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가 만든 SUV, 우르스

조회수 2018. 6. 5. 13: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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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가 SUV를 만드는 건 스포츠카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다.
Writer 신동헌: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자동차 전문 블로거 '까남'으로 잘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람보르기니가 SUV 우루스 양산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이 갑론을박을 시작했다. 진정한 스포츠카는 문 네 짝이 달리면 안 된다든지, SUV는 스포츠카가 될 수 없다든지, 돈을 벌기 위해 포르쉐 흉내를 낸다든지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스스로 자동차 산업의 흐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초보 이상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므로 앞으로 그런 이야기는 삼가도록 하자.

게다가 SUV의 정통성에 대한 토론은 적어도 람보르기니에게는 해당 사항이 안 되는 말이다. 이미 1986년에 SUV를 양산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람보르기니는 1977년에 미 육군의 소형 전투 차량에 입찰하기 위해 치타(Cheetah)라는 차를 개발했다. 크라이슬러의 V8 엔진을 실은 이 프로토타입 차량은 캘리포니아에서 조립된 후 이탈리아로 옮겨져 람보르기니다운 마무리를 했지만, 미군 당국의 테스트 차량에 선정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인 후 많은 일반인의 관심을 모았고, 미국 자동차 회사 AMC의 엔진을 얹은 프로토타입 LM001을 거쳐 1986년에 LM002라는 이름으로 양산됐다. 쿤타치의 5167cc V12 엔진을 차체 앞부분에 얹고 총 328대가 생산됐으며, 전 세계 부자들에게 마니악한 인기를 끌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차들은 고가에 거래되거나 람보르기니 본사에서 완벽하게 리스토어해 보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선보인 우루스는 중동의 왕족 차고에서 보관되거나 328명의 마니아를 위해 만들어진 차가 아니다. 트럭에 가까운 LM001과 달리 완벽한 스포츠카이자 완벽한 일상용 차로 설계됐고, 지금까지의 그 어떤 람보르기니보다도 많이 생산될 준비가 되어 있다.

디자인은 한눈에 봐도 람보르기니다. 람보르기니의 디자인 요소를 차용한 SUV가 아니라 상당히 완성도 높은 스포츠카 형상을 띠고 있는데, 2016년부터 람보르기니 첸트로 스틸레(람보르기니 디자인 센터) 수장으로 부임한 미티야 보르케르트의 공이다. 그는 포르쉐의 익스테리어 디자인 디렉터로 일하면서 미션 E 등 최근 포르쉐 디자인을 완성한 사람으로 어렸을 때부터 마르첼로 간디니의 디자인을 보며 자동차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래서 우루스에는 과거 간디니 시절의 디테일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

날카로운 쐐기형 캐릭터 라인이나 각진 휠 아치를 보면 미티야가 얼마나 과거의 람보르기니를 사랑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대량생산을 위한 차지만, 수공으로 만들던 과거의 람보르기니처럼 예리하게 각진 차체를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은 폭스바겐 그룹이 보유한 예술과도 같은 프레스 기술 덕분이다. 혹자들은 람보르기니가 독일 자본에게 팔린 이래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버튼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보고 속단하면 곤란하다. 예전 람보르기니의 지나치게 수제작 차다운 퀄리티는 지금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차를 많이 만들 뿐 아니라 퀄리티 있게 만들 줄 아는 폭스바겐 그룹으로 들어간 건 람보르기니 역사로 비춰보자면 행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엔진은 완벽하게 세팅되어 저속 영역부터 시속 300km 영역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숨 한 번 고르지 않고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다. 2톤이 넘는 차체는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얹으면 아주 부드럽게 가속을 시작한다. 사람이 걷는 속도로 아주 천천히 달리는 것은 물론 가능하고, 울컥거리지도 않는다. 달리기 위해 태어난 ‘슈퍼카’에게는 가장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차는 이런 속도역에서의 사용도 충분히 고려되었다. 심지어 조용하기까지 한데, 이중접합 유리를 사용해서 정숙성은 대형 세단급이다. 배기음도 절제되어서 연인과 아주 작은 소리로 소곤거릴 수 있다. 물론 발가락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엔진의 존재감은 느낄 수 있지만, 스트라다(Strada, Street의 이탈리아어) 모드에서는 쓸데없이 으르렁거리지 않기 때문에 조용한 주택가에서도 민폐 끼칠 걱정 없이 탈 수 있다.

에어서스펜션도 스트라다 모드와는 달리 탄탄하게 조이면서 코너를 꽉 움켜쥔다. 꽤 본격적인 비포장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차지만, 온로드에서도 웬만한 스포츠카 뺨치는 접지력을 맛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전자 제어 시스템이 시도 때도 없이 끼어드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자연스러운 스포츠카 감각으로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트랙도 즐거웠지만, 람보르기니 우루스를 가장 우루스답게 탈 수 있는 곳은 역시 공공 도로다. 창업주 페루초 람보르기니는 자신이 타던 페라리가 레이싱카도 아닌데 너무 딱딱하다며 좀 더 부드러운 조작감과 승차감을 위한 조언을 하려다가 자신의 이름을 건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그 때문에 일반 도로에서의 우아한 승차감은 람보르기니 초창기부터 트레이드마크였고, 빠른 차를 만들긴 했지만 레이스보다는 언제나 공도를 무대로 삼은 것도 특징이다. 우루스는 그 전통을 훌륭하게 이어받았고 다른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운전이 매우 즐거운 차지만, 뒷자리에 주로 앉는 사람에게도 권할 수 있다. 레그룸은 충분하고 승차감도 좋다. 멀미가 나지도 않는다. 트렁크에는 골프백 두 세트가 완벽하게 수납되고, V8 트윈 터보 엔진을 장착한 람보르기니치고는 연비도 상당히 현실적이다. 가족용 차로도 손색이 없다는 말이다.

100% 확률로 날아드는 시선을 즐기면서 도로 위를 유유자적 달려도 좋고, 노면 상황에 상관없이 람보르기니다운 주행 성능을 즐기고 싶은 이에게도 훌륭한 선택이다. 일반 도로에서는 낮은 차체 때문에 울퉁불퉁한 노면만 보면 엉덩이에 힘을 줘야 하는 슈퍼카를 상대로 해도 승산이 꽤 있고, 비포장 도로에서 레인지로버를 만나더라도 씨익 웃으면서 액셀러레이터를 바닥에 비비기만 하면 된다. 프런트와 센터 디퍼렌셜, 액티브 토크 벡터링과 리어 디퍼렌셜을 일체화시킨 영민한 트랜스미션이 어떤 상황에서든 힘을 노면에 전달하고, 여차하면 10개의 피스톤을 가진 래디얼 캘리퍼가 원하는 곳에 멈출 수 있게 해준다.

우루스는 아벤타도르나 우라칸처럼,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지 않는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드라이빙 테크닉이자, 매일매일 탈 수 있는 람보르기니다. 당신이 만약 이 차를 살 수 있을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면 당신의 피와 땀의 일부를 여기에 쏟아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슈퍼스포츠카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건, 아무에게나 허락된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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