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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파괴한 그 '연기'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책임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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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www.pixabay.com

해마다 겨울이 되면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어떤 약을 써도 듣지 않는 폐질환 환자들이 찾아왔고, 이들 중 몇몇은 머지않아 사망했다. 호흡곤란을 겪는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면 폐 조직이 점차 섬유화되어 굳어가는 간질성 폐질환의 일종이었는데,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았다.


출처www.pixabay.com

2011년 4월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 같은 증상을 보이는 20~30대 산모 7명이 입원했고, 그중 4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잇따라 영유아들이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하고 나서야 역학조사가 시행되었다. 그해 11월 질병관리본부는 조사 결과 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고 발표했다.  ‘살균 99.9%! 안심하고 쓰세요’라고 광고하던 그 살균제가 실은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주범이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한국에서 판매된 시기는 1994년이다.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판매된 이 제품에는 살균을 위한 ‘폴리헥사메틸린 구아니딘’(PHMG) 등의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외국에서 이 물질들은 세정·살균제 용도로 물건을 씻거나 닦아내는 데 사용되고 있었기에, 호흡기로 흡입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당시 알려진 바가 없었다. 더군다나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품질경영 및 공산품 안전관리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 그 안전성에 대한 검토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3년 9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아무개군이 산소호흡기를 단 채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있다. 망가진 폐로 인해 아파하고 고생할 날들이 아득하다.

출처한겨레 김명진 기자

이미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150명이 넘었다. 그러나 이것은 공개적으로 드러난 최소한의 숫자일 뿐이다.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의 사용자는 8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학조사로 그 유해성이 밝혀지기 전 ‘원인 미상 폐질환’이라는 이름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수가 얼마였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에는 이르지 않았지만 망가진 폐로 인해 아파하고 고생했을 것이다.

2015년 2월 법원의 패소 판결 직후 피해자와 가족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한겨레 김태형 기자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 사건들이 조명되면서, 유족들은 이런 위험한 제품을 제조한 회사와 이를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정부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연이은 패소였다.

공산품 안전법에 의하면 그 당시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자에게 스스로 안전을 확인해 신고하도록 강제할 근거가 없었고, 그 밖에 살균제의 성분이나 유해성을 확인할 의무나 제도적 수단이 없었다.
(2015년 2월 재판부)

출처www.pixabay.com

정부기관은 당시 규제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고,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가습기 살균제의 결함을 알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죽음에는 누구도 책임이 없는 것인가?


우리는 화학물질이 어떤 독성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십 년 전 석면을, 벤젠을, 카드뮴을 위험하다는 생각 없이 사용했다. 이제는 석면이 폐암과 악성 중피종을, 벤젠이 혈액암을, 카드뮴이 이타이이타이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초 핵폭탄이 처음 개발되었을 때, 방사선 노출의 위험성을 모르던 상황에서 사막에서 진행되는 핵실험을 멀리서 지켜보는 관광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했으니까.

출처www.pixabay.com

우리가 석면과 방사선 노출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병들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로이 개발·사용되는 여러 물질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 충분한 사람이 죽게 될 때까지 그 위험을 용인하고 지낼 것인가. 

김승섭 고려대 교수·보건정책관리학부
기획· 편집 남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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