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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가 꿈인 이 사람

조회수 2017. 10. 19. 13: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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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고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당시 물대포 진압 '현장총괄지휘관'이던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17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검찰은 백남기 농민을 사망하게 한 혐의로 구 전 청장과 신윤균 전 제4기동단장, 살수요원 한 모, 최 모 경장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습니다. 

앞서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은 민중 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두개골에 큰 부상을 입었고


이듬해인 2016년 9월 25일, 사망했습니다.


진압 당시 영상에서 백남기 농민을 싣고 떠나는 응급차에도 물대포를 쏘는 걸 보며 많은 시민들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출처: 백남기 투쟁본부

백남기 농민은 중앙대에 다니던 젊은 시절에는 군사 독재에 맞섰었고 이후에는 농촌으로 내려와 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맑은 원칙주의자(동료 표현)'였습니다.

출처: 한국일보
사과가 마땅했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는 고압적인 태도로 나왔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황교안 당시 총리는 '안보'와 '법질서'를 이야기하며 사과를 거부했고,

출처: 연합뉴스
백남기농민 청문회에서 강신명 경찰청장(오른쪽)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서 적반하장의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는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고


사고 원인을 이야기하며 장비 얘기가 나오자 "그럼 (장비를 사게) 예산을 늘려달라"고 했습니다.

출처: 뉴스1
청문회에서 대답하는 강신명 경찰청장을 바라보는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가운데)

또 뒤에 유족이 앉아있는 걸 알면서 보란듯이 참고인으로 출석한 의경들에게 "어디 아픈 덴 없냐"며 살갑게 격려했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고 사과하라는 당시 야당의 요구를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출처: 민중의소리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

백남기 농민은 사망 뒤에도 편하지 못했습니다.


주치의였던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는 사인이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기재했고 (후에 백 교수는 서울대병원 교수 보직 해임)


경찰이 유가족의 반대에도 부검영장 집행을 시도해 시민들이 순번을 지켜 백남기 농민의 시신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출처: 허핑턴포스트
사망한 지 41일 만에 민주사회장으로 거행된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

정권이 바뀐 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는 있습니다.


서울대는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고치고 이철성 경찰청장은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이철성 경찰청장

현장 살수차를 조종했던 한모, 최모 경장도 지난달 법원에 "유족에게 사과하고 유족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청구인낙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수개월 전부터 유족에게 사과하고 싶었다하는데요.


하지만 경찰 수뇌부의 반대에 가로막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웃으며 퇴임하는 강신명 전 경찰청장

또 검찰은 백남기 농민 사망 당시 수뇌부였던 강신명 경찰청장에 대해선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총책임자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한 마디 사과도 않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셈입니다.


부하들은 모두 책임을 지게 됐는데 최고 책임자는 미꾸라지처럼 쏙 빠져나가게 됐습니다.

출처: 고발뉴스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고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족들은 큰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은 아무렇지 않게 공식석상에서 "미국에선 총으로 쏴죽여도 정당한 공무"라고 했고

출처: 동아일보
유족을 공격했었던 극우 만화가 윤서인 씨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에선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가 아니라 현장에 있던 빨간 우비를 입은 사람이 죽인 것"이란 주장을 했습니다. 물론 거짓입니다. 


극우 만화가 윤서인 씨도 피해자인 유족을 비꼬고 공격했었습니다.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애초에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이었습니다.

경찰은 정권이 바뀐 뒤 '인권 경찰'이 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책임지고 우직하게 개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길의 첫걸음입니다.

제작/김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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