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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의 마지막 영웅, 첫 미국인 우주 비행사 존 글렌

라이언이 말하는 존 글렌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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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지막 진정한 국민 영웅

미국 유인 우주비행 프로젝트였던 프로젝트 머큐리에 참가했던 첫 미국인 우주 비행사인 존 글렌을 부르던 호칭이죠!

이분이 바로 존 글렌!

출처한겨레21 사진자료

아니 근데, 마지막이라뇨? 왜 마지막이죠?

<인디펜던트> 지는 이렇게 설명해요.

출처한겨레 사진자료
1962년 미국은 하나의 군사, 이념적 적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훨씬 더 복잡한 시대, 주적을 필요로 하는 영웅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다.

당시 존 글렌은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의 인기를 누렸어요. 그 때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이 극심하던 시기였거든요. 


1957년 소련이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1961년 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를 통해 유인 우주비행을 최초로 성공하면서 1962년 글렌은 우주 비행에 나서요. 프렌드십 7호에 탑승해 지구를 3바퀴 돌았죠!


고작 5시간 정도의 우주 비행었지만, 그는 미국 과학기술의 승리요, '할 수 있다'는 미국 정신의 상징이 되어있었죠!

그때는 존 글렌이야말로 진짜 미국대장 같은 거였죠!

출처코리안데일리 사진자료

글렌이 비행 중 보내온 말들은 오래도록 회자되었어요. 당최 과장이 없는 사람이라 팩트만 말했거든요.

무중력, 이상없음.
오, 경관이 대단함.
외쪽으로 아프리카 해안이 보인다.
미국의 해안선이 멋지다.

어휴... 노잼...


어쨌건, 돌아왔을 때의 그는 너무 거물이 되어있어서 다시 죽음의 위험을 안고 우주로 나갈 수 없게 되었어요. 결국 그는 1964년 '우주 셀럽' 노릇에 지쳐 사임하게 돼요. 그리고 케네디 대통령의 권유대로 상원의원으로 출마해 2번의 선거뒤 1974년 상원의원이 돼요.


그의 정치 슬로건은 '전쟁을 이해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죠. 그는 일관되고 무신경한 군대식 말투와 자유민주주의적 이슈에 대한 지지로 24년간 온건파 민주당원으로 일했어요.

그런 그가 1998년, 24년간의 상원의원 생활을 마치고 나사에 다시 우주비행의 기회를 달라는 탄원서를 내요. 그리고 나사는 이를 수용하구요!


결국 77세의 그는 '무중력이 나이에 든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해요. 결국 그는 미국의 첫 우주 비행사이자, 최고령 우주비행사가 되었죠.


그는 달 착륙에 성공한 버즈 올드린과 닐 암스트롱에게 질투를 느낀 적이 있다고 해요. 1998년, 77세의 나이로 우주 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단지 나이 들었다는 것이, 꿈과 열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까지 라이언이었습니다!

원문 기사 / 이로사 객원기자

제작 및 편집 / 신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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