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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팔도 살린다, 투수들의 화타(華陀) 닐 엘라트라체

조회수 2021. 3. 12. 07: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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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후 2년…100마일을 던진 오타니

지난 주말이다. 애리조나가 시끌시끌하다. 오타니 쇼헤이가 마운드에 서는 날이다. 투수로는 거의 두 시즌을 쉬었다. 지난 해 2경기에 1.2이닝(ERA 37.80) 뿐이다. 본격적인 이도류의 재도전을 알리는 셈이다.

상대는 오클랜드 A's다. 1.2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했다. 볼넷도 2개를 줬다. 좋은 평점은 힘든 성적이다. 하지만 특이한 게 있다. 아웃 5개를 모두 삼진으로 잡았다. 특유의 파워 피칭이 살아났다. 구속이 눈에 띈다. 최고 100마일(161㎞)을 찍었다. 3월인데, 벌써 전성기 모드다.

일본을 평정하고 미국에 상륙했다. 그의 시도는 이목을 집중시켰다. 투타 겸업으로 연일 화제의 대상이 됐다. 타자로 22홈런(타율 0.285), 투수로 4승(2패)을 따냈다. 2018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다. 시즌을 마치고 수술대에 누웠다. 팔꿈치에 문제가 생겼다. 어디서, 누가 수술할까. 초미의 관심사였다. 장소는 시더스 사이나이 메디컬센터다. LA 일대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집도의는 닐 엘라트라체 박사다. 일본 매체 풀카운트는 이렇게 소개했다. '엘라트라체 박사는 특급 명의다. LA 다저스와 LA 램스(풋볼)의 팀 닥터를 지냈으며, LA 에인절스와 LA 클리퍼스 그리고 애너하임 덕스(하키)의 정형외과 고문을 겸한다. 미국의 베스트 닥터로 선정된 적도 있다.'

출처: 게티이미지

조브 박사의 후계자, 슈퍼 서전

사실 그걸로는 부족하다. 엘라트라체 박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스포츠 의학 방면에서는 일인자다. 특히 팔꿈치, 어깨, 무릎 같은 관절 쪽으로는 정평이 났다. 죽어가는 팔도 살린다는 명의다. 삼국지의 화타(華陀)가 연상되는 의술을 펼친다. 미국식 칭호는 슈퍼 서전(Super Surgeon)이다.

노트르담 대학 출신이다. 학위는 피츠버그 대학에서 받았다. 이후 유명한 켈런-조브 클리닉의 일원이 된다. 여기서 '조브'는 바로 그 프랭크 조브 박사(2014년 타계)다. 토미존 서저리, 즉 팔꿈치 인대 접합술의 창시자다. 그러니까 그는 조브 박사의 후계자인 셈이다.

그에게 몸을 맡긴 투수는 헤아릴 수 없다. 조니 쿠에토, 잭 그레인키, 클레이튼 커쇼, 크리스 세일 같은 특급들이 수두룩하다. 지난 해 홈런 세리머니(NLCS) 도중 어깨를 상한 코디 벨린저가 찾아간 곳도 여기다. 한국 투수들도 꽤 된다. 정민태, 배영수, 봉중근, 한기주 등도 고객이었다.

비단 야구 뿐만이 아니다. 종목을 따지지 않는다. NBA(농구), NFL(풋볼), NHL(하키) 선수들도 많다. 코비 브라이언트, 러셀 웨스트브룩, 톰 브레디, 타이거 우즈의 무릎과 어깨도 살려냈다.

심지어 필리핀의 국민 복서 매니 파퀴아오(어깨)도 그의 신세를 졌다. 실베스타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같은 할리우드의 액션 스타의 주치의다.

출처: 게티이미지
NFL 최고의 쿼터백 톰 브래디도 그의 환자였다.

성공 가능성 7%의 어깨 수술

지난 2018년 10월이다. 다저 스타디움에서 NLDS 1차전이 열렸다. 상대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다. 백중세 예상은 깨졌다. 홈 팀 선발이 너무나 완벽했다. 7회까지 안타 4개만 맞았다. 볼넷도 없이 8K를 뽑아냈다. 무실점. 6-0의 일방적인 스코어였다.

엘라트라체 박사는 이 경기를 직관했다. 관중석 한 켠에서 조용히, 그러나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마운드를 바라보는 눈길이 특별했다. 이날의 승리 투수가 바로 3년전 자신의 환자였다. 덩치 큰 99번. Ryu다.

그는 골치 아픈 케이스였다. 토미존 서저리와는 또 다르다. 어깨를 여는 건 아직도 거부감이 크다. 때문에 당사자도 꺼렸다. 이전부터 수술을 권했다. 하지만 마다했다. 약물과 운동 처방으로 버텼다. 그러다가 결국 한계에 다다랐다. 외과적 처치는 어쩔 수 없게 됐다. 2015년 5월로 결단이 내려졌다.

어깨 와순 관절경 수술이라는 요법이다. 어렵고, 생소한 이름이다. 괜히 걱정도 커졌다. 위험 부담도 상당했다. 완치된다는 보장은 없다. 성공 사례가 드물었다. 구위 회복 가능성이 7%라는 보도도 나왔다.

출처: 게티이미지

데드 암…커트 실링의 권면

수술이 결정되기 전이다. 다저스는 그의 상태를 함구했다. 그러다보니 뒷말들이 많았다. 와중에 현지 매체가 의문을 제기했다. '데드 암(dead arm)이 의심된다'는 보도였다.

데드 암. 끔찍한 어감은 검색어 랭킹을 점령했다. 말 그대로 하면 죽은, 혹은 죽어가는 팔이라는 말이다. 투수의 생명이 다했다는 뜻이다.

삼국지 연의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관우가 오른쪽 어깨에 독화살을 맞았다. 천하의 명의 화타가 이를 치료했다. 먼저 예리한 칼로 환부를 절개한다. 다음 독이 퍼진 뼈를 사각사각 소리가 나도록 깎아낸다. 팔을 맡긴 관우는 숨소리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내내 바둑에 열중하며 담소를 나눴다.' (정사와는 다른 부분이 많다고 논란이 되기도 했다.)

출처: 게티이미지

어깨 수술에서 재기한 투수가 또 한명 있다. 우승 반지를 3개나 가진 커트 실링이다.

그는 관절와순 파열을 진단받았다. 1995년, 나이 29세 때였다. 수술 후 1년만에 돌아왔다. 그 시즌에 무려 8경기를 완투했다(9승 10패). 이후 15년간 2400이닝을 더 던졌다. 애리조나, 보스턴을 돌며 우승 청부사로 활약했다.

그가 남긴 얘기다. "어깨를 짼다는 얘기에 엄청나게 겁먹었다. 그런데 수술 뒤에 공이 더 빨라졌다. 정말 마법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냥 되는 건 없다. 의사를 믿어라. 그리고 자신을 믿어라. 75%는 본인의 몫이다. (다칠 때보다) 훨씬 길고 고통스러운 게 재활이다. 그 과정을 이겨낸다면 반드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화타의 설화는 결국 관우 덕에 전해졌다. 마찬가지다. 명의는 결코 의사 혼자 될 수 없다. 그만큼 좋은 환자를 만나야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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