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응급실 의사들의 '딴 짓'이 궁금하다

조회수 2021. 2. 25.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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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최근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직접 만든 응급 키트(가정용 구급함)이 '핫'하다. 50만원 모금을 목표로 개설한 크라우드 펀딩에는 24일 현재까지 680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누구보다 바쁜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언제 모여서 이런 응급 키트를 만든 걸까. 궁금증에 상품 창작자를 자세히 살펴보니 무료 건강 상담을 하는 ’닥터25’라는 스타트업이다. 바쁜 진료 업무에, 응급 키트 제작에, 무료 상담까지? 이들이 뭘 하는 의사들인지 궁금해졌다. 

-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닥터25’라는 스타트업 회사를 창업한 대표 최재영입니다. 응급의학과를 전공하였고 중환자의학과에서 전임의를 수련했습니다. 현재 해운대백병원 응급의학과 진료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출처: 닥터25 제공
최재영 닥터25 대표

- 가장 궁금한 것부터 여쭤볼게요. 응급의학과는 어디보다 치열하게 일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안 바쁘신가요? 지금은 응급실 근무를 안하고 계신지요.


”제가 욕심이 많아서(웃음) 병원 일과 사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병원으로부터 겸직 허가도 받은 상태이고요.


사실 창업 전에도 근무를 마치고 여가생활, 운동을 꾸준히 하며 바쁘게 지냈습니다. 워낙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하는 편입니다. 창업을 하고 나서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사업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응급의학과는 과 특성상 일할 때(on)와 쉴 때(off)가 확실히 구분이 되는 과입니다. 일할 때는 바빠서 사업 생각을 할 틈이 없지만, 일과 후 시간에는 사업 관련 고민도 하고 또 든든한 동료들이 있어서 서비스 운영에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창업을 혼자 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겁니다. 요즘은 오히려 병원에서 일할 때 사업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어 마음이 더 편하기도 합니다.“


-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응급실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경환부터 중환까지 정말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응급실은 중증도가 높은 환자를 우선으로 치료해야 하기 때문에, 가벼운 증상의 환자의 경우 먼저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치료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고, 이에 불만을 제기하시는 환자들이 많습니다.


사실, 많은 응급실 환자들이 현재 본인의 몸 상태와 증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응급실을 방문하시죠.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카페에서 검색을 하시고 잘못된 처치를 하고 오는 경우도 많고요.


병원 전 단계에서 환자들이 겪는 증상에 대해 전문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환자의 심리적 부분과 더불어 사회적 비용 감소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의사로부터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자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 그리고 스타트업 대표

최 대표는 닥터25를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건강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등산하다 넘어져 무릎을 다쳤는데 병원에 안 가고 집에서 처치해도 되나요?’ 같은 질문에도 의사들이 직접 빠르게 무료 상담을 해준다. 현재는 카카오톡 채널을 통한 상담만 가능하지만 3월말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출시를 앞두고 있다. 밤낮을 번갈아 일하는 응급실 업무와 사업을 병행해야 하는 탓에 “모든 멤버들이 밤낮없이 바쁘다”는 전언이다. 

- 대표님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응급의학과는 병원 마다 근무 스케줄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저희는 하루 2교대로 근무를 합니다. 6시40분에 기상해 씻고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출근을 합니다. 7시20분쯤 병원에 도착하면 전날 밤샘 근무한 동료에게 환자 분들의 상황을 인계 받고 진료를 시작합니다. 인계 받은 환자 분들을 한번 더 살핀 이후에는 직접 응급실에 오시는 분, 타 병원에서 전원을 오시는 분, 119 구급대를 통해 내원하시는 분 등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입, 퇴원을 결정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입니다. (일이 많아) 식사를 거를 때가 많지만 시간이 빨리 가서 나름 좋은 점도 있답니다.(웃음) 그렇게 오후까지 근무를 하다가 저녁 6시에는 저녁 출근을 한 동료에게 환자 인계를 한 후에야 퇴근하게 됩니다. 


저희는 타 과처럼 매일 매일 출퇴근을 하지 않고, 출근 하지 않는 날이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병원 근무를 할 때는 사업을 거의 하지 못하고, 출근하지 않는 날에 온전히 사업에 매진합니다.“


- 함께 일하시는 분들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현재 저를 포함한 5명의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시니어 앱 개발자, 홍보, 경영 담당 팀원이 있습니다. 멤버는 전문의 전공의 시절 의국 후배와, 군의관 시절부터 오랜 기간 함께 근무한 친구, 그리고 병원에서 만난 직장 동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년 4월 창업진흥원 주관 예비창업 패키지를 준비하며 멤버들에게 합류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모두 흔쾌히 승낙해 주어서 지금까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출처: 닥터25 홈페이지

- 무료 건강상담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어딜 다치거나 아플때 병원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어디 마음 편하게 물어볼 곳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죠. 요즘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직접 처치를 하시는 분들이 많아 잘못된 정보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경우도 있고요. 의사들이 직접 건강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용자분들이 빠르고 편리하게 궁금했던 사항들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다는 평가를 주고 계십니다.”


