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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깨도 괜찮아, 인간은 원래 4시간씩 쪼개서 잤으니까

인터비즈 작성일자2018.10.06. | 136,666  view

불면증은 현대인의 고질병 중 하나다. 한국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수면 장애와 주간 졸음증을 호소한다. 하루 7~8시간 정도 내리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건강에 악영향(당뇨, 비만, 퇴행성 뇌질환 등)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은 수천 편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자다 중간에 깨면 빨리 다시 잠에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매일 밤 깨지 않고 7~8시간 동안 숙면해야 건강하다는 얘기가 고정관념일 뿐임을 밝히는 연구들이 주목받고 있다. 8시간 수면은 인간의 생체 리듬에 부적합하며, 오히려 중간에 깼다가 다시 자는 ‘분할 수면’이 인간의 생체 리듬에 맞으며 건강에 좋다는 내용이다. 불면증이 생체시계에 맞지 않는 현대인의 수면 습관 때문에 생긴 사회적 질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번 깬 후 곧장 잠들려고 애쓰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수면 중간에 자꾸 깨어나면 병인가 싶어 불안해하는 심리적 압박감이 불면증을 더 부추긴다는 것이다. 

source :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1990년대 초 정신과 의사 토머스 베어(Thomas Wehr)가 진행한 광주기성(일조시간의 주기적 변동에 따라 생물의 발육, 행동 등이 달라지는 성질) 연구 실험은 인류의 생체리듬이 분할 수면에 맞춰져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실험 대상자들을 한 달간 매일 14시간 동안 벙커 안의 어둠 속에서 지내게 했다. 평소 전구 등의 인공조명 덕분에 잠자는 8시간 정도만 불빛 없이 지내던 실험자들은 14시간이나 어둠 속에서 생활하게 되자 점차 생물학적 생체시계에 따른 수면 패턴으로 바뀌어 갔다. 4주가 끝날 무렵엔 실험자들이 뚜렷하게 두 단계의 수면 시간으로 구성된 '이상 수면(bi-phasic sleep)' 형태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수면 패턴은 첫 번째 4시간 동안 잠을 잔 후 1~3시간 정도 깨어 있다가 두 번째 4시간 수면에 들어가는 분할 수면(split sleep)으로 바뀌었으며 실험자들은 낮 동안 졸음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이상 수면... 우리 몸의 생체 시계에 더 잘 맞아

수면 중엔 약한 자극에도 쉽게 깨는 얕은 잠부터 업어 가도 모를 정도의 깊은 잠까지 4단계로 나누어진 논렘수면(NREM sleep)과 꿈을 꾸는 렘수면(REM sleep)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보통 사람들은 한 번도 깨지 않고 7시간을 푹 잤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수면은 수면 구조(sleep architecture)라 불리는 논렘수면, 렘수면, 일시적 각성 등의 복잡한 조합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이상 수면은 우리의 생체 리듬과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스마트폰 앱 Zeo Sleep Manager를 통해 본 단상 수면 구조)

source : DBR

먼저 중간에 잠을 깨지 않는 단상 수면의 수면 구조를 분석해보면 초기의 얕은 잠에서 바로 깊은 잠으로 들어가 1시간 반 정도 집중적으로 깊게 잔 후 수면이 진행될수록 점차 렘수면이 늘어나면서 잠에서 깨어나게 됨을 알 수 있다. 꿈을 꾸는 상태인 렘수면은 주로 수면 말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밤 동안엔 각성을 유도하는 신경전달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분비량이 오르락내리락 변동을 거듭하면서 수면 중 각성을 유도한다.

(스마트폰 앱 Zeo Sleep Manager를 통해 본 이상 수면 구조)

source : DBR

하지만 두 개의 수면시간으로 구성된 이상 수면을 하게 되면 이 같은 수면 구조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다. 각성 상태가 지속되면 아세틸콜린 분비가 증가하는데 첫 번째 잠에서 깬 후 깨어 있는 두 시간 동안 우리 몸에 축적된 아세틸콜린으로 인해 두 번째 잠 동안 밀도 높은 콜린성 렘수면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 또 이상 수면을 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얕은 잠이 줄어들면서 논렘수면이나 렘수면이 늘어난다.

(이상 수면은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건강한 성생활에 도움을 준다. 이상 수면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잠 사이의 각성 상태에서 촉진되는 남성 호르몬은 아침 무렵엔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source : 게티이미지뱅크

이상 수면은 호르몬 분비에도 도움을 준다. 이상 수면 동안 수면 개시와 관련성이 높은 호르몬인 프로락틴(유즙 분비를 유도하고 생식 기능을 억제해 성욕을 억제한다)이 집중적으로 분비되는데, 첫 번째 수면 중 분비된 프로락틴은 깊은 잠 단계의 논렘수면을 증가시켜 숙면을 유도하며 두 번째 잠에서는 렘수면을 증가시킨다.


첫 번째 잠에서 깨어나 각성 상태가 됐을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성호르몬 분비로 이어진다. 도파민에 의해 프로락틴 호르몬 분비가 중단되면 성호르몬 반동 현상에 의해 성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때 분비되는 황체형성호르몬은 프로게스테론의 생산을 유도하고, 스테로이드 호르몬인 DHEA가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촉진한다. 이들 호르몬 덕분에 다시 졸음이 밀려와 다시 숙면에 들게 된다.  


