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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부역자인가 공모자인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그가 이 사태를 몰랐을 리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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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순실을 모른다."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순실(60) 국정 농단 사태에 호출됐다. 그 역시 최씨의 국정 농단 사태에 적극적으로 관여했거나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는 최씨를 알지도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그와 박근혜 대통령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다.

출처연합뉴스
김기춘 전 실장은
  • 정수장학회 장학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이며,
  • 박근혜 대통령을 따르는 원로 정치인 그룹 ‘7인회’의 멤버이자
  •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2013년 8월~2015년 2월 막강한 국정 통제력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정말 최순실 씨의 존재를 몰랐을까?

최씨의 국정 농단 사태를 인지했다면 바로잡았을까?


그는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답변했다.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

보고하면 허용이 안 될 테니 그랬을 것”

 

하지만 그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두 세대에 걸친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종종 권력을 위해서라면

헌법과 법률 위를 넘나든 전력이 있다.


① 박근혜 대통령-최태민·최순실 관계 몰랐을까

김 전 실장은 1964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35살에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1974~79)이 됐다. 


당시 중정은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을 수사했다. 횡령, 사기, 이권 개입 등 총 44건에 걸쳐 최소 3억1755만6천원어치 비위 사실을 적발했다. 중정은 “(최태민이) 구국선교를 빙자, 매사 박근혜 명의를 매명하여 이권 개입 등”을 했다고 파악했다.

최태민과 박근혜는 구국봉사단을 같이 이끌었다. 당시 중정 국장으로 근무했던 김 전 실장이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와의 관계를 잘 알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처조선일보

김 전 실장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는 그때 간첩 수사를 담당하는 5국장이었다. 국내 사람을 조사하는 곳은 6국이었다. 최태민을 조사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최태민을 조사한 적도 없고 만나거나 전화 통화한 일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9년 중정의 최태민 수사보고서를 받고 박근혜 당시 영애가 있는 자리에 최태민을 불러 추궁했다. 그 뒤 최태민 수사 자료는 대검에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사이 김 전 실장도 대공수사국장에서 청와대 법률비서관(1979년), 대검 특수부 1과장(1980년)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전 실장이 최태민 수사에 직접 관여하진 않았더라도 당시 중정, 청와대, 대검 요직에 있던 그가 소문수준에서 최태민 관련 정보를 접했다고 보긴 어렵다.


Q. 2006년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 시절 독일 순방 때 김 전 실장이 함께 갔고 거기 최순실이 함께 있었다는 보도가 있다.

전혀 기억이 없다. 거기서 나는 최순실을 만난 일도, 본 일도 없다.

출처청와대사진기자단

Q.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여름휴가에 최순실과 함께 갔었다는 의혹이 있는데.

나는 그해 7월16일 전립선비대증 수술을 받았고 8월3일까지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Q. 2013년 대통령 비서실장 취임 직전 최순실씨의 서울 신사동 건물에 사무실을 차렸다는 보도가 사실인가

나는 예전 국회의원 할 때부터 청와대에 들어가는 날까지 20년 가까이 서울 세종로 대우빌딩 사무실을 썼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을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쓴 거다. 처음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이미 형사고소를 했다.

② ‘왕실장’, 비선 국정 농단 몰랐을까

출처연합뉴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에서도 ‘김기춘’이라는 이름이 흘러나왔다. 최순실씨의 측근 차은택 전 CF 감독의 정부 문화·체육 사업 이권 개입에 편의를 봐줬다는 의심을 받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김 전 실장의 소개로 최씨를 처음 알게 됐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11월19일 “김 전 차관이 (2013년 9월) 차관 취임 초기 김 전 실장이 전화로 ‘만나보라’고 해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최씨가 있었고 이후 최씨를 여러 번 만났다고 검찰에 진술했다”고 전했다. 김 전 차관 부인이 최씨와 친분이 두터운 점을 숨기기 위해 김 전 실장을 연결고리로 내세웠을 가능성에 대한 보도도 잇따랐다(<동아일보> 11월22일치).

출처한겨레
김 전 실장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내가 최순실을 모르는데 어찌 김종 차관에게 소개하겠나. 그 사람 (정신적으로) 돈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하면 혹시 자기 죄가 가벼워질까 싶어 그러는지.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차은택 전 감독도 검찰에서 김 전 실장과의 관계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일보>는 11월22일 “차씨는 검찰 조사에서 ‘송성각씨가 콘텐츠진흥원장에 선임(2014년 12월)되기 전에 그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에게 소개했고, 두 사람을 청와대에서 만나도록 해줬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차씨의 측근인 송씨를 한국콘텐츠진흥원장으로 선임하는 데 김 전 실장이 개입했다는 것이다.


