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생,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조회수 2021. 2. 20. 09: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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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 그들이 기뻐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함께 눈물 흘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옳지 못한 일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법, 머리로 아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법, 그리하여 사람들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 임하영

2017년에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놀라움을 안겨준 사람이 있다. 임하영. 그가 스무 살 때, 내가 서른 살 때 우리는 만났다. 그는 존재만으로 우리가 가진 다양한 편견을 깨버리는 사람이다.


하영은 하루도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2020년 전까지는.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받은 교육은 유치원 때까지가 전부였다. 유치원도 잠깐 다니고 말았다. 6살 때부터 그는 집에서 여동생과 함께 홈스쿨링을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스쿨링'을 했다. 


홈스쿨링은 교과 과정과 유사하게 어느 정도 정해진 스케줄 내에서 집에서 교육받는 것이라면, 언스쿨링은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일, 하고 싶어 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그걸 가장 잘 아는 게 본인이란 생각에서 출발한 교육 방법이다. 


아이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어 원하는 공부를 찾아가고, 부모는 지시하기보단 옆에서 아이의 관심사와 호기심에 귀를 기울여주며 아이가 원하는 방향에 따라 돕는 역할을 한다.

세계 화폐를 모으던 어린 하영

하영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대신 주변 모든 것들로부터 배움을 얻었다. 독서와 토론을 통해 지식을 뛰어넘는 지혜를 배웠다. 자연에서 뛰어놀면서 곤충학자를 꿈꾸기도, 장수풍뎅이 분양 사업을 벌이기도, 주식투자를 해보기도 했다.


88일간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현지인들의 소파를 빌려 숙박을 하는 여행)과 거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홀로 유럽 여행을 했고,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나 고민이 생겼을 때는 인생의 멘토들을 찾아 나섰다. 15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뉴스를 접하기 위해 홍세화 선생님과 함께 불어로 르몽드를 읽는다.


이 모든 과정은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이 학교"인 언스쿨링 덕분인지 하영은 일찌감치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의 호기심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실행해보고 부딪혀본다. (홍세화 선생님과의 인연도 책을 읽고 용기를 내서 직접 보낸 메일 한 통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난해, 처음으로 그가 '미네르바 스쿨'이란 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이 학교조차도 범상치가 않다. 최근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 이제 막 새로운 시작점에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캠퍼스가 없는 학교에 입학하다

미네르바 스쿨은 어떤 곳이에요?


정말 독특한 학교인데 만들어진지 6년밖에 안됐어요. 작년에 첫 학부 졸업생이 나왔고요. 기존 학교와 가장 다른 점은 캠퍼스가 없다는 거예요.


학생들은 4년간 7개의 도시를 옮겨가며 생활해요. 1학년 때는 샌프란시스코, 2학년 때는 서울과 인도의 하이데라바드, 3학년 때는 베를린과 부에노스 아이레스, 4학년 때는 런던과 타이베이. 수업은 모두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요, 기업이나 정부, NGO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이건 오프라인에서 이뤄져요. 코로나 시대 전부터 100% 온라인 수업으로 디자인되었고요. 교수들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어요.


학생들 국적이 얼마나 다양해요?


이번 학년은 총 45개국에서 왔어요.

미네르바 스쿨의 강의 플랫폼 '포럼' 캡쳐 화면 | 출처: minervaproject.com

같은 학년 친구들끼리 그 도시를 살면서 경험할 수 있다니! 엄청나요.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갖게될까 부럽기도 하고요. 수업을 온라인으로 해서 불편한 건 없어요?


원래 온라인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런데 미네르바의 수업은 비대면이긴 한데 대면보다 더 대면 같아요. '포럼'이라고 미네르바 스쿨이 자체 개발한 강의 플랫폼이 있어요. 수업이 주로 토론으로 이루어지는데요, 학생 참여도에 따라 빨강, 노랑, 초록 색깔이 떠요. 


교수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에게 발언권을 주며 안내하기 위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의 느낌이에요. 포럼 플랫폼 안에서 구글 독과 프로그래밍도 가능하고요.

디지털 리터러시, 다양성, 지적 자극

코로나 시대 전부터 100% 온라인 강연이었다니 흥미로워요. 미네르바 스쿨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뭐였어요?


원래 정치, 경제, 사회에 관심이 많았어요. 예전에 유럽에 다녀온 이후로 "난 프랑스로 가야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작년 2월까지 불어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3월에 우연치 않은 기회로 실리콘 밸리를 열흘 동안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 열흘간 세 가지를 생각했어요.


첫째, 디지털 리터러시가 중요하다.

법과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변한 후에야 가장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끄는 건 기술인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선두에 서서 이끌진 못해도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과학이 진보하는지를 알아야겠다. 최소한 디지털 세계를 이해하는 문해력을 갖추자' 싶었어요.