반면 단상 수면의 경우 밤사이 프로락틴이 이상 수면보다 소량 분비되면서 다른 호르몬 분비 역시 부진해진다. 예를 들어 테스토스테론은 오전 느지막한 시간이 돼서야 피크에 이르며 프로락틴 또한 하루 종일 소량씩 계속 분비된다. (이상 수면의 경우 두 번의 수면을 취하는 동안 프로락틴이 집중적으로 분비되 낮 동안은 프로락틴 수준이 매우 낮은 상태로 유지된다) 프로락틴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으면 도파민 시스템과 생식샘 자극 호르몬 분비가 망가져 성욕이 감퇴하며, 프로락틴을 분비하도록 만드는 에스트라디올의 분비 수준이 높아져 지방 축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러모로 이상 수면이 인간의 생체리듬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source : 게티이미지뱅크

한밤중에 깨어났다가 금방 다시 잠들게 되면 이것도 분할 수면, 즉 이상 수면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첫 번째 수면 후 적어도 한 시간 반 정도는 깨어 있어야 두 개의 분할된 수면으로 인식한다. 이보다 짧은 경우엔 중간에 수면을 방해받은 단상 수면(monophasic sleep)으로 인식해 이상 수면에서 나타나는 프로락틴 호르몬 급등과 생체시계에 따른 호르몬 분비가 뒤따르지 않는다. 수면 전문가 제시카 겜블은 일찍 자고 한밤중에 깨어 있는 패턴만 일정하게 유지하면 이상 수면을 하더라도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한다.

산업화 이전 선조들은 이상 수면을 해왔다?

(로저 에커치(Roger Ekirch))

source : 위키피디아

2001년 버지니아테크대의 역사가 로저 에커치(Roger Ekirch)는 16년에 걸쳐 무려 500여 편의 방대한 문헌을 조사한 후 논문을 발표했다. 이상 수면이 산업화 이전까지 인류가 밤을 보내던 보편적 습관이었음을 일기, 법정 기록, 의료기록, 문학작품 등을 통해 복원해낸 것이다. 예를 들어 아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바나비 러지(1840)』엔 ‘첫 번째 잠’이란 구절이 나온다.

… 그는 비록 첫 번째 잠 에서 시작된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그걸 알았고, 자기 꿈의 증인이 아닌 이 방 너머에 있는 대상의 존재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 창문을 열었다. …

19세기 소설에서 볼 수 있듯이 현대인이 질병으로 생각하는 분할 수면은 불과 150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한 인류의 오랜 습관이었다. 분할 수면의 기원은 19세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커치는 그리스 로마 시대 호머의 오디세이, 버질의 아이네이스뿐 아니라 1969년 나이지리아 부족의 인류학적 보고서에서도 분할 수면의 증거를 찾아냈다.

(18세기~19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오만과 편견>)

source : 네이버영화

그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인류의 일상적인 밤은 현대인의 밤과 매우 달랐다. 16세기경에 이르면 대체로 저녁 9~10시경 침대에 누워 6~8시간 정도 자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선조들은 해가 지고 2시간 정도 지나면 잠자리에 들었고 자정쯤 깨어나 1~2시간 정도 이런저런 볼일을 보다 두 번째 잠을 잤다. 첫 번째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들은 달빛이나 기름 램프 불빛에 기대 바느질을 하거나, 땔감을 쪼개는 등의 집안일을 했으며, 기도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에커치에 따르면 이상 수면에 대한 언급이 문헌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말경이었다. 북부 유럽 도시 상류층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이후 20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서구사회 계급 전체로 퍼져나갔다. 불면증에 대한 묘사는 19세기 말쯤 문학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이상 수면이 완전히 사라진 시기와 일치했다. 에커치는 1920년경에 이르러 이상 수면의 존재가 사라졌다고 분석한다. 도심지의 가로등과 가정의 점등, 밤새 열려 있는 커피 하우스의 유행 덕분에 사람들은 유흥을 즐기며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고 수면 패턴 또한 결정적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24시간 사회의 수면 관리

분할 수면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수면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하게 수면 현상을 대할 수 있게 해준다. 한밤중에 깨어났을 때 억지로 다시 자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1~2시간 할 일을 하다가 졸리면 다시 잠드는 게 정상적이고 건강한 행동이라는 얘기다. 한 번 깬 후 곧장 잠들려고 애쓰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나 수면 중간에 자꾸 깨어나면 병인가 싶어 불안해하는 심리적 압박감이 불면증을 더 부추길 수 있다.

source : 위키피디아 커먼스(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최광모)

하지만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연결된 24시간 사회가 도래하면서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깨어 있어야 하는 직업군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통적인 간호사, 의사, 파일럿, 경찰, 소방관뿐 아니라 최근에는 택배기사들까지 밤샘 근무가 일상화되고 있다. 이상 수면과 관련된 연구들은 이들에게 더욱 유연한 수면 관리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준다. 전통적인 12시간 직무 전환제는 8시간이나 그보다 더 적은 시간으로 쪼개지는 게 우리 생체 리듬을 유지하는 데 더 적합할 것이다. 또 낮잠은 주간뿐 아니라 야간에 깨어났을 때도 각성 수준을 높여주며 수면시간 자체를 줄여준다. 낮잠을 허용하는 직장 문화는 업무의 효율과 속도를 확실히 높여줄 뿐 아니라 한밤중에도 중요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53호
필자 이수정 경희대 치의예과(신경과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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