차씨는 최씨를 등에 업고 송씨를 비롯해 외삼촌 김상률(56) 전 대통령 교육문화수석, 은사인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의 인사 청탁을 한 의심을 사고 있다. 김 전 실장은 11월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송씨를 차씨에게 소개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그런 적이 없다. 청와대에서 내가 만났다면 출입기록이 다 남아 있을 것이다. 조사해보면 밝혀질 일”이라고 말했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김 전 실장이 국정에 비선들이 개입한 상황을 인지했을 만한 유력한 계기다. 김 전 실장 재임 당시인 2014년 1월6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조응천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3년 11월 김 전 실장으로부터 자신의 교체설이 보도되자 조사를 지시받고, 박관천 전 행정관에게 조사·문건 작성을 맡겼다고 밝혔다. 그 문건에는 ‘(최씨의 남편) 정윤회씨가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10명으로 구성된 ‘십상시’와 모여 청와대·정부 동향을 보고받고 정부·청와대 인사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시행하도록 지시했으며, 2013년 송년모임에선 김 전 실장을 이듬해 초·중순께 그만두게 할 수 있도록 교체설을 퍼뜨리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출처연합뉴스

<세계일보>가 11월13일 추가 공개한 문건 초안 격인 ‘시중여론’에는 “십상시들과 정윤회의 모임에서는 공공연하게 ‘이 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는 박근혜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옛 애인이 나은(‘낳은’의 오타로 추정) 딸을 어떻게 배척할 수 있겠느냐?’라는 극치의 말이 서로 간에 오가고 있다 함”이라는 내용까지 담겨 있다.


‘정윤회 문건’에 관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박지만 회장이 김 전 실장에게 연락해 정윤회씨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 게 사실인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③ ‘정윤회 문건’ 대처, 왜 미온적이었나

청와대는 비선의 국정 개입 실체를 파악하기보단 문건 유출자 색출·처벌에 혈안이 됐다. 청와대 비서실이 공식 보고서에서 비선의 국정 개입 정황을 보고한데다, 대통령 동생이 비선으로 지목된 인물로부터 미행당하고 있는지를 직접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 첫 보도(<세계일보> 2014년 11월28일)가 나온 날,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이른바 ‘지라시’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해 당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청와대 공식 문건을 스스로 ‘지라시’라고 비하하면서 그 구체적인 근거는 밝히지 않은 채 사태 수습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김 전 실장은 청와대에서 ‘정윤회 문건’을 작성하고 ‘문건 파동’을 수습하는 과정을 총지휘했다. 그가 왜 ‘비선 국정 개입’의 유력한 단서를 보고받고도 실체 파악에 미온적이었는지, 당시에도 이미 진상을 파악했지만 외부로 알리지 않았던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출처연합뉴스
김 전 실장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거기 보면 김기춘을 몰아낸다는 내용 있지 않은가. 내가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나가기 싫어 그런 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민정 쪽을 담당하는 사람이 이 사람(최순실)이 대통령을 팔고 다닌다든지 문제 있다고 말했으면 내가 (박 대통령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들이 모여 실장 쫓아낼 이야기나 한다고 하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나 정호성 제1부속실장 등도 최순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건 참 유감스런 일이다. 참담한 심정”이라고 덧붙였다. ‘정윤회 문건’ 내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최씨에 대해선 보고받지 못해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혼외자’ 의혹으로 2013년 9월 사퇴하기까지 청와대 비서실은 전방위적으로 나섰다.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총무비서관실, 고용복지비서관실, 교육비서관실은 ‘혼외자’로 지목된 채군과 채군의 어머니 개인정보 확보에 나선 바 있다. 채 전 총장이 이끈 검찰이 대선 여론 조작, 정치 개입 혐의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기소한 2013년 6월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다.

출처JTBC 화면 갈무리

옛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도 청와대 비서실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13년 11월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지역도당 주최 모임에서 이석기 당시 의원과 당 간부들의 발언을 문제 삼아 ‘내란을 음모했다’는 이유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검찰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 등을 기소한 지 한 달여 만의 일이다.


제도권 정당 해산을 정부가 추진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청와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중정 대공수사국장·서울지검 공안부장 출신 대통령 비서실장인 김 전 실장이 당시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청와대 결정을 주도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헌재는 2014년 12월 결국 통합진보당 해산과 현역 의원 5명(비례 2명·지역 3명)의 의원직 박탈을 결정했다.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과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에서 보인 청와대의 치밀함과 과단성에 견줘, 청와대의 ‘비선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려는 조처는 헐겁고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처는 김 전 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들이 국정 농단 사태를 묵인·방조·참여했다는 의혹을 일게 한다.

'TV조선'은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을 입수해, 11월11일 김 전 실장의 ‘(정윤회 문건 관련) 수사 축소 지시’ 의혹을 제기했다.


‘비망록’에 따르면,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관련 검찰 수사 과정에서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문건 유출자) 압수수색 다음날 ‘불만, 토로, 누설은 쓰레기 같은 짓’이라며 수사 방향을 유도하고, 수사가 한창인 12월13일엔 ‘조기 종결토록 지도’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문건 내용’의 진상 파악이 아닌 ‘문건 유출자’ 처벌과 사건 조기 수습을 김 전 실장이 주도한 정황이다.


