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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1

세계 뒤흔든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의 전말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가 전하는 취재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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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워터게이트 스캔들’: 1972년 6월 비밀공작반이 대통령 R.M.닉슨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체포된 미국의 정치적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닉슨정권의 선거방해, 정치헌금의 부정, 수뢰, 등이 드러났다. 1974년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뉴욕타임즈>, '펜타곤 페이퍼스’: 1945년부터 1967년까지 미국 정부가 정치·군사적으로 베트남전쟁에 개입한 역사를 담은 1급 기밀문서로, 미국국방부(일명 펜타곤)에 의해 작성되었다. 미 국방부 기밀문서 보도는 미국의 베트남전쟁 명분이 거짓이었음을 폭로해 종전을 앞당겼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내부고발이자, 최대의 내부기밀 유출에 힘입은 저널리즘의 승리로 역사에 남아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라는 프로젝트 이름은 바로 펜타곤 페이퍼스 보도에 바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76개 나라, 109개 언론사 소속 또는 프리랜서 탐사보도 저널리스트 376명이 함께 취재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는 여러 면에서 워터게이트펜타곤 페이퍼스에 비견될 만하다.

출처pixabay

지난 4월4일 새벽 3시(한국시각) 전세계에서 동시에 쏟아지기 시작한 ‘파나마 페이퍼스’ 보도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유령회사에 수백만달러를 감춘 아이슬란드 총리가 보도 이틀 만에 사임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파키스탄, 몰타 등 각국 정상들도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언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협업에 참여한 건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7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전자우편을 한 통 보내왔다. 파나마 로펌에서 유출된 자료를 공동 취재할 의향이 있냐는 것이었다. <뉴스타파>가 참여했던 이전 두 차례의 국제 협업(2014∼2015년 룩셈부르크 리크스와 스위스 리크스) 때는 한국 관련 정보가 비교적 적었지만 이번 유출 자료에는 아시아 국가의 이름도 꽤 보이고 한국 이름도 제법 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참여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ICIJ에서 보안 서약 양식이 왔다. 보도 목적 이외엔 자료를 절대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각서였다. 보안 서약에 서명해서 보내자 ICIJ 데이터팀에서 다소 복잡한 절차를 거쳐 유출 자료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왔다.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ICIJ 데이터팀이 이미 비정형 상태의 유출 자료를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출처EPA 연합뉴스

지난해 9월8일 아침, 바로 전날 밤 독일에 도착한 <뉴스타파> 취재진은 뮌헨 외곽에 자리잡은 <쥐트도이체 차이퉁> 사옥으로 향했다.


오전 9시, <쥐트도이체 차이퉁> 편집국장과 ICIJ 대표 제라드 라일의 환영사로 언론 역사의 한 획을 긋게 될 기자들의 국제 협업 회의가 시작됐다. 시간대별로 빽빽하게 짜인 1박2일의 일정, 먼저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두 탐사보도 전문기자, 바스티안 오베르마이어와 프레데리크 오베르마이어가 유출 데이터 규모, 파일 유형 등에 대해 설명했다.


파일 규모는 무려 2.6테라바이트(TB). 여기엔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가 관리해온 고객 관련 자료 40년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문서로 따지면 1150만 건이 넘는다고 했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의 두 기자는 자료를 들여다보고 한 언론사가, 아니 일국 단위에서 다룰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이들은 바로 ICIJ에 연락해 국제 협업을 제안했다.


데이터 소개가 끝난 뒤 자료가 유출된 파나마 최대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를 ‘이해’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 로펌은 직원 500여 명에 전세계 주요 도시와 조세회피처에 40여 곳의 지점을 거느린, 이쪽 세계에선 ‘역외 비밀 도매상’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처음엔 알아듣기도, 발음하기도 힘들었던 모색 폰세카라는 이름이 반나절 정도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독일 회동에서 돌아온 <뉴스타파> 취재진은 본격적으로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 분석을 시작했다. ‘Korea’로 검색해 모두 1만5천 개가량의 파일을 추출했고 이를 일일이 전수조사했다. 의미 있는 이름을 놓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지만, 끝없이 시간이 들고 극심한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를 통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면서 ‘한국 주소’를 기재한 ‘한국인’ 195명의 이름을 발견했다. <뉴스타파>는 195명 가운데 현재 3분의 1 정도의 신원을 파악해 보도 가치가 있는 인물들을 차례로 공개할 계획이다.

출처사진공동취재단


취재진은 한국인이 흔히 쓰는 이름의 영문을 무작위로 검색하다 ‘Ro Jae Hun’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이름과 같았다. 데이터베이스를 정밀 검색해 ‘Ro Jae Hun’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모색 폰세카에 제출한 ‘홍콩거민신분증’ 사본을 발견했다. 사진과 생년월일을 대조한 결과 이 인물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과 동일인임을 최종 확인했다.


노씨는 2012년 5월18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원아시아인터내셔널’(One Asia International), ‘GCI아시아’(GCI Asia), ‘루제스인터내셔널’(Luxes International) 등 3개의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 회사 모두 노재헌씨가 이사이자 주주인 동시에 실소유주(Beneficial owner)로 등재돼 있었다. 1달러짜리 주식 한 주만 발행한 전형적인 페이퍼컴퍼니였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노씨는 홍콩에서도 자본금 1달러짜리 법인을 다수 설립하면서 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를 주주로 등재해 소유관계를 파악하기 힘들도록 해놓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출처pixabay
<뉴스타파>는 모색 폰세카 자료에서 포스코의 주력 계열사인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이 2011년 S&K홀딩이라는 파나마 법인으로부터 ‘이피시에쿼티즈’(EPC Equities LLP)라는 회사의 지분을 각각 50%(394억원), 20%(157억원)씩 인수한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이피시에쿼티즈가 영국 법인이지만 2008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영국 공시 자료에 자산이나 현금흐름이 완전 ‘0’인 휴면 법인으로 돼 있다는 사실이다.


포스코는 이 회사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남미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을 인수 이유로 밝혔다. 더 놀라운 것은 포스코가 이 회사를 인수한 이후 두 차례의 자산 감액 처리를 통해 장부가액을 ‘0’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불과 4년 만에 껍데기 회사가 됐다. 그런데도 포스코는 100억원 가까이를 더 투자해 이 회사의 지분 10%를 추가로 사들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씨나 포스코의 경우 국세청이나 수사 당국의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조세 당국이나 수사 당국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미지수다. <뉴스타파>는 2013년 ICIJ와 공동으로 진행한 역외 탈세 추적 프로젝트를 통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 등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들어 해외 비밀계좌를 개설한 한국인 180여 명의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국세청은 이 가운데 40여 명에 대해 2천억원 가까운 세금을 추징하고, 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이후 감사원 감사와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매우 미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재정을 확충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공염불에 그친 셈이다.


국경 초월한 협업, 새로운 저널리즘 시대 열려

40여 년 전 워터게이트와 펜타곤 페이퍼스 보도가 아날로그 시대 탐사보도의 백미이자 저널리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 전범이었다면, ‘파나마 페이퍼스’는 디지털 시대 저널리즘의 혁명적 변화를 보여준다. 1970년대 초 두 보도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라는 거대 신문사의 울타리 내에서 이뤄졌다면, ‘파나마 페이퍼스’는 경쟁을 배제하고 국경을 초월해 협업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시대를 열었다. 그 구심점엔 ICIJ라는 비영리 탐사보도 조직이 자리잡고 있다. 저널리즘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글) 김용진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대표


(편집)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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