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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 불려간 광주항쟁 시민군

조회수 2017. 5. 16. 18: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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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청을 지켰던 그 시민군은 왜 아직도 경찰의 감시를 받는가

강용주.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그는 총을 든 고3 시민군이었습니다. 


무너져가는 도청을 보면서 그는 카빈총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게 평생의 멍에가 됐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출처: 한겨레

그 때 광주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출처: 한겨레
강용주를 만든 '그 일'
박정희 시해 사건의 전모를 발표하고 있는 전두환

전두환은 독재자 박정희가 없어진 자리에 필 수 있었던 민주주의의 꽃을 짓밟고 정권을 잡습니다.


12.12 사태입니다. 


군부 세력이 들어서면 한국 사회는 또다시 민주주의와 멀어질 것이란 생각에 광주에서 전남대, 조선대 학생들이 연일 시위를 열었습니다.

출처: 5.18기념재단, 허핑턴포스트
대형태극기를 앞세우고 민족민주화대성회 참석을 위해 교문을 벗어나 금남로로 향하고 있는 전남대학교 교수들, 이들 뒤를 학생들이 따르며 민주주의를 위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총, 칼, 군사무기가 동원됐습니다.


이에 학생 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합류해 저항했습니다.

출처: 5.18기념재단

진압은 살상에 가까웠습니다. 전시에나 동원될 법한 일을 자행했습니다. 최근 국과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군부는 시민들에게 기관총으로 집중사격까지 했습니다.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전두환 정권은 모든 통신 수단을 끊고 통행을 막아 광주를 고립시켰습니다.


그러고서 바깥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광주는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출처: 나경택 전 연합뉴스 사진기자

참상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반 성인은 물론이고 어린아이, 학생, 할아버지, 할머니 등 상대를 가리지 않은 폭력이었습니다.


당시 통수권자였던 전두환은 최근 펴낸 회고록에서 오히려 자신이 5.18의 희생자라고 주장했죠.


출처: 한겨레
광주 이후에도…

이런 지옥을 경험한 강용주는 대학에 가서도 전두환 정권과의 악연을 끊을 수 없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멀쩡히 의대에 다니던 그를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엮어 35일 간 고문했습니다.


개처럼 포박돼 무릎을 꿇고 밥을 먹을 때 그가 지키려고 한 것은 사상이나 신념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경향신문

강용주는 옥중에서 전향제도에 저항해 도합 300일을 단식 투쟁했고 결국 사상 전향제도를 무너뜨렸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그를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로 선정했습니다.


출소해 대학을 마친 그는 2016년까지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을 지냈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그러나 강용주는 보안관찰법의 대상자로 아직도 이사를 갈 때면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하고 새벽에 불쑥 경찰이 건 전화를 받아야 합니다. 국가보안법 등으로 실형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보안관찰법은 이미 실형을 산 사람에게 부과되는 또하나의 형벌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에 강용주는 또 한번 저항하기로 했습니다. 석달에 한 번씩 해야하는 자기활동신고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는 곧 세번째 재판을 받습니다.

출처: 독일 <슈피겔>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

끊임없이 기억해도 모자랍니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요?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하고 희화화하는 언어들이 활개를 치고 있진 않나요?


보상받지 못한 민주화운동의 피해자가 아직도 국가 권력에 고통받고 있지 않나요?


얼마 전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가 비유했듯이, 드라마 <시그널>에서처럼 1980년 광주에서 스러져갔던 시민군들이 현세대에게 연락을 한다면, 우리는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출처: 뉴스1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강용주
출처: 중앙일보
2015년 대구공고 동문체육대회에 참석한 전두환과 부인 이순자씨

참고
'죽을 때까지 강용주', 이명수, 한겨레, 2017.4.17.
'강용주, "인간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지키고 싶었다"', 이지선 기자, 경향신문, 2008.8.21.



제작/김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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