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싸구려 취급받는 스팸, 한국에선 명절 선물된 사연

조회수 2018. 9. 24.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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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통조림 햄의 대명사인 스팸을 미국 다음으로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나라다. 한국의 인구는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하지만 소비량은 절반에 육박한다. 인구당 소비량은 더 많다는 뜻이다.한국의 통조림 햄 인기와 이를 주고받는 명절 선물문화는 해외 토픽일 정도다. 해외에선 CNN(2013년), 뉴욕타임즈 국제판(2005, 2014년) 등 주요 외신이 한국의 통조림 햄 인기를 조명하기도 했다. 한국의 통조림 햄 인기를 이색적으로 여긴 것이다. 여기엔 스팸을 싸구려 정크푸드로 인식하고 선물할 가치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통조림 햄을 바라보는 그들과 우리의 차이(정크푸드와 명절 선물)는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해외선 지나치게 많은 싸구려..."그만 주세요"

통조림 햄의 원조격인 스팸은 미국의 대공황 시기인 1927년 탄생했다. 미국의 가공육 생산업체인 호멜푸즈(이하 호멜)가 미국인들이 먹지 않아 매년 막대한 양이 버려지는 돼지 목심살을 판매용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통조림 햄이 만들어졌다. 어깨살과 조미료를 섞어 묵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스팸 박물관에 따르면 스팸(Spam)이라는 명칭은 양념 햄(Spiced Ham)을 조합한 단어다.


호멜은 스팸 마케팅에 나서면서 처음엔 육류제품인데도 냉장보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강조했다. 당시엔 나름 혁신제품이었던 셈. 그러나 고기를 냉장보관하지 않는 점에 오히려 소비자들은 "정말 그래도 돼?"라며 불안감을 보였다. 당시만 해도 이와같은 상온보관 가공육에 대한 불신이 지워지지 않았을 때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미국 미네소타주에 위치한 스팸 박물관에 전시된 스팸 만드는 법)

스팸을 글로벌 시장으로 '하드캐리'한 것은 전쟁이었다. 스팸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미국이 연합군에 대한 대대적인 원조를 시작하자 전장에 투입됐다. 통조림으로 보관기간이 길고 휴대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부드럽고 조리도 간편한다는 점이 장점으로 두드러졌다. 수송에도 유리해 완벽한 군용식량처럼 보였다. (전장에서 단점이라곤 단 하나, 구울 때 냄새가 많이 나 적에게 위치가 드러나는 위험이 있기 했다. 물론 스팸은 경우에 따라선 조리를 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었다. 장점에 비하면 이와 같은 불편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서 스팸으로 요리를 하는 미군 병사)

특히 전쟁 초기 서부 곡창지대를 적에게 빼앗긴 소련 입장에선 스팸으로 대표되는 미군의 식량지원은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승리를 일군 보급품이 콘비프였다면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아이콘은 스팸인 셈이다.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스팸이 없었으면 소련 군대엔 식량 보급이 이뤄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했을 정도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밝은 면은 어두운 면을 함께 끌고왔다. 당시의 엄청난 보급량은 훗날 스팸을 조롱거리로 만들기에 이른다. 당시 유럽지역 연합군 총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아이젠하워는 스팸이 전쟁 승리에 기여했다며 1966년 호멜에 감사서신을 보낸다. 이를 보면 왜 많은 이들이 스팸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됐는지 드러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지역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저는 여느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스팸을 보급받았고, 저 역시 나쁜 표현도 써가며 음식맛에 투덜댔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감사편지였던 만큼 아이젠하워는 뒷 문장에선 호멜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다고 밝힌다. 잘못? 그가 언급한 잘못이란 바로 '지나치게 많이 보낸 것(sending us so much of it)'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식량으로 보급된 스팸 양은 1억 캔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간편하고도 맛도 좋은 스팸을 좋게 평가했으나, 전장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스팸을 먹어야 하는 상황은 이들에게 점차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바뀌었다.

