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유치원 옆 오피스텔이 호텔로 바뀐 이유

조회수 2016. 6. 25. 14:00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2016 시민 입법 프로젝트 - 바글시민 와글입법
'오피스텔'을 갑자기 '호텔'로 바꾸는 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해요?


3살 아이 엄마인 민희(34·가명)씨가 물었습니다.


민희씨를 만난 지난 5월31일 오전, 아이가 다니는 ㅎ유치원에서 서쪽으로 160걸음(93m) 떨어진 도로변에선 고층 건물을 짓는 공사가 마무리되는 중이었습니다.

출처: 김진수 기자
12개층 149실 규모의 호텔. 2013년 2월 건물 공사가 시작될 당시 이 건물의 건축 목적은 호텔이 아닌 오피스텔이었습니다. 

2년 뒤인 2015년 5월, 건설사가 오피스텔에서 호텔로 업종 변경을 하려고 했을 때도 서울시교육청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고층 건물에서 작은 모퉁이만 돌면 나오는 유치원의 교육 여건을 우선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꼭 1년 만인 2016년 5월16일, 영등포구청 건축위원회는 오피스텔을 호텔로 바꿀 수 있도록 ‘조건부 의결’했습니다. 호텔 인근에 고급 수목을 식재하는 등 비교적 간단한 조건이 달렸습니다.

ㅎ유치원의 학부모 대부분은 갑자기 달라진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건설사가 (ㅎ유치원이 있는) ㅎ아파트 단지 주민의 70%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학부모의 의견은 묻지 않았어요
관광호텔이라니까 관광버스가 즐비할 텐데, 무엇보다 아이의 안전이 가장 걱정입니다

지난 1년 사이, 달라진 건 한 가지입니다. 국회관광진흥법(‘학교 옆 호텔법’)을 개정한 것이죠. 2015년 12월3일 새벽 1시30분께였습니다. 

출처: 이정우 기자


*학교 옆 호텔법 


- 학교 출입구에서 직선거리로 75m 이상 떨어진 곳에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숙박시설을 건축할 경우, 까다로운 학교환경위생정화위원회의 심의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승인만 받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의미


올해 3월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서 ㅎ유치원은 관광호텔을 코앞에 둔 첫 학교가 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국회가 이 법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과정(입법 과정)에서 해당 법이 학생과 학부모, 주민의 생활에 미칠 영향에 관한 토론이 진지하게 오간 게 아닙니다.

이 법은 19대 국회 초반인 2012년 10월 관광산업 경쟁력 향상을 명분으로 정부가 제출했는데요. 당시 야당은 “아이의 학습권·보건권을 침해한다” “재벌을 위한 특혜법”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국회의 법안 심사 첫 관문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3년 넘게 묶여 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국회 통과가 됐을까요?


2015년 12월1일 야당 원내지도부는 법안 처리에 덜컥 동의를 해줬습니다. ‘예산안을 법정 기한(12월2일) 안에 통과시켜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압박에 밀려, 예산안과 함께 관광진흥법과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정부·여당이 주장한 법과 모자보건법, 대리점거래공정화법 등 야당이 요구한 법을 주고받기식 ‘패키지딜’로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안에서도 “밀실 야합을 철회하라”는 반발이 빗발쳤지만 정의화 국회의장은 여야 합의를 명분으로 관광진흥법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했습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이란


-법안은 보통 소관 상임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국회의장이 직권(직무상 권한)을 이용해 국회 본회의에 직접 내놓는 것. 


수많은 ‘호텔 옆 학교’를 만들어 낼 법이, 이렇게 교문위, 법제사법위원회의 제대로 된 심사도 거치지 않은 채 여야 원내 지도부의 ‘흥정’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현재 수도권에서만 20곳이 넘는 ‘학교 옆 호텔’ 건립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출처: 김경호 선임기자

교육, 안전, 먹거리, 사생활, 주거, 임금 등 시민의 삶을 규정하는 법률이 시민의 의사에 반하여 부당하고 불공정한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사례는 ‘학교 옆 호텔법’ 외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지난 3월2일 새누리당은 190시간이 넘는 야 3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와 들끓는 반대 여론에도 아랑곳없이, 국가정보원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테러방지법 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2014년 11월7일 가결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도 “특별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유가족의 절규와 시민의 외침은 묵살됐습니다.


시민의 정당한 요구가 반복적으로 좌절되는 사이 ‘권력을 위임받은 국민대표기관인 의회는 국민의 의사·이익을 대변하고, 자유로운 토론과 타협을 이뤄야 하며, 다수결의 원칙 아래 소수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회민주주의(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들은 다 허물어져갔습니다.


시민단체들이 강조한 정책들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될 기회마저 얻지 못했습니다.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민주노총 등 1천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총선유권자네트워크가 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3월 발표했던 30대 정책 과제 가운데 지난 4년간 실행된 과제는 ‘성폭력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가 유일했습니다. 재벌과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규제,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등 3개 과제에선 부분적으로만 성과가 있었습니다. 나머지 26개는 대부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낮아진 정치적 효능감(‘나도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느낌)으로 인해 시민들은 애써 투표해야 할 필요성도 찾지 못했습니다. 20대 총선 투표율은 58%로 4년 전(54.2%)보다 다소 올랐지만, 2004년 마지막으로 기록했던 ‘60%’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시민들이 무관심과 냉소로 의회를 대하면, 국회의원들은 주권자의 눈치를 보며 그들을 대표하려는 시늉조차 접습니다. 이는 ‘정치적 효능감 하락→투표율 하락→국회 대표성 하락→의회민주주의 위기’의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20대 국회 개원을 맞아, 시민이 의회의 관객에서 연출자 또는 연기자로 탈바꿈하는 실험을 시도합니다. 다수의 시민이 원하는 법안을 국회가 어떻게 심사하는지 추적하는 ‘바글시민 와글입법’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정치와 언론의 고질을 동시에 극복해보려고 합니다. 

당신의 법안에 투표해주세요

프로젝트는 투표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지금 투표 페이지(up.parti.xyz)에 접속해주세요.


1. 최저임금 1만원법

2. 전·월세 상한제법

3.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법

4. GMO 완전표시제법


4개 후보 법안 중 관심 가는 법안에 투표할 수 있습니다.


*후보 법안은 어떻게 정했나


- 20대 국회에 진입한 4개 원내 정당 가운데 2개 이상의 정당이 4·13 총선에서 내걸었던 공약을 추렸습니다. 여러 당이 관심 갖고 있는 법안이 올해 국회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공통 공약 140여 개 가운데 시민의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주고, 쟁점이 단순하며, 공공성이 높은 법안 10여 개를 골랐습니다. 그중 <한겨레21> 내부 투표에서 표를 많이 얻은 4개 법안을 ‘후보 법안’으로 선정했습니다. 


다만 가장 표를 많이 얻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은 이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한겨레21>이 끝까지 관심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뜻에서 후보 법안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