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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을 위한 변명

<한겨레21> 22년차 사진기자가 말하는 ‘사진쟁이의 윤리’
H21 작성일자2016.05.16. | 9,200 읽음

2014년 6월, 박승화 사진기자는 고 전수영 선생님의 ‘빈방’을 촬영했다. 전수영 선생님은 2년 전 세월호 참사 때 제자들을 구하다 숨진 경기도 안산 단원고 국어교사다.


박승화 기자는 최근 고 전수영 선생님의 어머니가 쓴 책 <4월이구나, 수영아> 발간 소식을 듣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 글을 남겼다. 

2년 전, 나는 전수영 선생님의 부모님과 취재기자가 나누는 대화를 듣지 못했다. 고인의 빈방에 들어갈 수 있다는 허락과 그것을 찍어야 한다는 의무로 인해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그 사연을 들었다면 내가 사진을 편하게 찍을 수 있었을까? 좀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까? (중략) 사진을 찍지 못하는 것이 인간적이고 정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면을 받아놓은 기자는 짐승이 되기도 한다.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내가 해도 되는 일인가?’라는 질문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했다.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희생자의 방을 찍게 될 터였다. 사진 찍는 기자로서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방에 들어갔을땐, 최대한 서둘러 빨리 찍고 나왔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의 방' 전시회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진가들과 함께 세월호 희생자들의 빈방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한겨레21>이 2014년 벌인 ‘기억0416’ 캠페인으로 시작된 ‘4·16 기억저장소’와 함께 희생자들의 빈방을 기록한다. 유족에게도, 사진가에게도 힘든 작업이다.

-왜 빈방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사회적인 큰 비극을 맞으면 유족들은 그 비극을 잊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회는 그 비극을 잊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아무리 큰 비극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금세 잊히곤 한다. 빈방은 그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이자, 그 사람이 존재했어야만 하는 장소다. 사진으로나마 ‘망각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하는 이유다.


박 기자는 전수영 선생님의 방을 촬영할 때의 자신을 ‘짐승’이라고 표현한다. ‘찍어도되는 것인가’ 하는 회의와 ‘찍어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의 갈등. 그리고 결국 셔터를 누르는 것을 선택한 자신에 대한 비웃음이다.


사진기자들은 때론 ‘짐승’이 되어야 한다.
'소녀를 노리는 독수리'

카터는 이 사진으로 1994년 4월 풀리처상을 받았다.

출처 : 케빈 카터
이 사진 한 장으로 케빈 카터는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박기자는 이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셔터를 누르기 전까지는 사진기자이고, 셔터를 누르고 나서야 사람으로 돌아온다.”

올해 퓰리처상을 받은 시리아 난민 사진들은 너무 드라마틱하게 현장을 담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사진 작가나 기자들은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으로 사진을 찍는다. 시리아 난민 문제를 널리 알리는 기폭제가 됐던 알란 쿠르디의 사진도 그랬다. 해변에 아이가 숨져 있는데 사진을 찍고 지면에 싣는 행위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출처 : AP 연합뉴스
“그런 정도의 자극적인 사진이 나와야만 난민 문제에 주목하는 사람들 또한 비난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왜 이런 상황이 생기게 되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상황이 벌어졌으니 내가 이 현장에 있는 것이다. 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이 상황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딜레마에 빠질 때마다 그는 생각한다.

사진가들끼리도 사석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곤 한다. 여전히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카메라는 죽음을 좇지만, 죽음은 카메라를 찾아온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카메라를 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짐승’의 변명이 아닌 ‘사진기자’의 숙명이다.


하나의 장면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게 찍을 수 있을까?
어떤 현장이든지 처음에는 ‘모두 찍어야 한다’. 전체가 보이는 사진, 그다음에는 여러 부분들을 찍는다. 그러나 지면에는 한 장만 나간다. 수백 장 가운데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장만 선택된다. 결국 사진은 뺄셈이다. 그림은 캔버스 위에 무엇을 더하느냐의 문제지만, 사진은 프레임 안에서 무엇을 빼느냐의 문제다. 사진을 고를 때도 같다. 수백, 수천 장을 찍어두고 몇 장을 골라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찍은 사진을 버려서는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빠지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더 적합한 사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정보가 담겼을 수도 있다.


박 기자가 올해 엮어 펴낸 사진집 <싸움>에도 그런 사진이 있다. <싸움>은 민족사진연구회가 1980~90년대 아스팔트 위 싸움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 그중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학생들이 빼곡하게 모여 <애국의 길>을 부르는 사진이 있다. 당시엔 그저 학생 수백 명이 모여 있는 평범한 사진에 불과했다. 하지만 20여년이 흐르고 난 뒤 그는 그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이날 이곳에서 이 노래를 부르던 학생들은 대체 지금 다 어디로 갔나?"

1990년 <애국의 길>을 부르고 있는 전대협 학생들
출처 : <한겨레 21> 박승화 기자
“사진 한 장이 절대 진실이 될 수 없다”

수많은 문장으로 이뤄진 글에서 한 문장만 떼내어 전체를 볼 수 없듯이, 사진도 한순간만 뚝 떼낸다고 사건의 모두를 보여줄 수는 없다. 물론 모든 사진은 사실이다.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니다.

지면에 나가는 보도사진은 오히려 ‘평범한’ 사진일 때가 많다.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성의 없이 찍어서가 아니다. 진실을 훼손할 위험이 가장 적은 사진이 선택되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든 이의 주관이 지나치게 이입되는 순간, 보도사진은 위험한 사진이 된다.

출처 : 사진집 <싸움> 민족사진연구회
“내가 살아가는 동시대를 찍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 위해서.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시절은 이런시절이었구나’ 떠올릴 수 있도록.”
출처 : 사진집 <싸움> 민족사진연구회


글 이채연 교육연수생

편집 이지민



박승화 사진부장은 1994년 <한겨레21> 창간 이후 22년째 사진을 책임진 기자입니다. 세월호, 쌍용차, 강정마을, 밀양… 약자들의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 가면 늘 카메라를 든 그와 마주치곤 합니다. 이 글은 박승화 사진부장이 <한겨레21> 3기 교육연수생을 대상으로 한 특강 소개 기사 '짐승을 위한 변명'를 재가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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