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뷰 본문

잊을 만하면 터지는 ‘해외 기술 유출’…대책은 없나

프로필 사진
한경비즈니스 작성일자2018.10.10. | 531 읽음

-유출 피해 연평균 50조원 추산…‘인적 관리’더 철저히 해야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국내 기업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을 해외로 유출하거나 이를 빼돌리려고 시도했던 정황들이 최근 들어 계속 포착되고 있다.


국내 기업 사이에 발생하는 기술 유출도 문제지만 해외로 넘어가면 사안이 더욱 심각해진다. 해외로의 기술 유출은 개별 기업의 사기와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가 경쟁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 발광다이오드(LED) 제품 전문 제조업체인 서울반도체는 매년 연매출의 10%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한 끝에 2011년 자동차용 LED를 국내 최초로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약 7년 동안 5600억원의 돈을 투자한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등 세계적 자동차용 LED 제조업체로 성장했다.


그런데 지난 9월 전 직원들이 LED 기술을 대만 업체에 빼돌리려던 사실이 적발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재직 당시 연봉 협상에 불만을 품고 회사를 나왔다. 대만 기업으로부터 기존 연봉의 두 배 등을 제안 받고 이런 범행을 저질렀다. 서울반도체 관계자는 “자동차용 LED는 회사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적발되지 않았더라면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에는 최고 수준인 드럼세탁기 모터 기술을 보유한 A중견기업의 기술을 중국 업체에 유출한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들은 A기업의 중국 현지법인 연구소장으로 재직하던 중 중국 업체로부터 고액 연봉과 인센티브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세탁기 모터 설계도면과 제조 관련 핵심 기술 자료가 저장된 업무용 노트북을 갖고 이직했다. 일당은 검거됐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해당 모터 기술을 전수받은 중국 업체는 이를 생산해 국내 대기업에 역수출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A기업은 200억원이 넘는 연간 매출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에 따르면 해외 기술 유출 피해에 따른 기업들의 피해액은 연평균 5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국가 예산(2018년 430조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돈이 기술 유출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나 정부에서 기술 유출을 막는 것을 기술 개발 못지않게 중요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년간 적발 건수만 166건 달해


국내 기술의 해외 유출을 통계를 보면 그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최근 6년간 총 166건의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을 적발했다.


기술 유출 적발 건수가 많다는 것은 피해를 막았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반대로 그만큼 기술 유출 시도가 빈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두운 이면이다.


심각한 것은 국가 핵심 기술에 대한 유출 사건도 22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국가 핵심 기술은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보와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산업 기술이다. 반도체·조선·철강·정보통신 등 12개 분야에서 64개 기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지난해 공개한 ‘국가 핵심 기술 유출 현황’에 따르면 조선·디스플레이·전기전자 부문에서 중국·미국·유럽 등으로 핵심 기술이 흘러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모두 국내 기업들이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분야에서 발생했다. 이 같은 수치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나온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드러나지 않았거나 증거를 밝혀내기 어려워 기업에서 대응하지 않았던 사건들까지 모두 합치면 그 수는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외 기업들의 기술 유출 시도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기술에 대한 중요성은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당하다. 즉, 기술 흐름에 뒤처지지 않아야 국가나 기업 또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시대가 왔다.


한국은 2017년 주요 상품·서비스 시장점유율 조사 결과 총 7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24개)·일본(10개)·중국(9개)에 이어 4위를 차지해 기술 강국의 위용을 뽐냈다. 그만큼 향후에도 해외 기업들로부터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쟁 기업을 상대로 기술을 빼오는 것은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서울반도체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7년간 5600억원이 들어간 기술을 대만 업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가로채려고 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해외로의 기술 유출을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여러 방안들을 통해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부분의 기술은 ‘사람’이 유출


그렇다면 해외로의 기술 유출을 보다 효율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인적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기술 유출 사건이 ‘사람’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특허청이 ‘영업 비밀’을 보유한 616개 회사를 조사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해당 조사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으로의 기술 유출 피해 실태를 집계한 결과였다.


지난 5년간 ‘피해 사실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86곳)의 81.4%가 내부 직원의 소행이었다고 답변했다. 퇴직자가 72.9%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고 평사원(32.9%)과 임원(11.4%)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처럼 직원이 자료를 몰래 확보한 뒤 퇴사하고 전직하거나 ‘산업 스파이’처럼 자료를 유출해 팔아넘기는 것이 기술 유출의 가장 빈번한 사례다. 내부 직원은 기업의 영업비밀 등 핵심 기술에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적절한 보상이 꼽힌다. 발생한 기술 유출 사례 대부분이 따지고 보면 결국엔 돈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조치로 기술자들의 처우 개선이 꼽혔지만 실제 기업에서 그렇게 하는지 체감하기 어렵다”며 “그 사이 중국과 같은 해외 업체들은 과거보다 더욱 큰 금액을 제시하며 핵심 인재들을 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역시 “한국은 기술 개발은 잘하는데 여전히 관리가 약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개발자들이 자기가 개발한 기술을 통해 회사에 1000억원의 이익을 가져다준다 해도 정작 본인에게 떨어지는 수당을 얼마 되지 않는다. 불만을 품을 수 있는 상황인 만큼 한국 기업들이 직무 보상을 많이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취약한 기술 유출에 대한 보안 인식도 개선이 필요한 숙제다. 대표적인 예로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6월 출시한 리니지M을 들어보자. 리니지M은 당시 엔씨소프트가 오랜 기간 준비하며 게임 유저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기대작이었다.


