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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퓨마는 죽어야만 했을까

조회수 2018. 9. 21. 17: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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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의 어미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7년 전 뉴질랜드의 한 동물원을 방문 했었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곳은 동물원이었지만 숲과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정글 같은 숲 사이로 내어진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숨어 있는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동물들이 살고 있는 집에 잠시 놀러 온 것 같았다.

그곳 또한 커다란 케이지였지만 갇혀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안에서는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 다녔고, 동물들은 숨고 싶으면 언제든 숨을 수 있었으며 자신들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햇살은 따뜻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왔다. 한국에는 없는 동물들의 특이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동물원은 분명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세상에 ‘동물원’ 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물들이 동물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고 말이다.

지난 18일, 대전의 동물원에서 사육사의 부주의로 퓨마 한 마리가 사육장 밖으로 나왔다. 지난 8년동안 좁은 우리에서 살며 정신질환까지 앓았던 퓨마는 약 4시간 남짓한 시간, 가장 행복했을, 생애 첫 나들이는 죽음으로 끝이났다.


퓨마가 사육장을 나와서 고작 한 것이라고는 사육장 인근 배수로의 커다란 종이 박스 안에 들어가 있는 일이었다. 얼떨결에 밖에 나오게 되었지만 낯선 환경에 겁에 질렸던 모양이다.

한 차례 마취총을 쐈지만 생포에 실패한 수색대는 조급한 마음에 사살 결정을 내렸다. 대전 시민의 말에 따르면 퓨마가 숨어 있었던 산 바로 너머에는 주거지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 날, 갑작스러운 어미의 부재에 새끼들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는 그 모습을 보고 ‘분리불안증’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어미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꼭 그렇게 죽여야만 했나, 마취총을 한 번만 더 쏠 수는 없었나’ 반문했다.그리고 그 물음표는 동물원 폐지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어느덧 대한민국에서도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교육용으로 퓨마를 박제한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와중에 불행한 퓨마는 마지막 가는 길까지 구경거리가 되어 생을 마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뉴질랜드의 동물원을 떠올렸다. 퓨마가 만약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면 정신질환에 시달릴 일도, 허망하게 죽임 당할 일도 없었겠지. 어쩌면 퓨마는 다시 좁은 우리로 돌아가는 것보다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걱정 해주어 조금 기뻐할 지도 모르겠다. 퓨마가 가는 곳에는 너른 초원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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