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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게임 속 여포는 무력 '100'.. 내 스펙은?

조회수 2018. 8. 15.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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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으로 능력을 '데이터화' 시키는 사회

30년간 많은 게이머의 사랑을 받아온 코에이 사의 '삼국지 시리즈'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과 전략 판단의 정석과 같은 게임이다. 그러나 가상의 후한 말 시대가 실제 역사와 일치하지 않듯 현실에서도 데이터가 모든 현실을 완벽하게 보여준다고 믿어서는 안 될 일이다. 데이터는 전략적 판단과 의사결정의 훌륭한 도구일 뿐, 그 자체로 모든 진실을 알려주는 만능의 도깨비방망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삼국지3 게임 화면 캡처

우리나라에서 1980∼199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적지 않은 이들이 게임 '삼국지'를 기억할 것이다. 일본의 테크모-고에이 사가 1980년대 말에 처음 출시해 2017년 제13편을 출시하기까지 근 30년의 세월 동안 인기를 얻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삼국지 시리즈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으면서 제작사의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한 게임 콘텐츠다.


플레이어는 조조, 유비, 손권 등 실제 소설에 등장하는 장수 중 한 명을 선택해 천하 통일을 목표로 국가를 경영하고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답게 삼국지는 플레이어에게 전략적 판단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천하의 정세를 데이터로 보여주며 내정을 충실히 할지 전쟁에 돌입할지, 혹은 적국과 동맹을 맺을지 등을 결정하게끔 만든다. 

수치로 표현된 캐릭터의 능력치와 정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의 삼국지는 원작 소설 속에 직접 뛰어드는 플레이의 감각을 구현하기 위해 데이터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후한 말 중국 도시들은 데이터를 통해 구현된다. 낙양, 장안 같은 대도시는 높은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어 징병과 산업에서 타 도시에 비해 압도적인 생산량을 보이며 당시 오지에 가까웠던 촉, 오와 비교할 때 사실상 몇 배에 가까운 생산량을 보여준다. 군사력 또한 병사들의 머릿수, 훈련도, 무장과 군량 등이 하나하나 데이터로 움직이면서 실제 군사 기동을 상상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출처: 삼국지10 게임 화면 캡처
(삼국지10 게임 중 여포 능력치 캡처)

비단 국가나 영토뿐만이 아니라 역사 속 인물에서 착안한 게임 캐릭터들은 일정한 그 능력치가 수치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무력으로 첫손에 꼽을 장수인 여포는 게임 안에서 무력 수치 100을 가지고 있다. (이는 1에서 100 사이에 설정되는 수치 중 최상에 속하는 스펙이다.) 전장에서 여포 캐릭터는 막강한 전투력을 기반으로 소설 속 천하무적 캐릭터의 입지를 놓치지 않는다. 최고의 지략가인 제갈량 또한 지력 100의 위엄을 뽐내는데, 군사로 삼을 경우 100%에 가까운 조언 성공률과 계략 성공률을 보이면서 천하 통일의 향방을 크게 좌우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현대 데이터가 가진 모든 조건을 활용해 만들어 낸 게임 삼국지 속의 상상 공간은 현실에서는 미처 수행해볼 수 없었던 여러 아이디어와 전략을 시도해볼 수 있다. 게임 속 판단 과정을 현실에 적용하면, 사업계획을 구상하는 의사결정자들이 보고서 속의 데이터를 통해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기업의 나아갈 방향을 찾아내는 것과 놀랍도록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데이터는 우리의 생각보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현실을 100% 반영한다고 믿기 어렵다. 삼국지 시리즈는 '게임'이기 때문에 사실과는 다른 한계점이 있고 유저들도, 게임비평가들도, 소설 마니아들도 이를 이해하고 있지만, 데이터를 통해 상황을 판단하는 현실 속 의사결정의 과정은 의외로 그 한계점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모든 데이터가 객관적이지는 않다

출처: 삼국지11 게임 화면 캡처
(삼국지 모든 시리즈에서 조조의 통합 능력치는 항상 최상위 수준이다)

데이터는 근본적으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데이터 가공의 과정에서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은 배제된다. ‘수치화’라는 세계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다른 수치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데이터 설계에서 벗어나는 개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역사 속, 소설 속 인물인 조조는 실제 위진남북조 시대의 주요 문사로 거론될 만큼 문학적인 면에서의 조예가 뛰어났으나 게임 속 조조 캐릭터를 위해 별도로 ‘문학’ 수치를 만들지는 않기 때문에 조조의 문학적 가치는 게임에 드러나지 않는다. 

출처: 삼국지 10 게임 화면 캡처
(적벽대전 직전)

데이터가 가진 함정은 단지 이처럼 양적 평가의 한계에만 머무르는 것뿐만 아니라 수치화 할 수 없는 전략과 아이디어 영역에서 상상의 한계를 만들게 된다. 다시 삼국지로 돌아가면, 실제 소설 속에서 계략으로 전황을 뒤집는 수많은 장수들의 활약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혀와 붓으로 100만 대군을 능가하는 위력을 보인 제갈량, 순욱, 곽가, 사마의 등의 활약은 생산 - 전투를 중심으로 데이터화된 게임 삼국지 안에서는 그들의 기발한 전략이 그저 단순하게 ‘계략이 성공했다!’ 정도로만 묘사된다. 


자신의 문학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게임 속 캐릭터 조조처럼 데이터는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과 사건을 100% 반영할 수 없다.

기업의 신입 채용도 마찬가지

데이터는 이미 방향이 설정된 상태에서 수집 및 가공되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데이터 이면에 있는 가치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많은 데이터 전문가가 데이터의 최초 수집부터 주의를 기울이는 것 또한 데이터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편향(bias)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만큼의 손해가 데이터 기반의 사고와 연구 결과에 드러나게 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대표적인 결과가 최근의 인사 관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슈들이다. 신규 인력 채용 등에서 양적 평가의 자료로 쓰이는 데이터들 또한 게임 삼국지 장수의 능력치처럼 하나하나의 인물들을 나름의 데이터로 표현해내는 것과 다를바 없다. 수많은 입사 지원자가 이른바 ‘스펙’이라는 수치화된 데이터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토익'으로 수치화된 영어 능력은 실제 지원자의 실력과는 무관한 데이터가 되었고, 주요 대기업에서 실시하는 인적성 검사 역시 업무능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사용하기에는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이미 시중에는 주요 기업의 인적성평가 고득점 전략을 설파하는 수험서가 팔려나가고 있고, 어학원에서도 족집게 강의를 통해 단기간으로 성적을 올리는 방법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새로운 기술로 인해 얻은 인사이트의 의미를 더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그로부터 놓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되짚고 생각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데이터만으로 구현된 게임 안의 환경은 결코 실제 중국 대륙의 천하 통일 과정과 100% 일치할 수 없다. 데이터가 의미 있게 작동하는 것은 그 데이터가 특정한 관점에 의해 수집되고 가공됐음을 의미하며, 삼국지 게임의 경우에는 그것이 게임이라는 환경을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형태로 준비된 것 뿐이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상상력과 창조력의 시대가 데이터라는 방법론과 제대로 엮이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제한에 묶이지 않는 상상력을 바라봐야만 한다. 데이터가 미처 표현해 내지 못한 이면의 무언가를 탐색하고 거기서부터 전개해나가는 사고는 데이터에만 집착하는 이들보다 반 발짝 더 앞서나갈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출처 프리미엄 경영 매거진 DBR 244호

필자 이경혁

필자 약력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게임문화 연구

- 게임칼럼니스트, 게임연구자

인터비즈 박근하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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