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이코스로 넘어온 이유

조회수 2019. 7. 2. 16:07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얼마 전, 전자담배의 최종 버전이라는 쥴(JUUL)이 국내 출시됐다.
나도 샀지만 다시 아이코스로 넘어올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이렇다.

Writer 이기원 : 세상 모든 물건과 금방 사랑에 빠지는 콘텐츠 제작자.




출처: www.juul.com

지난 5월 24일 ‘전자담배의 아이폰’을 자처하는 쥴이 국내에 출시됐다. 과장된 느낌이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쥴의 면모를 살펴보면 혁신이나 혁명 같은 단어를 붙이는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우선 담뱃잎을 태우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일산화탄소나 타르, 카드뮴 같은 물질이 거의 배출되지 않는다. 휴대가 간편하고, 청소 같은 귀찮은 작업도 필요 없다. 흡연자들 스스로도 싫어하는 냄새 역시. ‘트렌디한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힙스터 류의 우쭐함 같은 것도 포함될 수 있겠다.

흡연자인 나는 최근까지 아이코스를 이용해 왔다. 사실 아이코스 역시 발매 당시에는 상당히 혁신적인 물건이었다. 연초 못지않은 적당한 타격감이 있고, (약간의 찐 냄새가 있긴 하지만) 몸에 냄새가 묻지 않으며, 연초보다는 상대적으로 유해 물질이 덜하다. 하지만 귀찮은 점은 역시 가열될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주기적으로 청소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청소 과정이 꽤 지난하다. 전용 청소도구로 어느 정도 청결을 유지할 수 있긴 하지만, 곳곳에 묻은 물질을 제대로 제거하려면 별도의 도구가 필요하다(내 경우 클립을 곧게 펴서 기기 내부의 묵은 때를 긁어낸다).

쥴이라면 아이코스의 이런 단점을 곧바로 해소하고, 나를 니코틴의 신세계로 안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발매 당일 쥴을 구매해 바로 포장을 뜯었다. 구성은 초라해 보일 정도로 단출하다. 기기 본체, 충전 단자, 설명서가 전부다. USB 스틱처럼 생긴 본체에는 어떤 버튼도 없다. 입을 대고 들이마시면 코일이 가열되면서 카트리지에 들어있는 액체가 기체로 바뀐다. 함께 구매한 팟(기기에 끼우는 니코틴 액상. 카트리지 하나가 일반 담배 한 갑 역할을 한다)을 끼우고 시연해보니 장점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냄새가 전혀 없고, 연무량도 상당해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실감이 강하게 든다. 아이코스처럼 가열을 위한 대기 시간도, 청소의 귀찮음도 없다. 이제야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더 이상 냄새나 담배꽁초로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제대로 된 스모킹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겠구나. 정말 기뻤다.

약하다, 너무 약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서 만족도는 큰 폭으로 떨어졌다. 우선 쥴의 팟이 제공하는 니코틴은 너무 약했다. 아이코스의 히츠 하나면 약 10모금 정도를 흡입할 수 있는데, 쥴은 20모금을 흡입해도 피다 만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스프를 절반만 넣고 끓인 라면 느낌이랄까? 그건 아마 약한 니코틴 함량 때문일 것이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쥴 팟의 니코틴 함량은 0.7%다(미국에서는 최고 5% 함량의 팟도 판매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법규 상 불가하다). 니코틴 함량이 낮다 보니 아무리 피워도 뭔가 해소되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해외에서 판매하는 니코틴 함량이 높은 제품은 너무 비싸게 판매된다



문제는 또 있었다. 쥴 팟 하나의 가격은 4500원. 팟 하나가 일반 담배 한 갑 정도의 가격인데, 낮은 니코틴 함량을 횟수로 채우려다 보니 그만큼 소모도 심했다. 아이코스를 필 때는 보통 하루 반 갑 정도를 소모했지만, 쥴은 하루 만에 팟 하나 이상을 소모했다. 두 배의 비용이 필요해진 셈이다. 뭔가 대체재를 찾아야 했다. 해외 직구는 어떨까? 미국은 한국보다 높은 니코틴 농도의 팟을 팔고 있으니, 이걸 직구로 구매하면 훨씬 낫지 않을까? 하지만 역시 가격이 문제였다. 니코틴 함량 5%의 팟은 4개입이 한화로 약 3만 원. 배송비까지 포함하면 가격은 더 늘어난다. 너무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냄새가 없고 입만 가져다 대면 한두 모금 빨리 필 수 있다는 편리도 오히려 문제였다. 일종의 완전범죄가 가능해진 것이다. 쥴은 마음만 먹으면 금연광장에서도,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공공 화장실에서도, 차 안에서도 쉽게 필 수 있다. 냄새가 없으니 보는 사람만 없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흔적을 지울 수 있는 것이다. 흡연 욕구를 참지 않아도 된다는 건 결코 장점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누군가에게는 분명 피해를 주니까.

결국 다시 아이코스를 꺼내들었다. 현재로는 아이코스가 훨씬 좋은 선택처럼 느껴진다.



약 2주일 정도 쥴을 사용하고 난 뒤 나는 다시 아이코스를 꺼내 들었다. 예전에는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장점처럼 느껴졌다. 입만 가져다 대면 바로 작동하는 쥴의 편리함보다, 가열되기까지 10여 초를 기다려야 하는 아이코스의 느긋함이 좋았다. 가열되는 시간과 식어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유한함이 오히려 흡연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담배는, 누군가에게는 니코틴을 섭취하는 행위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종의 의식(儀式)이기도 하다. 직장의 스트레스에서 잠깐 탈출하고 싶을 때, 감정 깊숙이 침잠하고 싶을 때 도움을 준다. 감정적인 측면에서 쥴보다는 아이코스가 훨씬 좋은 선택처럼 느껴졌다.


됐고, 쥴이건 아이코스건 그냥 담배 끊는 게 좋지 않겠냐고? 동의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 아직은 담배가 주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