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의 시대

조회수 2019. 8. 19. 17: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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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운동화 전성시대

Writer 박세진 : 패션과 옷에 대해 쓰는 칼럼니스트, <패션 vs 패션>의 저자.

virgil abloh 인스타그램의 나이키


옛날이야기를 해보자. 가난한 흑인 동네에 살면서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 노력과 재능 덕분에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된 사람을 보며 자랑스러워하고 동경한다. 그들이 신고 있는 스니커즈도 물론 마찬가지다. 특히 나이키에서 마이클 조던 만의 에어 조던을 내놓은 이후 특히 스포츠 스타판 스니커즈들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최고의 선수가 신고 있는 개성이 넘치는 스니커즈는 수많은 이들에게 가지고 싶은 물건 최고 순위에 오른다. 물론 돈은 없다. 이들은 시간이 흘러 힙합 같은 분야에서 성공하게 되고 결국 그때 그 스니커즈를 찾아내 구입한다. 말하자면 성취의 증거다.


카니예 웨스트의 Yeezy Wave Blue


힙합 뮤지션들도 있다. 그들은 뮤직비디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의 스니커즈나 이제 막 등장한 신제품을 신고 등장한다. 기본적으로 운동을 할 때 신는 신발이니까 운동선수 이름이 들어간 새로운 모델이 중심이었지만, 카니예 웨스트는 이 바닥에 힙합 뮤지션의 이름을 들이밀었다.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이미 있던 제품의 커스터마이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이 붙은 새로운 스니커즈를 처음엔 나이키, 나중엔 아디다스에서 내놓았고 큰 성공을 거둔다.

에어 조던 1 시카고, 1985


그리고 스니커 헤드가 등장한다. 스니커즈를 모으는 사람들이다. 1985년 에어 조던이 나온 이래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고 힙합 문화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계속 커졌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니커즈뿐만 아니라 네임드 스니커즈를 찾아다니고 모델별, 연도별로 아카이브를 갖춘다. 정보를 교류하는 잡지나 책도 나오고 인터넷 사이트도 등장한다. 


여기에 일본, 중국 등등 수많은 나라의 젊은이들도 뛰어든다. 어렸을 때부터 TV를 거쳐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함께 봐 왔던 문화이기 때문이다. 구하기 힘든 스니커즈들의 가격은 뛰어오른다. 게다가 이게 좋은 돈벌이가 되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뛰어든다. 특정 모델이 풀리는 날 매장 앞의 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원하는 모델을 구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자기들끼리 거래하는 돈이 브랜드로 들어오진 않을 테니 ‘되팔이’들만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높은 가격으로 되파는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은 지금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할 확실한 유인이 된다. 브랜드들은 양산 스니커즈와 한정판 스니커즈들 사이의 적당한 가격 차이를 유지하며 전반적인 가격대를 올릴 수 있다.

virgil abloh 인스타그램의 나이키


사람들은 스포츠 스타와 힙합 스타가 신고 있는 스니커즈를 본다. 이제 와서 마이클 조던이 누군지조차 몰라도 상관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존경하는 것만으로도 아니 그 모델을 신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뮤직비디오, 행사장, 파파라치에게 찍힌 사진에서 뭘 신고 있는지는 관심의 초점이 된다. 


수많은 스니커즈들에게는 처음에 나온 이유, 누가 언제 어디서 뛸 때 신었는지, 누가 어떤 뮤직비디오에서 신었는지, 인기가 좋아서 가격은 얼마가 뛰었는지, 혹은 어떤 해프닝이라도 있었는지 등등등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유명한 스니커즈들의 리스트가 만들어지고, 그걸 찾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최근에 나온 구찌의 Ultraspace


201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힙합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실로 메인스트림 문화가 된다. 거기에 다양성, 자기 몸 긍정주의 등 흐름 속에서 몸을 구속하지 않는 편안한 옷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리고 이런 스니커즈 문화와 소비 방식을 하이패션에서 받아들인다. 눈에 확 띄는 화려한 스니커즈들이 명품 브랜드 로고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balenciaga의 트랙, balenciaga 인스타그램


레어 모델, 한정판, 전설적인 인물 혹은 라이징 아티스트와의 협업, 어쨌든 구하고야 말겠다는 긴 줄, 2차 시장, SNS에 올리면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눈에 확 띄는 특징과 로고 등등 전형적인 스니커즈 문화의 소비 방식은 티셔츠, 후드, 스웨트 셔츠, 가방 등으로 확대되었다. 힙합 패션의 시대, 스트리트 패션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 중심엔 바로 스니커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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