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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시민인가 신하인가

이주의 키워드는 '김기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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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꾸만 "모른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 얘기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영화도 있지만, 어쨌든 나쁜 놈보다 이상한 놈이 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걸까.


최순실 사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처신을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하다 마지막에는 “늙어서 착각했다”로 마무리했다. 영화 시나리오로 따지면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기기결’이다.

출처다음 티스토리 블로그

스토리 구조 자체도 신기하지만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건 이 배우의 연기력이다. 그가 말한 내용을 글자로 보면 우습기 그지없는 변명에 불과하지만 청문회 현장을 영상으로 보면 마음이 움직인다.


‘최순실이란 이름 석 자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답변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 비하면 눈을 굴리며 웃음을 참느라 고생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야당 의원들의 호통에 바로 사실을 실토한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 같은 사람들은 ‘하수’에 불과하다.


김기춘 전 실장이 무언가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사망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보면 드러난다. 이 비망록에 드러난 김 전 실장의 꼼꼼하고도 완벽한 지시사항은 과연 이게 대통령비서실장이 지시할 만한 일인지 의심케 한다. 그가 계속 박정희 시대를 살았다면 유능한 중앙정보부장이 되었을 것이다.

‘김영한 비망록’ 가운데 2014년 6월17일치의 내용. “KBS 노조, 16개 직능단체”의 사장 선임 절차와 관련된 제의를 언급한 뒤 “수용 곤란”이라고 적혀있다.

출처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 제공

충성충성충성. 그가 추구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이런 현실에도 천연덕스럽게 무지를 연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꾸밀 때 표정을 보고 진실을 추측해낼 수 있다. 그런데 김기춘 전 실장을 앞에 두면 그게 좀 어렵다. 이 선량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일종의 ‘신심’, 즉 진정성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자면 김 전 실장이 인생을 통틀어 추구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충성’이다. 자기가 거짓말을 열심히 해야 충성을 다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기 때문에, 그게 얼굴에 드러나는 거다.

출처ytn 화면 갈무리
몰라야 한다. 몰라야 한다. 몰라야 한다.

김기춘 전 실장이 최순실씨와 모종의 관계를 인정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농단’의 주범이 된다. 그래서 박 대통령을 군주로 모시는 김 전 실장은 절대 최순실씨를 알아서는 안 된다.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것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르쇠로 일관해야 한다. 그게 신하로서의 마지막 도리다.


김기춘 전 실장이 누구보다 권력을 맹신하고 복종을 자처했다는 것은 2014년 말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비서실을 장악하고 전권을 휘두르기보다 이미 공고화된 비선 권력을 인정하고 안주하는 길을 택했다.

청와대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왼쪽부터)

출처오마이뉴스

공식적으로 자신보다 직위가 아래인 ‘문고리 3인방’을 처음부터 상전 모시듯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시 대통령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자신에 대한 사퇴 여론의 진원지로 ‘정윤회와 십상시’를 지목하자 오히려 ‘양천’(조응천과 박관천)을 쫓아낸 것은 이런 정황을 보여준다.


출처한겨레(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편집)
민주공화국 이념은 사람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이 아니라 민의의 변화를 중시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김기춘 전 실장은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권력의 이런 속성이 오늘의 국정 농단 사태를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공식 직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특정 사인이 권력을 가지는 행태가 일반화된 것은 이들이 민주공화국의 원칙이 아닌 권력이 가진 힘만이 실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 인식이 정치적 냉소주의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지금 냉소적 권력의 파탄을 보는 셈이다.

글 / 김민하 미디어스 기자

편집 및 제작 / 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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