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판사의 친정·시댁까지.. 섬뜩한 사찰의 추억

조회수 2016. 12. 21. 15:00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국정원의 양승태 대법원장 사찰 의혹 문건 공개 파문
법조계 "삼권분립 규정한 헌법 근간 흔든 사태"

‘사법부 사찰의 추억’이 부활하고 있다. 1981년 이영섭 당시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사법부’를 한자로 적으면서 ‘사법부(部)’라고 썼다. 


박정희 정권 때 대법원장에 취임해 전두환 초기 정권에서 퇴임한 그는 사법부가 삼권(입법·사법·행정)분립의 한 축인 ‘부’(府)가 아니라 정부의 한 부처에 불과했다는 뜻으로 ‘부’(部)라 적고, 자조했다.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

그 시절,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행정권력은 무소불위 국가 정보기관을 앞세워 사법부 법관들의 뒤를 캤다.


1984년 9월, 강금실 당시 서울남부지원 판사(참여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는 시국 관련 시위에 나선 대학생에게 ‘즉결심판 형 면제’를 선고했다. 

출처: 연합뉴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강 판사를 내사했다. 국가정보원(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입수한 당시 안기부 보고서를 보면, 안기부는 강 판사의 아버지 재산을 비롯해 친정·시댁 가족관계, 재학 시절 시위 전력, 남편의 ‘무림 사건 복역 사실’ 등을 현미경으로 보듯 사찰했다.

출처: 연합뉴스

당시 판사들을 사찰하고, 은밀히 얻은 정보로 사법부 제압에 앞장선 게 국정원의 전신 안기부였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과정에서 국정원이 사법부를 사찰한 정황이 드러났다. 더 놀라운 것은 이번엔 상대가 판사가 아니라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라는 점이다.

출처: 한겨레

이 사실은 지난 12월15일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국정원의 양승태 대법원장 사찰 의혹 문건을 공개하면서 드러났다.

(국정원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일상생활을 사찰한 문건이 있다.
출처: 한겨레 그림판

또 다른 문건에는 당시 춘천지법원장인 최성준 부장판사(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들 문서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일괄해서 홍경식 당시 민정수석과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안다.

이들 문서 상단에 파기 일자와 함께 ‘대외비’라고 적혔고, 중앙에는 ‘차’라는 문서 보안용 표시(워터마크)가 선명하다.

출처: 한겨레

이에 대해 이용주 특위위원(국민의당)은 “김영한 전 민정수석 유품 가운데 국정원이 청와대에 보고한 문건에도 ‘차’라고 찍혀 나오는 워터마크가 있다. 아마도 (사법부 사찰 의혹 문건도) 국정원이 실제 작성 주체인 것이 맞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가 국정원을 동원해 껄끄러운 사법부 인물들을 사찰하거나 이들을 제압한 방안을 마련한 정황이 최근 김영한 전 수석 업무일지에서 드러난 바 있다.

출처: 연합뉴스

업무일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등장한다.


“법원이 지나치게 강대·공룡화, 

견제 수단 생길 때마다 길을 들이도록”


“법무부 짠 대로 진행되는 인상”


지시를 내린 사람이 대통령 박근혜일 수도 있고,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나 김 전 민정수석 본인일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을 동원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김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 “정보 수집, 경찰과 국정원에 팀을 구성하도록”이란 메모가 있다.


지난 12월9일 국회에서 통과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는 대통령 박근혜가 헌법 13개 조항(중복 포함)을 위배했다고 지적됐는데, 사법권이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제101조 위배 혐의를 추가해야 할 판이다.

출처: 연합뉴스

당사자 격인 대법원도 “양승태 대법원장이 ‘놀랄 일이고 사실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는 반응을 보였다. 법관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법조계 내부에서는 법원이 정부나 국가 정보기관과의 유착 의혹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출처: 연합뉴스

대법원이 지난해 판사 임용 예정자들의 비밀면접을 국정원에 의뢰했고,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예비 법관들에게 ‘세월호 관련 견해’를 물어 사상검증을 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이 국정원에 예비 법관들의 신원조사를 의뢰하도록 한 비밀보호규칙(제66조 1항) 때문이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글 / 홍석재 기자

제작 및 편집 / 나경렬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