출처: 영화장면 캡쳐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배틀그라운드(1949년작)에서 묘사된 스팸. 벨기에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에 포위된 연합군 101공수부대에 군수물자 지원이 이뤄진다. 환호하는 병사들이 군수물자로 달려가서 확인해봤더니.... 그놈의 또 스팸이라는 표정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권 대중문화에선 스팸은 지나치게 많은 물건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전쟁이 끝난 뒤에 가정으로 돌아간 군인들이 각각 집으로 막대한 양의 스팸을 가져가면서 제품의 가치는 더 떨어졌다. 이 때문에 각종 TV프로그램에선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이 주는 것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고, 유머 요소로 활용됐다. 여기에 공격적으로 광고물량을 쏟아내는 호멜푸즈의 마케팅 전략 또한 빈축을 사게 된다. 그만 보내라고 아무리 거부해도 메일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스팸을 떠올리게 될 정도가 됐다. 게다가 나트륨과 열량이 높아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기는 더 떨어졌다. 스팸은 이렇게 해외에선 싸구려 정크 푸드가 됐다.

유통채널 변화와 맞물려 명절 선물로..전체 매출 3분의 2는 명절에 올려

이와 달리 한국에서 스팸은 오히려 군용식품이라는 이유로 고급식품으로 불렸다. 스팸은 기본적으로 현재 미군 기지가 있거나 과거에 있었던 곳에서 인기가 높은 편이다. 즉 하와이와 필리핀, 오키나와, 괌, 사이판 같은 곳에서는 인기를 누렸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스팸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무엇보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폐허가 된 1950년대 고기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미군기지 매점(PX)이라는 역사에서 기인한다. 당시 PX에서 나온 미군 상품들이 고급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이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사람이거나 소위 '빽'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각별한 의미가 덧입혀졌다. PX에서 나오는 스팸이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게 된 배경이다.  

출처: 호멜 홈페이지 캡쳐
(호멜의 스팸 광고. 추근대는 남자가 점심을 접대하겠다고 제안한다면 '스팸'이라고 말하겠다는 이 여성. 남자 입장에선 차이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호멜은 스팸을 고급식품으로 포지셔닝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만다.)

한국에서 스팸으로 대표되는 통조림 햄에 대한 인식은 고기로 상징되는 영양 식품인 동시에 풍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은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군용식품이라는 이유로 해외에서 스팸이 싸구려로 이미지가 바뀌었다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내에선 군용식품이라는 이유로 고급식품의 대명사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구하기 어려운 상품으로 선물로 대접할만하다는 인식이 이때 확립됐다.


통조림 햄이 국내 유입될 당시 긍정적인 인식이 깔린 덕분에 명절 선물로도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실제로 통조림 햄은 명절 때만 되면 어김없이 국내 소비량이 급격하게 늘어난다. 3만~4만 원짜리 스팸 통조림 10여 개 짜리 선물세트가 주력 상품으로 명절 때마다 올리는 매출은 약 100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내시장서 거둔 스팸 총매출(3300억 원) 중 3분의 2는 설날과 추석 연휴기간에 올린 셈이다. 올 설 온오프라인 마트 선물세트 판매순위에서도 수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통조림 햄은 윗세대가 가진 긍정적인 이미지와 1980년대 유통 문화의 변화와 맞물려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당시 식품분야 대기업이 슈퍼마켓형 선물세트의 표준으로 통조림 세트를 기획했고. 이게 백화점이나 전통시장에 대항할 무기가 필요했던 슈퍼마켓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졌다.


1950년대엔 통조림 햄은 워낙 귀한 상품일뿐더러, 설날 선물 자체가 보편화되지도 않아서 이를 주고받는 문화는 없었다. 당시만 해도 명절 선물은 규격화된 상품이 아니라 주로 농수산물을 서로 주고받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1960~1970년대 접어들면서 명절선물은 설탕이나 비누, 조미료 등 기본적인 생필품 정도로 확대됐고 이후 커피 등 기호품으로 점차 확대됐다.  


