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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도 주식에 물렸다

조회수 2019. 9. 2. 16: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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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이 말했다.
"10월은 주식 투자를 하기에 특별히 위험한 달이다.
다른 위험 달로는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

Writer 조성준: 경제신문 기자. 소소한 재테크에서 재미를 느낀다.




금융시장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코스피 지수는 2000이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를 돌파했다. 일본은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우리만 우울한 건 아니다. 아시아 금융허브 홍콩에선 연일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홍콩 H지수와 연계된 펀드 투자자는 심란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불황 징조로 여겨지는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10년 주기로 경제 불황이 찾아온다는 낭설이 척척 들어맞는 모양새다. 


요즘 같은 시기 주식 투자자들은 증권사 앱을 켜기가 두렵다. 잘 나가던 기업들 주가마저 힘을 못 쓰고 있다. 지금 내리는 비가 소나기로 끝날지 장맛비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비는 언젠간 그친다는 점이다. 지금 투자에서 쓴맛을 보고 있더라도 좌절하진 말자. 누구나 실수는 한다. 그 누구라도 주식에 물릴 수 있다.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뉴턴, 미국 대표 작가 마크 트웨인, 경제학 아버지 어빙 피셔. 그들도 주식에 물렸다. 위대한 인물의 실패기를 소개한다.


‘묻지 마 투자’에 눈물 흘린 아이작 뉴턴

만유인력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과학 역사상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천재다. 그는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천체의 움직임은 센티미터 단위까지 계산 가능하지만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711년 영국 정부는 남미 지역 무역 사업을 위해 ‘남해회사’라는 해운 공기업을 세웠다. 하지만, 남미는 스페인이 꽉 잡고 있었기에 영국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러자 ‘남해회사’는 본업 외에도 복권 등 다양한 사업에 손을 대며 투자자 눈길을 사로잡는다. 1720년 1월 뉴턴이 ‘남해회사’에 투자했을 때 주가는 1주당 100파운드였다. 주가는 5개월 만에 7배로 뛰었다. 1개월 뒤엔 주당 1,000파운드로 급등했다. 뉴턴은 주식을 처분해 큰 이익을 얻었다. 그 뒤에도 주가는 계속 올랐다. 뉴턴은 성급하게 주식을 팔았다며 자책하고 높은 가격에 주식을 되산다. 문제는 ‘남해회사’가 알맹이 없는 기업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여러 이권 사업에 뛰어들었을 뿐 정작 제대로 된 주력사업은 없었다. 매출도 변변치 않았다. 투자자의 광기를 먹고 주가만 팽창했을 뿐이다. 버블은 순식간에 터졌다. 뉴턴은 2만 파운드(당시 가치로 20억 원)를 날렸다. 뉴턴의 말처럼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한곳을 바라보고 외칠 때야말로 냉정해져야 한다.




‘테마주’에 당한 마크 트웨인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다. 그는 주식에 관해서도 유명한 말을 남겼다. “10월은 주식 투자를 하기에 특별히 위험한 달이다.” 그는 이어서 “다른 위험한 달로는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주식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마크 트웨인이 주식을 증오하게 된 이유가 있다. 그는 ‘테마주’에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잃는 실패한 투자자였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마크 트웨인의 마음엔 ‘일확천금’이란 꿈이 있었다. 그는 소설 쓰는 일 외에도 돈 되는 일이라면 마다치 않고 뛰어든 야심가였다. 당시 미국엔 광산업 열풍이 가득했다. 금이 나온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캘리포니아로 몰렸다. ‘골드러시’ 대열에는 미국인뿐만 아니라 영국인, 중국인도 있었다. 그리고 마크 트웨인도 있었다. 그는 직접 금맥, 은맥을 찾아다녔고, 투자까지 했다. 소설로 번 돈에 빚까지 더해 광산회사 여러 곳 주식을 사들였다. 주가는 급격히 올랐다. 마크 트웨인은 그토록 원하던 부자가 됐다. 행복은 금세 끝났다. 금광이 바닥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광산주 가치는 급락했다. 마크 트웨인의 주식은 순식간에 휴짓조각이 됐다. 지금 가치로 수십억에 달하는 재산을 날렸다. ‘테마주’ 투자의 슬픈 결말이었다. 마크 트웨인 사례를 소개하지 않아도 ‘테마주’의 위험성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선거철만 되면 ‘테마주’는 고개를 들고 누군가는 돈을 잃는다. 마크 트웨인이 남긴 또 다른 명언을 되새겨보자. “인생에서 투기를 하지 말아야 할 때가 두 번 있다. 한 번은 여유가 있을 때고, 또 한 번은 여유가 없을 때다.”


‘행복 회로’ 돌리다가 망한 어빙 피셔

어빙 피셔는 근대 경제 이론 개척자다. 물가는 화폐 공급량과 비례한다는 ‘화폐수량설’을 방정식으로 증명한 경제학자다. 그의 업적은 현대 경제학 근간이 됐다. 어빙 피셔는 예일대 경제학 교수였지만, 고고한 학자와 거리가 멀었다. 직접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시장 흐름을 분석해 주식 투자를 했고 큰돈을 벌었다. ‘월스트리트 예언자’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하지만 한순간 저지른 실수 때문에 그는 모든 걸 날렸다. 오늘날까지 대표적인 주식 투자 실패 사례로 소개되며 조롱당하고 있다. 


1929년 어빙 피셔는 해선 안 될 말을 했다. “미국 주식시장은 앞으로 꺼지지 않는 영원한 고점에 도달했습니다.” 미국 주식이 영원히 하락할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그의 예측은 와장창 깨졌다. 저 말을 한 직후 경제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인 대공황이 미국을 덮쳤다. 유능했던 경제학자 어빙 피셔가 대공황을 예측 못한 건 아니다. 다만, 그는 불황이 와도 중앙은행이 적절한 통화 정책을 펼치리라 믿었다. 그러면 주가도 끄떡없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대공황 앞에서 중앙은행도 속수무책이었다. 주가는 폭락했고, 어빙 피셔는 전 재산을 잃었다. 그의 실수는 지나치게 시장을 낙관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이다. 영원한 불황이 없듯, 끝나지 않는 호황도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신승리는 독이 돼서 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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