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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노래 부른 독일의 싱어송라이터, 막시밀리언 헤커

조회수 2018. 12. 17. 11: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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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어전문잡지 그라피

막시밀리언 해커는 1998년 베를린에서 거리음악가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본격적인 음악 작업을 시작해 2001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데뷔 앨범인 <Infinite Love Songs>은 그해 <뉴욕타임스>가 뽑은 올해의 앨범 ‘Top-10’에 선정되며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3집 수록곡 ‘Everything Inside Me Is Ill’가 CF에 소개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많은 곡이 각종 TV 드라마와 영화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독일 뮤지션 막시밀리언 헤커(Maximilian Hecker)

한국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막시밀리언 헤커입니다. 베를린에 살고있는 독일 뮤지션이자 싱어송라이터예요. 2001년부터 독일의 음반사 키티-요(Kitty-yo)와 음반 계약을 맺어 전문적으로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2004년 한국의 레이블 파스텔 뮤직(Pastel Music)이 저를 초청했을 때였죠. 그 이후 저는 한국에 13번이나 방문하게 되었고요. 한국에 오면 콘서트에서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오기도 하죠. 대부분은 서울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네요. 보컬과는 별도로 제가 연주하는 악기는 피아노와 기타예요. 제 음악은 찬송가 같은 팝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제 음악 세계를 형용사로 묘사해보자면, 자장가 같은, 호화로운, 위로가 되는, 안정적인, 열정적인, 황홀한, 카타르시스적인 것입니다.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음악과의 첫 접촉은 부모님의 음반이었습니다. 대부분 클래식 음악이었지만 레오나드 코헨(Leonard Cohen) 같은 싱어송라이터의 음반도 있었죠. 제가 어렸을 때 배웠던 첫 번째 악기는 리코더 였고, 그다음으로 드럼과 피아노를 배웠죠. 기타는 1994년 미국의 록 뮤지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죽고 나서 그와 같은 음악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죠. 그 후에 커트 코베인이 소속되어 있는 록밴드 너바나(Nirvana)의 노래를 커버하고 싶어서, 저와 학교 친구들은 고향의 거리에서 버스킹을 시작했어요. 버스킹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죠. 나중에 베를린으로 이사하고도 취미로 버스킹을 계속했고, 그 거리에서 베를린의 음악 산업이 시작되는 걸 체감했죠.

본인 노래 중 가장 애정하는 곡은 무엇인가요? 지향하는 음악 세계관도 궁금해요.

제게 가장 소중한 노래는 자장가 같으면서도 찬송가와 같은 사운드를 가진 것입니다. 저는 보편적이면서도 유행을 타지 않는 음악관을 추구합니다. 평범하고 내재적이며 사소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제 노래로 예를 들면 ‘Lady Sleep’ ‘Untouchable’(Kastrup part II), 'Kastrup', ‘Hennigsdorf’, ‘My Wretched Love III’ 그리고 ‘Sea of Silence’(part I) 같은 곡들이 있죠.

막시밀리언 헤커는 얼마전 한국에서 사랑에 빠졌던 여성과의 이별을 회상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김세호 디렉터와의 만남이 궁금해요.

2016년 봄에 처음 그를 만났습니다. 그때 콘서트 프로모션을 위해 서울에 머물렀죠. 친한 친구에게 좋은 미용사를 알고 있는지 물어봤고, 김세호 디렉터를 추천받았죠. 그는 저와 제 음악을 잘 알고 있기도 했고, 저의 새로운 한국 헤어 디자이너가 되어줘서 정말 기뻤어요. 특히 저를 매우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직업에 대한 김세호 디렉터의 매우 전문적이고 순수한 접근, 독일 미용사들 사이에서 보지 못한 긍정적인 태도가 놀라웠어요. 김세호 디렉터는 지금까지 제가 본 중 최고의 커트를 해줬고, 아주 멋진 사진도 찍어줬습니다. 심지어 그가 찍어준 사진 중 하나를 최근 중국 투어 콘서트 포스터로 사용하기도 했죠. 그렇게 김세호 디렉터와 저는 첫 만남에서 친구가 됐습니다.

두 분 사이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번 잡지 사진 촬영을 위해 김세호 디렉터는 저에게 슬픈 분위기를 연출해보라고 제안했어요. 안 그래도 2개월 전 한국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가 결국 실연해 정말 큰 상처를 받은 상황이라 촬영할 때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촬영 당시 저는 김세호 디렉터에게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그 노래는 그 여성과의 시간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죠. 그 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을 때, 저는 실제로 울기 시작했죠. 이번 사진들을 보면 저의 실제 고통과 나약함을 보여주고 있어요.

평소 좋아하는 헤어스타일이 있나요?

김세호 디렉터가 디자인해주는 모든 스타일이 좋습니다.(웃음)

취미로 사진도 찍고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저의 아버지는 거의 40년 동안 아마추어 사진작가였지만 정말 프로페셔널 했어요. 자라면서 집안 곳곳에 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봤고, 사진을 인화하는 아버지의 암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요. 아버지는 저에게 이미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어요. 하지만 실제로 사진을 시작한 것은 아이팟을 구입했을 때였어요. 그때 ‘Hipstamatic’이라는 앱을 설치했고, 그 앱에서 제공하는 흑백 이미지들을 좋아했어요. 여기서 영감을 받아 흑백 사진만 찍기 시작했죠. 그런데 2년 전 독일의 프로모션 에이전시에서 저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꺼렸지만 인스타그램이 저의 사진들을 위한 훌륭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사진 촬영은 저의 취미 중 하나가 됐어요. 지금도 흑백사진들을 많이 올리고 있고요.

사진가 김세호와 함께

최근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올해 5월 서울에서 사랑에 빠졌던 여성을 만나기 위해 9월과 10월에 5주 동안 서울에 머물렀어요. 때마침 한국의 한 대기업에서 저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에 관심을 보여 방문하기도 했고요. 사실 지난 몇 달 동안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외국인이어서인지 그 여성, 그리고 회사와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슬프게도 저는 그 여성을 다시 만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김세호 디렉터와 함께 촬영하는 동안 제 무너진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죠.

한국 공연 때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저는 한국 가수 중 밴드 ‘넬’을 좋아하는데, 2015년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들은 그들의 노래 중 하나를 커버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베를린에 있는 집에 돌아갔을 때 인생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요. 또한 제 자신이 진짜 어른이 되었는지도 돌이켜보게 될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새로운 노래를 만들고 언젠가 한국에서 얻은 경험을 글로 쓰고 싶습니다.


에디터 김수정(beautygraphy@naver.com) 

포토그래퍼 김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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