둘째, 다양성이 있는 곳에서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저는 이질적인 것을 결합하면 혁신이 탄생한다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혁신이 가능하려면,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서 이질적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를 체험하고 싶었어요.


셋째, 나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시스템을 찾고 싶다.

물론 교육자 개개인도 중요하긴 하지만, 시스템 자체가 잘 설계된 곳을 찾고 싶었어요. 교수가 앞에서 강의를 하는 게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지만, 배우는 입장에서 효과적인 지식 습득 방법인지 의문이 있었어요. 배우는 사람에게도 지적 자극을 주는 정교한 시스템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어요.

학생 참여도에 따라 빨,노,초로 구분 되어 발언을 적게한 학생에게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 출처: minervaproject.com

위 세 가지 기준을 놓고 봤을 때 

1) 디지털 리터러시 - 학교 자체가 IT 기반의 스타트업 같은 학교라 디지털 리터러시를 잘 가르쳐줄 것 같았어요. 본사도 샌프란시스코에 있고요. 

2) 다양성 - 국적도 그렇지만 독특한 친구가 많아서 다양성은 최고인 것 같아요. 

3) 시스템 - 수업 최대 정원이 18명이에요. 미네르바 스쿨의 커리큘럼은 교수뿐만 아니라 뇌 과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어떻게 하면 학생에게 최선의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만들어졌어요. 시스템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워요.

내 인생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는 건,
나만의 서사가 있다는 것

처음 다니는 학교인데, 그 마저도 진짜 신기하고 실험적이네요.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불안했던 때는 없었어요?


많았죠. 나 자신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게 불안하고 성가실 때가 많았어요. 학교를 다니면, "어디 재학 중인 누구"라고 하면 한 줄로 끝나잖아요. 그런데 저는 주절주절 설명해야 했어요. 나의 과거는 어떻고, 부모님은 이렇고. 저를 의구심 어린 눈초리로 보는 사람도 많았어요. 10대 후반부터는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열심히 산 것 같기도 해요. 물론 지금 다니는 학교도 주절주절 설명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예요.(웃음)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제 인생을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더라고요. 나만의 이야기, 서사가 있다는 거니까요.


하영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직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원하는 게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스로의 삶을 설계해나가는 느낌이고요. 그 원동력이 있나요?


반대로 저는 제가 원하는 게 뚜렷한 지 잘 모르겠어요. 제 인생을 사람들은 멀리서 보고, 저는 가까이 봐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좌충우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의 진폭도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것 같고요. 


한 가지 행운으로 생각하는 건, 뭔가 고민이 있거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인생의 이정표로 삼을만한 선생님들이 옆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인생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생각할 때 그 조언이 큰 도움이 됐어요. 홍세화 선생님, 미국으로 데려가 준 최병천 보좌관님. 이런 선생님들을 찾으면 최대한 가까이 붙어 있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죠. 결정적인 때에 결정적인 사람들이 옆에 있었던 것 같아요.


눈 앞의 결정을 할 때는 한두 발짝 앞서간 선배들의 조언이 더 현실적인 경우도 많았어요. 좋은 선생님들과 좋은 선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최근에는 인생이 예측 불가능해서 계획하는 게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어요. 큰 그림은 그려놓되, 작은 선택은 유연하게 하자. 하루하루는 성실히 살면서 순간순간 찾아오는 기회를 붙잡고 인생 전체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자. 이게 요즘 저의 생각이에요. 나 자신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니까요.

어떤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뭐에요?


제 인생에 있어서는 재미와 의미란 키워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재미있게, 의미 있게 살고 싶어요. 인생은 한번 뿐이니까 내 인생을 살 때, 내가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공적인 일에 관심이 많아서 이 사회가 나아지는데 나의 존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내 삶이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하영님에게 있어 공부란?

제 책인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에도 썼지만, 나만의 물음을 발견하고 그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본인만의 관점을 갖는 것이에요.


누군가 가공한 정보나 지식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본인만의 관점을 가지고 사물과 현상을 탐구하는 게 중요해요. 예전에는 박사 학위를 따면 같은 내용을 몇십 년 가르칠 수 있었는데, 이제는 1년 안에도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이 됐잖아요. 평생 공부하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하영의 이야기는 '진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맞는 길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공부고,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와 선택이 모여 나만의 길이 완성된다.


하영을 보고 있으면 규정된 시스템에 속해 있지 않고도 얼마나 멋지게 성장할 수 있는지가 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다양한 편견을 깰 수 있고, 그래서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 소중하다. 


남들과 다르게 출발했지만, 또 새로운 시작점에 서서 멋지게 자기만의 길을 개척 중인 하영이 앞으로도 순항하기를! [글=정혜윤]


이것저것 하고 싶은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 사이드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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