④ ‘대통령의 7시간’ 몰랐을까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왜곡·공백 행적들 가운데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은 그 극단적 상징이 됐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박 대통령에게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고한 시각(오전 10시)부터 박 대통령이 서울정부종합청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서 외부에 모습을 처음 드러낸 시각(오후 5시15분)까지의 7시간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을 대면했다고 밝힌 청와대 참모는 아무도 없다. 청와대는 11월19일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관저에 머물렀다고 처음 밝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난 2년7개월 동안 청와대 참모들은 박 대통령의 당일 집무 장소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출처한겨레
김 전 실장도 2014년 7월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세월호 사고 확인 뒤 대통령은 집무실과 관저 중 어디에 있었느냐’는 윤후덕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문에 “그것은 내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김 전 실장은 참사 당일 줄곧 청와대 비서실 집무실에 머물렀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2014년 7월10일 국회 ‘세월호 침몰 진상 규명 국정조사 특위’에 출석해 “오전 9시20분께까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를 했고 (비서동) 집무실에서 수시로 해당 수석의 대면·유선·서면 보고를 받아 (세월호 침몰·구조) 상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출처연합뉴스

하지만 청와대가 밝힌 참사 당일 보고 목록을 보면 김 전 실장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내용은 없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의 중대본 방문(오후 5시15분)을 건의하고 수행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당일 급히 대면보고를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한겨레21> 질문에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면보고 했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겠는가 싶은데 대통령이 관저에 있어 차 타고 한참 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관저까지 차량으로 2분밖에 걸리지 않느냐’는 추가 질문엔 “그건 안타깝긴 안타깝다. 그렇지만 우리로선 보고 철저히 하느라 계속 했으니까”라고만 했다.


당일 김 전 실장이 박 대통령에게 대면보고를 하지 못한 이유는 단순한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정 때문이었던 게 아니냐고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기다림
그동안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다른 사정’을 은폐하려는 의도라는 의혹을 더욱 키워왔다.

'TV조선'은 11월22일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을 공개해 “김 전 실장이 2014년 7월18일 수석비서관들에게 ‘(대통령의) 4·16 동선, 위치’ ‘경호상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김 전 실장이 참사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외부로 알리지 못하도록 주도한 정황이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 이후 법정에 출두하는 김기춘.

출처한겨레
⑤ 김기춘은 억울하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들에 대해 <한겨레21>과 인터뷰에서 “나를 거짓말쟁이, 조롱거리로 삼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최순실을 모른다”는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관련 의혹이 끊이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이다. 그에게서 ‘국정 농단’의 그림자가 걷히지 않는 것은 오랫동안 박근혜 대통령과 긴밀히 맺어온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출처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김 전 실장은 평검사 시절, ‘대통령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는 유신헌법(1972년 12월) 제정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은 1973년 4월2일치에서 “정해창(고시 10회)·김기춘(고시 12회)씨 등 부장검사급인 법무부 과장 승진은 유신헌법 등 비상국무회의의 법률 개정 작업의 실무를 맡았던 공로에 대한 특진 케이스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김 전 실장은 1974~79년 중정 대공수사국장으로 재직할 때, ‘학원 침투 북괴단 간첩단 사건’(1975년) 수사 등을 이끌었다. 2000년대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와 법원에서 중정 조사 과정에서의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이유로 잇따라 조작으로 판명된 사건이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도청사건' 당시 초원복집에서 진행된 현장검증 사진.

출처한겨레

또 김 전 실장은 법무부 장관 퇴임 직후인 1992년 12월 부산 초원복집에서 부산 지역 전·현직 기관장들과 만나 김영삼 대통령 후보 당선을 위해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한 혐의(선거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가 이 자리에서 경남·부산 지역 감정을 조장하고 관권 개입 선거를 함께 모의한 녹취록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공식 모임이 아닌 사적 모임’이었다고 주장한 그는, 재판에서 옛 대통령선거법 제36조 제1항(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의 선거운동 금지)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고 헌법재판소도 결국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하면서, 그에 대한 공소는 취소됐다.

출처한국일보

김 전 실장은 한나라당 의원이던 2004년 3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소추위원이었다. 그는 당시 “대통령의 임기가 헌법에 규정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총선과 연계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겁나게 한 것으로 법 위반 정도가 중하다”며 탄핵 사유를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두 달 뒤, “대통령의 구체적인 법 위반 행위를 헌법질서에 역행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사로 인정할 수 없고,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평가할 수 없다”며 기각 결정했다.


출처한겨레

‘미스터 법질서’라는 별명이 있는 김 전 실장은 유신정권, 문민정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주요 고비마다 헌법과 법률을 지키기보단 헌법과 법률 위에서 권력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권력의 핵심을 지켰던 박근혜 정부에선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났다.


그가 처음 청와대에 비서관으로 입성해 보좌했던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마지막으로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으로서 보좌한 박근혜 대통령마저 임기를 마치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몰랐다”고만 한다.

글 / 김선식 기자

      성연철 기자

편집 및 제작 / 천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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