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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앤올룹슨의 역사

조회수 2018. 6. 12. 13: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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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엔터테인먼트의 혁신을 이끌어온 덴마크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뱅앤올룹슨
뱅앤올룹슨의 설립자 스벤 올룹슨(좌), 페테르 뱅(우), 1925년
뱅앤올룹슨 팩토리, 스트루에르, 덴마크, 1925

100년 전에도 혁신은 벤처 기업에게 중요한 덕목이었다. 1925년의 일이다. 덴마크 퀴스트럽에 거주하던 두 엔지니어 페테르 뱅(Peter Bang)과 스벤 올룹슨(Svend Olufsen)은 당시 최첨단 전자제품인 라디오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했다. 두 청년은 옥탑방에 작은 라디오 공장을 차리고, 주전원 소스를 갖춘 라디오를 개발하는 데 매진했다. 그리고 이듬해 배터리 없이 플러그만으로 작동되는 라디오 ‘일리미네이터(Eliminator)’를 발명했다. 창립 1년 만에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며 전자 기기 업계에서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뱅앤올룹슨은 라디오의 대대적인 성공에 힘입어 덴마크 스트루에르에 공장을 신설했고, 하이퍼보(Hyperbo) 시리즈, 베오릿(Beolit) 등 세련된 디자인에 뛰어난 기술력을 탑재한 라디오를 지속적으로 공개하며 유럽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매출이 오르고 기업이 성장하는 동안, 그들은 더 완벽한 제품을 선보이려 노력했다. 그들이 스피커를 만드는 과정은 정교하고 빈틈없었다. 가정용 스피커 하나를 만들 때도 극한의 환경 테스트를 감행했다. 뱅앤올룹슨 연구소에는 고문실이라 불리는 제품 테스트 실험실이 있다. 집 안에 있을 법한 물건들을 활용해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한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리모컨 버튼을 10년 동안 사용하는 수치만큼 눌러본다. 그리고 버튼 프린트가 벗겨지지 않는지, 버튼이 계속 작동되는지를 확인하는 거다. 2m 높이에서 충격 테스트를 실시해 내구성을 점검하기도 한다. ‘좋은 가전 기기는 오래 사용해도 처음처럼 작동되어야 한다’고 믿는 뱅앤올룹슨의 철학에 바탕을 둔 실험이다.

홈 엔터테인먼트 기기가 줄 수 있는 즐거움 역시 제품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로 생각했다. 뱅앤올룹슨은 청취자가 보다 쉽고 편하게 사운드를 들을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나갔다. 예를 들면 베오랩 5에 탑재된 어댑티브 베이스 컨트롤은 스피커가 공간 환경을 자동으로 분석해 최적의 음향을 재현하는 기능이다. 베오랩 18의 어쿠스틱 렌즈 테크놀로지는 소리를 180도 수평 분사하여 어느 위치에나 최적의 사운드를 전하는 기능이다. 세계 최초로 무선 오디오에 도입한 ‘WISA’는 5.2~5.8GHz 주파수를 사용해 와이파이와 혼선 없이 24비트의 무압축 고음질 사운드를 스트리밍한다. 뱅앤올룹슨은 언제나 시대보다 한 걸음 앞선 기술을 통해 생동감 있는 사운드를 구현해왔다. 최상에 대한 뱅앤올룹슨의 집착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디자인 역시 중요했다. 뱅앤올룹슨이 국내에서 명성을 얻은 것은 아름다운 생김새 덕분이었다. 뱅앤올룹슨은 기존의 관행과 같았던 디자인을 뒤엎었다. 불필요한 장식은 과감히 제거한 다음 기능을 중심으로 간결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블랙 박스 속에 숨긴 CD 플레이어를 노출시켜 오디오 시스템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베오사운드 9000, TV를 회화가 담긴 액자 형태로 만들고 생동감 있는 색을 입힌 베오비전 등 기존 개념을 무너뜨리는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은 예술로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 외부 유명 디자이너와 작업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 야콥 옌센(Jacob Jensen) 등 전설적인 제품 디자이너들이 뱅앤올룹슨과 함께했다. 디자이너들은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어떤 제품을 생산할지 직접 참여한다. 제품 콘셉트 개발팀인 아이디어 랜드의 기술진과 긴밀한 공조를 이루면서 첨단 기술과 혁신적인 디자인이 어우러진 예술 작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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