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맛 치토스가 공장 청소부를 부사장으로 만든 사연

조회수 2018. 6. 22. 18: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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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토스 ‘불타는 매운맛(Flamin’ Hot)’은 미국에서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이에 관한 힙합 노래가 있는가 하면(유튜브에서 무려 1600만 번 조회됐다), 가수 케이티 페리는 핼러윈에 이 스낵으로 분장을 하기도 했다. 매운맛은 치토스의 주력 라인이 됐다. 새우깡 매운맛이 오리지널 새우깡을 제친 격이다. 그런데 이 매운맛 아이디어는 미국 치토스를 만드는 식품 기업인 프리토-레이의 마케팅 부서나 제품 개발 부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공장 청소부의 아이디어였다. 

출처: 치토스 인스타그램

리처드 몬타네즈Richard Montañez는 멕시코에서 태어나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이민자 노동 캠프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10명의 형제자매와 와인용 포도를 땄다. 몬타네즈의 가장 큰 문제는 영어를 잘 못한다는 점.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닭 도살장에서도 일하고 정원을 가꾸는 일도 했다. 그러다가 치토스와 감자칩으로 유명한 식품회사 프리토-레이 공장의 청소부로 취직이 됐다. 청소 트럭을 모는 꿈을 가지고 있던 소년에겐 썩 나쁘지 않은 직업이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펩시코(프리토-레이의 모회사)의 당시 CEO 로저 엔리코가 모든 사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보게 된다. “사원 모두가 회사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라”는 취지의 메시지였다. 몬타네즈 주변의 직원들은 메시지를 심드렁하게 받아들였지만 그는 달랐다. 뭔가 다른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청소부지만 실제로 주인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때마침 치토스를 만드는 기계에 이상이 생겨 주황색 치즈가루가 뿌려지지 않았다. 몬타네즈는 불량 처리된 치토스를 집에 들고 왔다. 실험을 해볼 요령이었다. 딱히 정확하게 뭘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 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거리서 파는 멕시코 요리 일로테(elote)를 보면서 치토스 매운맛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일로테는 구운 옥수수에 치즈와 버터, 라임, 고추를 발라 먹는 길거리 음식. 공장에서 가져온 치토스에 매운 고추를 넣어봤다. 몬타네즈의 가족과 친구 모두 맛있다고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한 그는 CEO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서가 받았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누구시죠?”

“아 저는 캘리포니아 공장…”

“캘리포니아 공장장이신가요?”

“그게 아니고…”

“그럼 미국 서부 지역 담당 임원이신가요?”

“캘리포니아 공장 청소부입니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몬타네즈는 CEO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나중에 “청소부 같은 말단 직원이 CEO에게 직접 전화를 하면 안 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2주 후에 프레젠테이션을 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열심히 준비했다. 아내와 동네 도서관에 가서 경영학 책을 보면서 전략을 짰고 매운맛 치토스 포장을 디자인해서 고추를 넣은 매운맛 치토스를 담아 갔다. 넥타이를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생애 첫 넥타이로 가격은 3달러. 매는 방법을 몰라 이웃집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출처: YKNO 방송화면 캡처

프레젠테이션 결과는 성공이었다. CEO가 몬타네즈의 창의성에 놀랐다고 한다. 곧 프리토-레이 제품에 불타는 매운맛 라인이 생겼고 불타는 매운맛 치토스는 프리토-레이의 제품 중 가장 잘 팔리는 과자가 됐다. 몬타네즈는 고속 승진했다. 지금은 펩시콜라의 북미 지역 다문화 제품 판매 담당 부사장이다. 패스트푸드 업체 KFC와 타코벨의 히스패닉을 위한 메뉴 개발을 담당한 적도 있다. 

‘다문화 마케팅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요즘에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기업 내 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을 한다. 사는 곳 근처 대학에서 MBA 학생들에게 강의도 한다. 돈은 많이 벌었고 멕시코 공동체에 기부도 많이 한다. 하지만 3달러짜리 넥타이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박사 학위(Ph.D)도 없이 어떻게 강의를 하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난 사실 Ph.D가 있어요. 가난해 봤고(P=poor), 배고파 봤으며(h=hungry), 결의가 굳었거든요(D=determined)”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요약하면, 영어를 잘 못해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멕시코 이민자가 대기업의 청소부로 일하다가 기막힌 아이디어로 임원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정도가 될 것이다. 너무 영화 같다고? 실화다. 그런데 정말로 영화 같다고 생각했는지 영화사 폭스서치라이트(Fox Searchlight)가 몬타네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출처: 치토스 트위터

이런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얘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그저 운이 억수로 좋은 사람의 얘기. 하지만 운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 요즘의 분석 결과다. 

행운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최근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 ‘행운은 어떻게 찾아오나(How Luck Happens: Using the Science of Luck to Transform Work, Love, and Life)’에 따르면 운은 우연과 재능, 노력의 조합이다. 우연은 어쩔 수 없지만 재능과 노력은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으니 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필자 김선우


약력

-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인문지리학과 졸업

- 워싱턴대(시애틀) 경영학 석사

-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출처 미표기 사진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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