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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농민이 곧 백남기

'전봉준 투쟁단' 트랙터 이끈 이효진 전농 부의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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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사진자료

2016년 초겨울 시민들이 켠 촛불은 ‘가렴주구·교언영색·호가호위·후안무치·무소불위’ 박근혜 정권을 향한 봉기이다. 이런 점에서 시민들의 촛불은 122년 전 동학 농민군이 치올린 죽창에 가닿는다. ‘전봉준 투쟁단’이 결성된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20여 년 전 수준으로 폭락한 쌀값, 그런데도 줄지 않는 정부의 쌀 수입, 지난 9월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가결되었지만 여전히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인 김재수, 1년 전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끝내 절명케 하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정권... 농민들은 외쳤다. “박근혜 정권은 오염된 농토. 싹 걷어내고 새 흙을 깔아야 합니다.”


을 갈아엎는 농기계가 바로 트랙터다. 11월15일 전남 해남에서(서군), 11월16일 경남 진주에 서(동군) 출발한 트랙터 행렬은 물경 2천여 대에 이르렀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이효신(52) 부의장은 해남에서 서울까지,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트랙터를 몰고 투쟁을 이끈 유일한 사람이다. 11월30일 전북 정읍시 덕천면 자택에서 이 부의장을 만났다. 


그는 말했다. 

“300만 농민이 곧 백남기라고 생각한다.”

전봉준 투쟁단을 결성한 계기는.
민중총궐기(11월12일) 이후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했다. 국민이 직접 끌어내리지 않고는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봤다. 농민들이 왜 정권 퇴진 투쟁을 하는 지, 정권이 바뀌면 농업을 어떻게 하자는 건지 국민에게 알려야 했다

출처장강신문 사진자료
전봉준과 트랙터.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 같다.
122년 전에는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섰다. 농사 짓는 기계가 농민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농기계를 가지고 하는 게 좋겠다고 봤다. 국민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남쪽 끝에서 동서로 나뉘어 서울로 갔다. ‘정권이 바뀌어야 쌀값도 오른다’고 판단했고 농민들이 모여 많은 토론을 했다.

출처한겨레21 사진자료
트랙터를 타고 포장도로로 열흘간 이동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하루 평균 50~60km 이동했다. 피곤해서 입술이 부르텄다. 10월 말~11월 초 옥수수를 수확하고 귀리를 심어야 했는데 올해는 아예 못했다.
트랙터 행렬을 맞이하는 시민들 반응은 어땠나.
농민들이 트랙터 가지고 정권 퇴진 운동을 한다고 할 때 박수를 많이 받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생각보다 국민들 반응이 좋았다. 손 흔들어주고 먹을 것도 갖다주시고…

자신이 일하는 단체의 기금을 떼서 전농에 후원하겠다는 분도 있었다. 광주에 산다는 20대 두 분은 4시간 거리를 차 타고 와서 담요와 김밥을 전해주시기도 했다.

서울 양재나들목 인근에서 노숙할 때는 근처 아파트 주민들이 이불을 건네고 곰탕을 끓여주었다. 열흘간 버틸 수 있던 힘이다. 평소 언론은 농민들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쉬움은 없었나.
11월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트랙터를 몰고 가지 못한 게 제일 아쉽다. 경찰차가 트랙터 행렬을 막았는데 명백한 불법이다. 우리보다 주변 시민들이 더 세게 항의하는 걸 보고 놀랐다.

출처한겨레21 사진자료

이효신 부의장은 건국대 농학과를 졸업하던 1991년 지금의 땅으로 왔다. 집도 땅도 없이 그는 농부가 되고자 농토로 왔다. 빈집 하나를 구해 신접살림을 차렸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로 상징되는 농산물 개방이 처음 이뤄졌고 농민들의 반발이 거센 시기였다.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나락을 경운기에 싣고 옮기려 하면 군청, 면사무소 직원들이 경운기 앞에 드러누워서 막았다.” 행정기관이나 경찰이 갖은 모함도 했다. ‘나쁜 놈이다, 쫓아내야 한다’ ‘대학 나와서 갈 데가 없으니 왔다’는 식이었다. 논과 집을 빌려준 사람들을 협박해 마을에서 이 부의장을 쫓아내려는 ‘공작’도 있었다.


