼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고객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오래 머물게 하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국내에서는 하남 스타필드가 그 역할을 잘하고 있다. 일단 주차장이 무료다. 주차요금 걱정 안 하니 간 김에 하루 종일 있게 된다. 백화점에서 고객이 보통 두세 시간 머문다면 하남 스타필드에서는 기본 대여섯 시간을 머물게 된다. 대여섯 시간 머물다 보면 최소 한 끼 식사는 그곳에서 해결해야 하고, 이는 식사 후의 커피 한 잔, 더 나아가 쇼핑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여행지에서 돈 쓰듯 지갑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출처: 스타필드 하남 홈페이지
(스타필드 하남 내부 사진)

그렇다면 내 사업을 어떻게 플랫폼으로 바꿀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헤어숍을 운영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경우엔 헤어숍이 ‘미적 가치의 추구’라는 콘셉트를 지닌 플랫폼으로 변신할 수 있다. 헤어숍 공간에 헤어디자인은 물론 미적 가치와 관련된 다양한 상품이 진열될 수 있다. 향수나 속옷, 심지어 미술품일 수도 있다. 미적 가치에 관한 책과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는 필수다. 이때 카페는 미술관에 부설된 카페 디자인을 참조하면 좋다. 헤어숍도 그저 헤어스타일을 가꾸는 공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몇 시간이고 체류하면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다음에 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진화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그런 공간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문구점에서 진화한 이토야, 책방에서 진화한 츠타야, 쌀집에서 진화한 아코메야를 보면 이미 누군가는 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출처: 레블론 코리아 홈페이지
(1932년 뉴욕에서 찰스 레브슨과 레브슨의 형제인 조지프, 찰스 래크먼이 창업한 화장품 브랜드 레블론(Revlon))

미국 화장품 브랜드 레블론(Revlon)의 창업자인 찰스 레브슨(Charles Revson)은 “우리는 공장에서 화장품을 만들지만 우리가 가게에서 파는 것은 희망이다(In the factory we make cosmetics, in the store we sell hope)”라는 명언을 남겼다. 지금 회사가 아직도 공장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최소한 가게 수준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조속히 가게를 플랫폼으로 변신시켜야 한다. 그것도 여러분의 고객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찾아오고, 떠날 때는 아쉬워하는 그런 공간으로 말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42호
필자 신현암 팩토리 8 대표

*필자 약력

- 서울대 경영학과 학·석사, 성균관대 경영학 박사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 사회공헌연구실장 역임. 現 팩토리8 대표

- 저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잉잉? 윈윈!>, <빅프라핏>

인터비즈 홍예화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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