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터는 여전히 훌륭한 옷이다

조회수 2019. 11. 29. 16: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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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TIME CLASSIC

Writer 박세진 : 패션과 옷에 대해 쓰는 칼럼니스트. <패션 vs 패션>의 저자.

울 스웨터는 탁월한 보온재지만 최근 오해를 좀 받고 있다. 환경과 동물 윤리 문제가 부각되면서 울의 문제점이 많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량의 양 사육은 지구 온난화에 조금은 책임이 있고, 양모를 채취하기 위해 개량된 양들은 고통받는다. 합성 섬유 옷에 비해 관리가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그렇지만 진흙탕을 뒹굴거나 눈비를 일부러 맞고 다니지 않는 한 울로 만든 옷은 수명이 굉장히 길다. 사용하고 나서 먼지를 잘 털고, 브러시 질을 해주고, 하라는 대로 세탁하는 것만으로도 수명이 늘어난다. 자연 복원력도 탁월해서 자주 세탁할 필요도 없다.


결국 문제는 사람들이 옷을 너무 짧게 입는데에 있다. 환경 친화적 소재, 재활용 소재라고 해봤자 유행이 지났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금세 치워버리면 소용이 없다. 울이 유발하는 문제가 정말 걱정된다면 오래 입을 수 있는 좋은 옷을 고르고 오래 입으면 된다. 결국 엉망으로 쓰는 인간이 문제지 울은 잘못이 없다.


울 스웨터는 계절의 필수품이고 저렴한 패스트 패션 제품부터 고급 브랜드까지 매우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양 품종, 니트 방식 등에 따라 종류도 많다. 역사를 보면 11세기에 노르만 인이 시칠리아에서 이슬람 문화의 수공예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이들이 영국 해협에 있는 마을에 이 기술을 전했다. 거기엔 양이 있었고, 사람들은 추운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며 살고 있었다. 이렇게 기술과 소재, 필요가 합쳐지면서 스웨터가 나왔다.


수많은 스웨터 종류들 중 대표작은 역시 피셔맨 스웨터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울의 특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튼튼하고 따뜻한 옷이다. 대체적으로 라놀린이 많이 포함한 양털을 사용해 발수, 방수 기능이 있지만 사용감이 좋지는 않기 때문에 요새는 후처리를 한 울 제품도 많다. 피셔맨 스웨터도 종류가 많지만 몇 가지만 살짝 살펴보자.

우선 건지(Guernsey)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섬인데 위에서 말한 11세기에 이슬람 수공예 기술을 넘겨 받은 섬 중 하나다. 즉 가장 오랜 스웨터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약간 원시적인 느낌이 있다. 전통적인 건지 스웨터는 어부들이 어두운 밤바다에서도 신경쓰지 않고 입을 수 있도록 앞뒤도 없고 좀 더러워지면 뒤집어 입어도 상관이 없도록 만든다. 움직일 때 편하라고 갈라놓은 사이드 슬릿도 특징이다. 운동성과 실용성이 고려된 거친 환경을 위한 거친 옷이다.

아란(Aran)은 아일랜드 서쪽에 있는 섬이다. 아란 스웨터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 정확하진 않지만 현대에 와서는 대표적인 피셔맨 스웨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건지는 얇은 것도 많은 데 아란은 대부분 두꺼워서 어지간한 계절엔 스웨터를 아우터처럼 쓸 수 있다. 따로 염색을 하지 않은 양모 본래의 유백색이 많고 뚜렷한 무늬의 케이블 니트가 특징이다. 이 무늬들은 마을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어디선가 풍랑에 숨진 어부가 발견되면 스웨터 무늬를 보고 마을로 되돌려 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카우첸(Cowichan) 스웨터는 캐나다가 고향이다. 캐나다의 밴쿠버 섬 근처에 살던 카우첸 원주민들은 옛날부터 산양, 개털 등으로 구식 기술로 담요 같은 걸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 중반 유럽인들이 들어 왔는데 그들이 양과 영국의 니팅 기술을 가지고 들어왔다. 원주민들은 그걸로 스웨터를 만들어 역시 어업과 사냥을 주로 하던 주민들이 입었다고 한다. 카우첸 역시 두텁고, 지퍼나 단추에 숄 칼라 형태가 많아서 아우터로 더 많이 사용된다. 곰, 독수리 등 전통 무늬도 매력이다.


이외도 수많은 전통 스웨터들이 자신의 유래와 역사, 기법을 가지고 있다. 스웨터를 제대로 입기 위해 꼭 바다로 나갈 필요는 없겠지만 흥미진진한 옷의 이면을 들춰보는 게 조금 더 오랫동안 아끼며 입을 동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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