고생 끝에 5년이 지나니 비로소 주민들이 ‘이제 농사지으려나보다’라며 받아주었다. 10년쯤 지나서는 온전히 자리잡았고 소처럼 일하며 농민 활동을 하는 게 그의 전부였다. 지금은 벼(120마지기)와 옥수수·귀리(15마지기) 농사를 짓고 한우도 60여 마리 키운다. 아들만 둘인데, 언젠가 농사일을 물려줘야 한다는 게 그의 또 다른 고민이다.

여전히 시민들은 평화적인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비폭력·평화적 집회가 우리 원칙이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목적은 썩은 나라를 갈아엎는 것이다. 비선 실세, 국정 농단 박근혜·최순실 일당과 새누리당 부역자들, 종합편성채널(종편) 등이 대상이다. 질서 있는 퇴진… 그것을 원하는 국민은 없다고 본다. 정치적 해법일 뿐이다. 정치적 이전투구 통해서 정치인들이 흩어지고, 국민들이 실망해서 촛불 내리기를 바라는 게 대통령 박근혜의 생각 아닌가. 전봉준 투쟁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1월 초 백남기 농민의 장례를 치렀다.
생존을 위해 저항하는 농민의 주장을 국가가 정당성이나 내용을 파악하고 들어주는 게 아니라 공권력으로 진압하면서 죽게 한 것이다. 생존권, 농업을 지키자고 하는데 돌아온 건 국가폭력이었다. 농민들이 분개하는 이유다. 백남기 농민이 곧 300만 농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라 생각하며 싸우고 있다.
올해 풍년인데 쌀값은 폭락했다.
먼저 수매제도에 문제가 있다. 정부 수매는 지금 쌀 전체 생산량의 7~8%밖에 안 된다. 40%가량을 농협이 수매한다. 정부가 농협에 떠넘기는 거다. 정부 수매량을 늘려야 한다. 가격제도도 문제다. 목표 가격을 정해놓고 시세의 85%를 농민에게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목표 가격이 5년 주기로 변경된다. 5년 동안 아무리 쌀값이 올라도 변하지 않는다. 현재 목표 가격은 18만8천원(80kg 기준)인데 산지 시세는 13만원에 불과하다. 나는 9만5천원에 팔았다. 농민이 받는 실제 가격과 정부에서 집계하는 전국 평균 가격의 차이가 크다. 쌀값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떨어뜨리는 제도다.
지난해 전국쌀생산자협회를 만든 이유일 것 같다.
쌀 생산자를 대표한다는 단체가 이미 있다. 그런데 정부가 하자는 대로 동의해주면서 농민들이 크게 실망 해왔다.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쌀값 대책 세우라는 성명서 한 장 내지 못하는 농협중앙회 또한 이름만 협동조합일 뿐이다. 1년 정도 전국을 다니면서 토론했다. 지난해 3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사단법인으로 전국쌀생산자협회가 출범했고 내가 회장을 맡았다. 제주도를 제외한 8개 도마다 본부를 두었고 시군 지부는 60~70개 된다.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촛불이 뜨겁다. 이효신 부의장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1987년 6월항쟁으로 국민 참정권을 보장하는 대통령 직선제가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수·수구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안 되고 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려면 외세에 자주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 분단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국익·안보를 우선한다면서 민주주의를 싹 무시해오지 않았나. 이런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온다. 정경유착, 정언유착 고리도 끊고 친일·독재 부역자들도 청산해야 한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대통령만 바꾸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게 국민의 요구 아닌가. 국민의 열망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민주노총과 전농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들이 의견을 모아야 한다.

1990년 도시근로자가구소득과 엇비슷하던 농가소득은 지속적으로 격차가 벌어져 근래에는 3분의 2 수준이다. 그사이 전체 농가의 4분의 1이 빈곤농가로 추락했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자료를 보면, 10아르(300평)당 논벼 수익률은 2000년 48.3%였다. 2014년수익률은 38.6%까지 곤두박질했다. 농민들이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농업 대책 등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이유다.


전봉준 투쟁단 ‘서군 대장’ 이효신의 트랙터는 지금 경기도 평택에 홀로 남아 있다. 조만간 다시 엔진 굉음을 내며 북상할 것이다. 트랙터는 ‘끌다’라는 뜻의 라틴어(trahere)에서 비롯했다. 트랙터의 육중한 바퀴, 그것은 역사를 이끄는 수레바퀴다. 그는 끝으로 강조했다. “나한테, 전봉준 투쟁단한테 주목하지 말고 한국농업에 주목해달라. 우리 농업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주목해달라.”


원문 기사 / 전진식 기자

편집 및 제작 / 신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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