출시 1년이 넘은 현재까지 모바일 게임 매출 1위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을 정도로 엔씨소프트 매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 출시 2개월을 앞둔 지난해 4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데모 버전이 아프리카TV를 통해 버젓이 공개된 것이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신작이었던 만큼 그 어느 때보다 보안에도 철저히 신경 썼다. 하지만 그 보안이 뚫려버린 것이다.


내막은 이랬다. 리니지M 개발에 참여한 전 직원이 퇴사하면서 데모 버전을 몰래 가져 나온 것이었다. 다행히 이를 본 몇몇 사람들이 이를 엔씨소프트에 신고하며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후 엔씨소프트는 검찰에 직원을 고소했고 그 직원은 올해 벌금형을 받았다.


해당 직원은 “단순히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에 데모 버전을 공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 직원이 데모 버전을 해외에 팔기로 마음먹고 유출했다면 엔씨소프트 측은 심각한 피해를 볼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특히 제조업은 중소·중견기업들의 취약한 보안에 대한 인식 제고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인 교수는 “거의 모든 대기업들은 외부 기기 반입 금지나 높은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적용했지만 문제는 수많은 협력회사다. 대기업들은 1차 협력회사 2차 협력회사 등 수많은 협력회사가 있다. 협력회사들은 개발에 신경 쓰지 보안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는 “협력회사들을 통해 대기업의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만큼 대기업은 협력회사들과 계약할 때 기술 유출 의심 시 조사 권한을 부여받는다는 등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 계약서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직 금지에 대한 보상도 필요해”


그런가 하면 법조계에서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제정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 잣대를 보다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기술 유출로 실제 피해를 봤는지 그리고 피해를 봤다면 얼마를 보상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는 법원의 손에 달려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부정경쟁방지법에 의거한 전직 금지 청구는 직원이 실제 자료를 유출하지 않았더라도 가능하다. 다른 회사로 가면 유용한 정보나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것이 유출될 개연성이 있다고 하면 예방적으로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보수적으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어 실제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임보경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실제적으로 자료를 유출하지 않은 이상 부정경쟁행위금지청구권에 의해 전직 금지를 명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며 “법원에서 보다 탄 력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에선 퇴사 시 주요 경쟁사에 가지 말라고 전직 금지 약정에 서약한다. 그런데 해당 직원이 이를 어기고 약정에 기재된 경쟁사로 이직한다는 소문을 입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막기 위해 전직 금지 청구를 하더라도 약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으면 가처분이 잘 인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실제로 해당 직원이 그 회사로 갈지 어떻게 확정짓느냐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전직 금지 가처분 명령은 대부분이 실제 약정을 위반해 해외 경쟁사로 간 이후에서야 내려진다.


임 변호사는 “만약 한 직원이 실제로 해외로 갔을 때 나라별로 법 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조치를 취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며 “법원에서 전직 금지를 받아들이는 기준을 지금보다 낮추는 것도 기술 유출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직을 금지하더라도 여기에 따른 보상은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전직 금지는 생계를 제약하는 약정이다. 유럽 등의 국가들은 여기에 따른 대가 지급이 필수라고 법으로 규정하거나 판례상으로 인정해 전직 금지 기간에 직전 연도에 받던 연봉의 절반 정도를 지급한다”며 “현재 한국에선 대가 지급을 필수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데 보다 효과적으로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돋보기

<갈수록 어려워지는 ‘기술 유출’ 입증>


특히 최근에는 핵심 기술을 유출하지 않고 사람만 가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는 것도 산업계의 큰 골칫거리다. 이는 특히 중국 업체들을 중심으로 활성화되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업체들은 특히 국내 디스플레이나 휴대전화·반도체 등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접촉해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몸만 오라’는 러브콜을 보내는 것으로 전해진다.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메모리 등에서 잔뼈가 굵은 연구원과 기술자들은 기술과 관련한 핵심 자료가 없더라도 충분한 기술 노하우 전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계를 어떤 온도에서 돌리는 게 가장 좋은지, 재료는 뭘 쓰는 게 가장 좋은지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료를 유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 유출 의혹이 일더라도 이를 입증할 만한 물증 자체를 제시하기 어렵다. 퇴사 시 경쟁 업체에 가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지만 여기에서도 편법이 사용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몇몇 중국 기업들은 인력을 통한 기술 유출을 시도할 때 이들을 이전에 몸담았던 분야와 전혀 무관한 계열사에 위장 형식으로 취업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enyou@hankyung.com


놓치지 말아야 할 태그

#격공

    많이 본 TOP3

      당신을 위한 1boo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