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홀스가 나왔는데 메모를 꺼내본다, 뭐지? 이 루키는?

조회수 2021. 4. 28. 0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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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영어공부도 시켜주는 투수

글로벌 시대다. 혹시라도 꿀리면 안된다. 영어 공부까지 두루두루 시켜준다. 세상에 이런 스타가 없다. 배워서 남주나. 1교시는 언어 영역이다.

# 택시 스쿼드 (taxi squad)

본래 풋볼 용어다. 1940년대 NFL에서 생겼다.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구단이 애매한 후보 몇명을 데리고 있었다. 월급 줄 명분이 필요했다. 구단주 소유의 택시 회사로 발령냈다. 코로나 시대의 MLB가 그걸 따라한다. Yang도 그 중 하나다. 보도에 따르면 주급 외에 하루 108.50달러(약 12만원)가 지급된다.

# 세컨 탠덤 (second tandem)

2인용 자전거의 뒷자리라는 뜻이다. 패러 글라이딩 때도 쓴다. 숙련자 뒤에 매달리는 것도 그렇게 부른다. 야구에서는 보조 선발 쯤으로 이해된다. 오프너 뒤에서 긴 이닝을 해결해주는 역할이다. 한국식 표현이 훨씬 쉽다. 마트 용어다. 1+1.

어쨌든. KBO 최고의 스타가 드디어 MLB 데뷔전을 치렀다. 택시 스쿼드를 통과해, 세컨 탠덤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잘 알면 진작 좀 쓰지

"홈 경기여서 마이너리그로 내려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전에 대기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후 2시 쯤 구단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축하한다'며 야구장으로 오라고 하더라." (양현종)

개막 4주가 돼 간다. 짧지 않은 기다림이다. 그걸 이겨낸 보람이 있다. 성공적인 첫 등판이다.

선발(조던 라일스)이 망친 경기다. 4-7로 뒤지던 상황서 호출됐다. 2사 2, 3루의 위기를 막았다. 그걸 7회까지 끌고 갔다. 4.1이닝 5피안타 2실점. 홈런(호세 이글레시아스)도 맞았지만 괜찮다. '호투'라는 표현이 충분하다.

크리스 우드워드 감독도 칭찬한다. "상대가 우타 위주의 라인업을 쓰는 팀이다. 그것도 중심타선부터 막아야했다. 데뷔시키기에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잘 해냈다. 캠프 때 봤던 그대로다. 모든 공을 잘 활용하며 매우 효과적으로 투구했다."

알면 진작 좀 쓰지. 아무튼 침이 마를 지경이다. "처음 본 투수라 타자들이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도 Yang이 계획대로 모든 공을 던졌다. 홈런 허용한 건 조금 더 낮았어야했다. 그 외에는 강한 타구가 별로 없었다. 정말 좋았다." (우드워드 감독)

데뷔전에 만난 인상적 장면

비록 폼나는 선발 등판은 아니다. 말이 그럴듯해 세컨 탠덤이다. 실제는 패전 처리 또는 추격조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어떠랴. 평생의 꿈이다. 그게 현실이 된 날이다.

"애리조나(스프링캠프) 때부터 기분 좋은 상상을 많이 했는데, 현실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 여러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0.2이닝 2실점)은 나에게 없는 날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양현종)

그만큼 괴로운 시간을 보낸 뒤였다. 데뷔전은 떨림과 흥분이 당연하다. 게다가 상대가 상대다. 화려한 라인업의 팀이다. 전국구 스타들이 즐비하다. '스치면 갈 것 같은' 파워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 거기선 루키지만, 우리에게는 다르다. 리그를 지배하던 톱 클래스다. '대투수'라는 칭호도 어색할 게 없다. 상황 따위에 압도되지 않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리라.

[…구라다]는 그런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무척 인상적인 장면과 만났다.

푸홀스 등장에 무덤덤, 뒷주머니 뒤적뒤적

두번째 이닝, 그러니까 4회 초다. 첫 타자 재러드 월시는 라인드라이브 타구였다. 본인에게 향한 걸 반사적으로 캐치했다. 다음은 저스틴 업튼이다. 역시 손쉽게 처리했다(유격수 땅볼).

순조롭지만, 긴장감은 한 가득이다. 언제, 어디서, 뭐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타선이다. 오타니, 트라웃, 렌던…. 중량감이나, 폭발력이 엄청난 파워들이다.

2사 후. 다음 타자 소개 멘트가 장내에 울린다. "앨버트 푸홀스."

사실 한 물 간 지는 꽤 됐다. 2017년부터는 시즌 홈런이 겨우(?) 20개 안팎이다. 지금은 타순도 7번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푸홀스는 푸홀스다. 올스타 10회, MVP 3회. 공격 관련 개인타이틀도 수두룩하다. 통산 홈런이 667개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런 타자를 맞는 루키를 보시라. 타석쪽은 눈길도 주지않는다. 뒷주머니를 뒤적뒤적. 뭔가 적힌 종이를 슬쩍 꺼낸다. 그리고는 한참을 들여다본다. 타자별 공략법이 적힌 메모였으리라.

다시 주섬주섬. 뒷주머니에 메모를 돌려준다. 이윽고 무표정하게 투구를 시작한다. 마치 아무렇 지 않은듯. 체인지업 2개를 거푸 던져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자칫 홈런이 될 뻔한 깊은 타구였다.

푸홀스? 누군데? 그런 것까지 알아야되니?

얼핏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강윤성 감독의 2017년작 [범죄도시]다. 초반 장첸(윤계상 분)이 독사(허성태 분)를 치는 장면이다.

장첸 : 그쪽이 안사장이요?

독사 : 너 누기야?

장첸 : 누구긴 누기야. 빚쟁이지.

독사 : 근데 니 내 누군지 아니?

장첸 : 돈 받으러 왔는데, 뭐 그것까지 알아야되니?

어쩌면 그럴 일이다. 먼 훗날. 과거의 추억거리다. "내가 말이야. 예전에 푸홀스랑도 붙어봤지. 체인지업 주니까, 중심이 빠지더라구. 그래도 꽤 멀리는 가더라. 센터가 간신히 잡았어." 그렇게 평생의 기억에 남을 승부다.

그런데 33살짜리 루키는 무덤덤하다. 푸홀스? 누군데? 하는 느낌이다. 무슨 듣보잡 취급이다. 잘 치는 타자야? 어디로 던지면 돼? 대놓고 노트를 꺼내들며, 여유를 부린다. 일말의 머뭇거림, 긴장, 초조 따위는 찾을 수 없다.

2017년 한국시리즈 때가 생각난다. 두산과 2차전이다. 1-0 완봉승에 아웃 1개가 남았다. 마지막 타자는 양의지다. 풀카운트 실랑이가 벌어졌다. 포수 김민식은 계속 바깥쪽으로 걸터앉는다. 혹시라도 장타가 걱정돼서다.

그 때였다. 투수가 소리친다. "빠져앉지마." 결국 11구째, 몸쪽 직구로 끝냈다. 삼진.

그 투수는 4년 뒤 루키가 됐다. 그리고 데뷔전을 치렀다. 절대 쫄지않는, 그 시크함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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