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길라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조회수 2016. 11. 27. 14:20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왜 내 눈앞에 나타나
원래는 ‘웃기는’ 기사가 아니었다.

11월15일 JTBC <뉴스룸>이 단독 기사를 냈다.

하지만 분노를 부르는 무수한 분야의

국정 농단 기사와 달리

‘길라임 기사’는 국민을 웃겼다. 


수천 건의 댓글에 폭소가 넘실거렸다.


출처: SBS 누리집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이 병원에서 썼다는 가명 ‘길라임’은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이름이다. <시크릿가든>은 2010년 11월13일 방송을 시작해 2011년 1월16일 종영한 20부작 드라마로 여주인공은 하지원, 남주인공은 현빈이 연기했다. 최고 시청률이 35.2%에 달했으니 국민 3명 가운데 1명은 시청했다는 뜻이고, 그중에 박근혜 대통령도 있었다는 얘기다.


황당하고 어이없는 국정 농단의 지질한 실체가 까발려지는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애정하는 드라마가 드러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드라마 애청자, 드라마 덕후 ‘드덕’이라는 사실마저 알아버린 것이다.


보도 다음날부터 패러디가 쏟아졌다.

이날 정청래 전 의원은 △조·중·동-한겨레·경향 논조 통일 △95% 국민 대동단결 등 ‘박근혜 대통령의 살신성인 업적’에 ‘패러디 산업 개척’을 추가했다. 또 이날 JTBC <뉴스룸>의 시청률은 9%(닐슨코리아)로 전날 시청률 7.3%를 훌쩍 넘었다. 당일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시청률 1등 <황금어장-라디오스타>가 6.7%였다. 11월13일 <개그콘서트> 시청률은 10.9%였다. "뉴스가 예능보다 웃기다."는 말을 시청률이 증명했다.


출처: 한겨레

대다수 국정을 사유화한 사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국정 농단’의 시국에서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어 팩트체크를 해봤다.

2011년 12월 MBN과 인터뷰에서 공군 출신 조인성, 해병대 출신 현빈, 육군 출신 비 가운데 누가 좋으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이 “세 사람 다 좋아하면 안 되나. 글쎄, 뭐 다 좋지만 해병대에 가 있는 현빈씨(가 가장 좋다)라고 하겠다”고 밝힌 동영상이 마치 증거처럼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지난 4년 동안 멀게만 느껴진 대통령의 말씀과 행보, 그리고 1천 조각짜리 퍼즐만큼이나 맞추기 어려운 ‘사람 박근혜’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이뤄지는 공감의 국면인 것이다.


하지만 ‘드덕’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감은 전무하다. 비정상적인 ‘가명 진료’에 자신들이 좋아했던 배역 이름이 거론되는 것에 대한 불쾌감보다 국정 농단 국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드라마 애호와 공무 수행 사이에 우선순위가 전복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크다.


<시크릿가든>을 즐겨 봤다는 한 40대 주부는 “저녁 8시 이후에는 텔레비전을 주로 본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당황스러운 게, 그 시간은 전업주부도 업무시간이다. 전업주부도 밤 10시부터 드라마를 챙겨보려면 정말 바쁘게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본방을 못 보고 돈 내고 다시보기 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앱을 이용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본방 사수를 한다는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시크릿가든>의 여러 정황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말과 맞아떨어지는 것도 마뜩지 않은 것 같다. 드라마에서 길라임은 김주원과 영혼이 뒤바뀌는데 ‘혼’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조한 유행어다. 길라임의 직업이 스턴트우먼으로 주로 위험한 장면을 주연배우 대신 찍는 ‘대역’이라는 점에서는 ‘소름 끼친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박근혜와 길라임 ‘평행이론’ 해석까지
<시크릿가든>에는 이번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사에 비춰볼 때 그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다. 의로운 아버지의 죽음, 홀로 남겨진 꿋꿋한 딸, 대역 배우의 삶, 왕자님이 나타나고 그와 혼이 바뀌는 서사에 몰입하지 않았나 싶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의 말이다. 그는 "다만 시국이 이렇다보니, 거리두기가 이뤄지는 일반인들과 달리 정말 자신을 길라임으로 동일시해 아이덴티티의 혼란을 겪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이번 '근라임 사태'를 설명했다.

시크릿가든의 주인공 '길라임'에겐 죄가 없다.
한때 시청자들의 무한 사랑을 받았던 그 이름 석자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
(지못미)
할 뿐이다.

글 / 진명선 기자

편집 및 제작 / 천다민

*이미지를 누르시면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바로 이동합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