-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답변하기 힘든 고객 상담도 있으셨나요?


“아직까지 딱히 어려웠던 상담은 없었지만, 무릎을 다친 외국인 고객 상담이 기억에 남습니다. 등산 중에 넘어지며 무릎을 다친 케이스였는데 집에서 연고로 처치를 해도 되는지 문의를 주셨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영어 질문에 순간 모두들 당황하긴 했지만, 흙이나 오염 물질이 많은 외부에서의 상처의 경우 2차 감염의 우려가 있어 응급실을 방문하실 것을 안내드렸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의사소통 문제로 병원 진료 자체가 매우 큰 도전인 경우가 많은데, 저희 서비스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아주 보람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멤버들이 모두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죠.”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직접 응급 키트를 만든 까닭

출처: 닥터25 제공

- 최근에는 펀딩 플랫폼 텀블벅에 가정용 응급 키트 ‘우리집 미니 응급실’을 공개하셨어요. 10,000%를 훌쩍 넘는 달성률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런 반응, 예상하셨나요?


“펀딩 전날 밤이 떠오르는데요. 꿈에서 응급키트가 잘 팔리지 않는 악몽을 꿨습니다. 멤버들 모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사는 동네에서 길거리 판매라도 하자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예상치 못하게 많은 분들께서 좋아해 주셔서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후원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오랜 시간 준비한 만큼 믿을만한 키트를 전달드릴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 응급실 현장에서 근무하시면서 응급키트의 필요성에 대해 느끼셨다고요.


“욕실에서 넘어지면서 손목을 잘못 짚어서 심하게 붓고 통증이 심해서 내원한 분이 계셨는데요. 부목 처치를 하지 않고 오시다 2차 사고가 나는 바람에 손목 뼈가 심하게 어긋나서, 신경 손상 등의 합병증으로 이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부목을 이용해 잘 고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또, 단순 화상임에도 불구하고 한밤중에 응급실을 내원하셔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시는 경우도 있고요. 특히,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병원 안 출입까지 대기 시간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 필요성을 더욱 자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출처: 닥터25 제공

- 응급키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인터넷에서 ‘구급함'을 검색해서 보면 밴드와 거즈만 잔뜩 든 상품들이 대부분이라, 다양한 외상 처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정용’이 아닌 ‘산업용’으로 검색하면 그나마 구성이 다양하지만 10만 원이 훌쩍 넘더라고요. 저희 키트에는 찢어진 상처에 좋은 창상 밴드, 화상 입은 부위에 뿌리는 화상 스프레이 등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응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물품이 들어있습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다섯 명이 실제 병원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을 바탕으로 구성했어요. 구성품 회의만 석 달간 진행했을 정도로 고심했습니다.”


최 대표는 밴드나 거즈만으로는 응급처치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가정 내 처치를 못한 탓에 작은 부상에도 응급실을 방문해 오랜 시간을 대기한 뒤 드레싱(소독 후 붕대처치하는 것)만 받고 간다는 것. 키트에는 이를 개선하려 다양한 물품을 넣었다. 또 제대로 된 응급 처치를 돕기 위해 '팁 카드'와 QR코드 영상도 마련하고, 펀딩 후원자 의견에 따라 점자 스티커 무료 부착도 준비했다. 예쁜 디자인의 케이스는 덤이다. 


- 제작 회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물품 선정에는 ‘실용성'을 가장 중요시 여겼고, 그 결과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상처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제품들을 포함했습니다. (사실) 포함하고 싶은 물품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단가 문제로 포기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일반 밴드로 하느냐 방수 밴드로 하느냐, 습윤 패드의 사이즈를 작은 사이즈로 하느냐, 큰 사이즈로 하느냐 등 많은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제 가족도 쓸 수 있는 좋은 구성품이 나온 것 같아 만족합니다.”

“고령의 중환자 전용 병원 설립이 개인적인 꿈”

펀딩은 성공인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최 대표는 “후원자 분들께 응급 키트를 안전하게 전달드리는 것이 다음 목표”라고 답했다. 그럼 그가 꿈꾸는 최종 목표는 뭘까.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윤 추구는 기업을 운영하는 동력 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닥터25를 통해서 의료 정보 습득의 불균형과 그로 파생되는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닥터25 대표로서의 목표를 이야기하는 그에게 '의사 최재영', '사람 최재영'으로서 꿈꾸는 미래는 무엇이냐고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앞서 말씀드린 듯이 저는 중환자의학을 수련했습니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 가면서 요양병원에 환자분들이 많아지게 되고, 그렇다 보니 노인들의 몸 상태가 악화되었을 때 대학 병원 말고는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이 없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병상 수가 제한적이고 그 운영의 목적이 요양병원 환자만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요. 언젠가는 고령의 중환자 전용 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꿈입니다.”


황지혜 기자 hwang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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