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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해 고초를 겪은 카산드라 이야기

조회수 2020. 12. 4. 15: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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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헤어전문매거진 그라피
한 장으로 배우는 미술사

그림으로 본 그리스 신화, 예언하는 여인들 시빌레와 카산드라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했다가 대가를 톡톡히 치른 여인, 이번에는 아무도 듣지 않는 예언을 하다가 트로이 전쟁 때 잔혹하게 살해된 카산드라입니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 사이에서 난 공주로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아폴론이 한눈에 반하고 말았죠. 카산드라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에게 아폴론이 가진 예언의 능력을 좀 나눠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카산드라는 예지력을 얻은 후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러자 아폴론은 이별의 키스를 하면서 카산드라의 혀에 담겨 있던 설득의 힘을 빼앗아버립니다.

카산드라가 왜 그리 잔인한 삶을 살았느냐 하면, 그녀는 자신의 조국 트로이가 멸망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고 자신의 비참한 최후도 예견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비록 전쟁 중이기는 하지만 트로이는 여전히 강대국이었고 프리아모스 왕의 장남인 총사령관 헥토르와 그의 사촌인 아이네이아스가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하면서 기세를 올리고 있었던 때였거든요. 게다가 올림포스의 신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리스나 트로이 중 한쪽 편을 들었는데, 트로이 편에 선 신들의 숫자가 더 많았기도 했고요. 그 상황에서 카산드라의 불길한 예언을 귀담아 들을 사람은 없었어요. 아폴론의 저주로 인해 설득력이 빠져버린 말이었기 때문이겠지만, 만약 들었다 하더라도 너무 불길했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래서인지 카산드라를 그린 그림들을 보면 정신착란 증세를 가진 여인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요. 공포와 광기에 사로잡힌 눈빛, 쉴 새 없이 떠드는 입.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는 그냥 미친 거죠. 카산드라 입장에서는 곧 다가올 미래가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한데 아무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으니 돌아버릴 지경이고, 그렇다고 침묵하자니 혹시나 자신의 예언을 듣고 누군가는 미래를 대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고문 때문에 가만히 있지도 못한 건 아니었을까요.

<그림 1> 샌디스(Anthony Frederick Sandys, 1829-1904), 카산드라, 1864년경.

그림1 에서 카산드라는 목에 월계수 가지를 두르고 있네요. 월계수는 아폴론을 상징하는 나무인데 아폴론의 신탁을 전하는 무녀들이 월계수 가지를 들고 예언했다고 해요. 대놓고 나는 아폴론의 여인이요 하는 듯 월계수 가지를 목에 걸고 있지만, 신의 사랑을 받은 여인이라는 저 표식은 과연 훈장이었을까요 올가미였을까요. 

카산드라가 예언했으나 아무도 듣지 않다가 실현된 대표적인 경우가 트로이 목마 사건이에요.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에 진격했다가 전쟁이 너무 길어지자 목마를 만들어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낸 후 목마만 남기고 퇴각하죠. 물론 이 목마 안에는 잘 훈련된 수십 명의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었고요. 트로이 병사들은 이 근사한 목마를 승리의 기념으로 성 안에 들이려 합니다. 

카산드라는 이 목마가 트로이 성 안에 들어올 경우 트로이가 멸망한다며 결사반대했지만, 이미 설득력을 빼앗긴 그녀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오히려 승리에 취해 잔치를 벌이며 경계를 느슨하게 했죠. 그 결과 카산드라의 예언대로 트로이 성은 함락되며 기나긴 전쟁이 끝나고, 그녀 또한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첩이 된 채 끌려가게 됩니다.

<그림 2> 모건(Evelyn de Morgan, 1855-1919), 카산드라, 1898년.

마치 타로카드의 느낌을 주는 그림2 에서 카산드라의 뒤로 불타오르는 트로이 성과 문이 열린 목마가 보이네요. 거봐, 이렇게 될 거라고 했지, 하는 듯한 카산드라의 표정에는 체념과 원망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요.

조국의 멸망과 자신의 비참한 최후까지 예견하며 이를 모두 홀로 견뎌야 했던 카산드라는 뛰어난 미모 때문에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었던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됩니다. 미케네 왕궁으로 가는 길에 카산드라는 그녀의 마지막 예언이라고 볼 수 있는 말을 아가멤논에게 하죠. 미케네로 돌아가면 당신은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요.

<그림 3>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하는 카산드라, 그리스 도자기 그림, 기원전 430년경.

물론 아가멤논은 그녀의 말을 무시해버렸고 개선을 축하하는 잔치에 참석했다가 그날 밤에 아내인 클뤼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되고 맙니다. 카산드라 역시 그녀의 손에 죽게 되죠 그림3. 후대의 카산드라는 개혁 의지가 있지만 그것을 이루어낼 힘이 없는 비운의 선각자로 받아들여집니다. 어쩌면 마녀사냥의 희생자라 할 수도 있는데요. 공동체에 불행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용감하게 문제 제기하는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더 큰 불행을 막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에 대해 시끄럽게 떠드는 이들을 싫어하죠. 오히려 그의 입만 막으면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돼요. 어떤 메시지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으면 사실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반박을 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그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를 공격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저 사람은 정상이 아니니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엉터리라고 몰아가는 거죠.

만약 우리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기쁠까요? 특히 그 미래가 불행한 것이라면 절대 미리 알고 싶지 않을 걸요. 지금의 삶이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중인데, 굳이 미래를 먼저 보고서 나중에 겪을 불안감을 앞당겨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삶이 요동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카산드라같이 불길한 예언을 하는 이들은 공동체 안에 뿌리박고 살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겠죠.

카산드라의 예언이 트로이 사람들에게 먹히지 않았던건 여성적인 공명과 감성의 언어를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한 남성들의 심리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하기도 해요. 예언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직관에서 비롯되며 비유나 수수께끼처럼 모호해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이성적이고 명확한 논리 구조를 갖는 귀족 남성의 언어와는 확실히 차별점이 있다는 것이죠. 

<그림 4> 샌디스, 카산드라, 연도 미상.

카산드라는 합리성과 효용가치만을 강조하는 서구 문명의 일방적 폭주에 제동을 거는 역할로 재해석되기도 해요. 그림4 에서 그런 흔적이 보이는데, 뒷배경에 있는 네모반듯한 건축물들이 마치 규격화된 도시 문명을 상징하는 듯하죠. 물질만능주의에 의한 탐욕과 착취가 세계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하고, 카산드라는 이를 보고 공포를 느끼며 경계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 같아요.

이번 시리즈에서는 비록 사랑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죽음보다 더 잔인한 삶을 살았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예언자로서 세계 문명의 역사를 뒤흔든 발자취를 남긴 두 여성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행복한 사랑을 한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경험했었던 사랑은 어디선가 크게 흔적을 남기고 있을거라 믿고 싶습니다.

글 지혜만 대표 (주)빗경 대표, 비아이티살롱 대표, 한성대학교 한디원 미용학과 겸임교수, 지혜림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석사), 한양대학교 음악사(박사과정), 다수의 음악사 강의 및 칼럼 연재



에디터 이수지(beautygraph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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