구매력이 차츰 향상되는 가운데 1980년대 중후반부터 슈퍼마켓 문화 확산과 대형화 추세가 차츰 나타난다. 이 무렵 전통시장, 슈퍼마켓, 백화점으로 설날 상품의 구성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생필품 중심의 슈퍼마켓형 선물세트와 옷과 고급품 위주의 백화점 상품이 구별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출처: 링크아즈텍
(국내 캔햄시장 점유율, 스팸을 선보인 CJ제일제당과 리챔을 선보인 동원, 롯데 로스팜이 경쟁하는 구도다.)

마침 국내 한 업체가 스팸을 국내에 들여와 자체생산한 게 1987년으로 그해부터 통조림 햄 선물세트를 기획한다. 이보다 앞서 유명 통조림 제조업체가 참치 캔 선물세트 구성을 시장에 선보였다. 식품분야 대기업이 슈퍼마켓형 선물세트의 표준으로 통조림 세트를 기획한 것. 이게 백화점이나 전통시장에 대항할 무기가 필요했던 신 유통시장의 요구에 부합했다.


1987년부터 스팸을 자체생산한 이 업체의 주 생산 품목은 조미료라는 점도 주목하자. 이는 1970~1980년대의 인기 명절선물이었다. 명절 선물 구성에 대한 남다른 노하우를 갖춘 업체가 명절 선물 프로모션과 기획도 공격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 따라 슈퍼마켓형에선 식품 분야 대기업이 구성해온 '통조림+조미료' 선물상품이 매대 장악력을 높여갔다. 이점에서 캔 햄의 위상이 독특하다. 오래전에 확립된 햄에 대한 고급식품 이미지와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실속형의 이미지가 더해진 것이다.   


스팸을 자체 생산한 해당업체가 이를 글로벌 식품이라는 점을 주요 마케팅 요소로 삼았던 것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더해주었다. 당시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시점으로 글로벌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가 높았을 무렵이기도 했다.  


1980~1990년대 들어서 고급 정육도 보편화됐고 건강을 챙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통조림 햄의 지위는 자연스레 위축될 것으로 보였으나, 최근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이후 5만 원 이하의 저렴한 가격대 선물로 다시 주목받았다. 유통업계 죽이는 김영란법이라는 언론의 평가가 무색하게 오히려 이를 성장 발판으로 삼은 셈이다.  

메인디시 없는 한식문화에 유독 잘 맞는다는 해석도

캔 햄을 한끼에 차리려면 주식으로 먹어야 하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선 밥에 싸먹는 일상식 반찬의 한 종류로 취급된다. 서구식과 달리 메인요리로 이를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는 것이다. 여기에 한 업체가 2002년부터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는 광고 카피를 선보이면서 이 같은 인식이 확산됐다. 건강에 나쁜 고나트륨 음식이라는 생각 대신에 건강식으로 흔히 통용되는 '가정식'의 이미지가 입혀진 것이다.

여기서 한식의 의미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메인요리(Main Dish)라는 이름으로 식단의 주 메뉴, 주인공을 정하는 서구식과 달리 한식은 밥을 중심으로 반찬을 더하고 조립해가며 직접 완성하는 형태다. 스팸을 식단의 주인공으로 올려야 한다면 영양면이나 맛에서 모두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밥을 중심으로 모든 반찬이 동일한 위상을 가지는 우리네 식단에서는 밥과 함께 먹을 법한 음식으로 의미가 재정립됐다.


글로벌 통조림 햄의 라이센스를 따와서 유통하는 쪽이나, 한국에서 직접 이와 같은 형태의 통조림 햄을 판매하는 업체나 모두 밥과 어울린다는 식의 표현을 광고 카피로 등장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 통조림 햄 취급업체들은 서구에서 소비되는 통조림 햄에 비해 염도를 낮추는 등 밥과 어울릴 수 있도록 반찬화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였다.  


오늘도 온라인 명절선물 항목엔 고급 쇠고기 정육, 와인, 자연산 버섯 등과 함께 스팸 선물세트가 함께 배치돼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물려받은 싸구려 캔 햄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식탁에 함께하는 문화로 녹아든 것이다. 이는 제품이 가진 이미지와 기업의 마케팅이 브랜드의 운명도 가를 수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인터비즈 임현석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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