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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탈탈 털려" 기자의 인공지능 면접 체험기

조회수 2020. 12. 8.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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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나오던 인공지능(AI). 하지만 이젠 스마트폰, 스피커, 자동차 등 일상에서 쓰이고 있다. 채용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개인의 직무 관련 역량을 평가해주는 ‘AI 역량검사’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해주는 역량검사는 어떨지 호기심이 생겼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AI 역량검사를 치르기 위해 경기 성남의 마이다스IT 본사로 향했다.


검사를 치를 방으로 들어가니 진행을 위해 필요한 기기(키보드, 마우스, 웹캠, 헤드셋)가 설치 돼 있었다. 헤드셋을 끼고 앉으니 화면에 웹캠이 비추는 기자의 얼굴이 나타났고 곧이어 본인 확인을 위해 시스템에 이를 등록했다.

AI와 영상 면접을 시행하고 있는 이현준 기자. 컴퓨터 모니터에 면접자의 얼굴과 질문, 제한 시간이 떠 있다.

AI 역량검사는 2018년 금융권 채용 비리 문제가 불거진 직후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비대면 전형’이 인기를 얻으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마이다스IT가 개발한 AI 역량검사 프로그램 ‘잡플렉스(JOBFLEX)’프로그램은 면접 전문가와 각 직군별 고성과자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빅데이터와 뇌신경 과학을 토대로 지원자의 미래 성과를 예측 및 판단하는 원리로 설계됐다. 


올해 포스코, BGF, 국민은행, 우리은행, 한미약품, 연세세브란스, 현대아산병원 등 내로라하는 기업 1천여 곳이 서류전형이나 인 · 적성 필기시험, 면접전형 등을 이것으로 대체하거나 추가했다. 

별 걸 다 묻는 AI 면접관

검사의 전반적인 순서는 사전세팅→영상면접→성향파악→전략게임→최종 제출로 구성된다. AI가 외모에 대한 평가를 내리진 않지만 해당 검사는 녹화돼 인사담당자에게 제공되므로 용모를 단정히 하는 게 좋다. 마찬가지로 밝은 표정, 또렷한 말투 등 역시 평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제 면접과 같다고 생각하고 응시하는 게 바람직하다.


얼굴등록을 마치니 검사 절차 안내 화면이 잠시 나왔고 곧이어 영상면접이 시작됐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원동기 등을 설명한 뒤엔 ‘상황 질문’이 이어졌다. 특정한 상황이 제시되면 이를 실제라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되는데, ‘나는 더 놀고 싶은데 친구는 집에 가자고 한다. 당신은 뭐라고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예상보다 난감한 질문에 생각시간으로 주어진 시간 60초가 짧게 느껴졌다. “음, 난 더 놀고 싶어. 한 시간 정도만 더 있다 가자. 가고 싶으면 먼저 가.” 대답하고 나니 너무 차갑게 말한 듯해 인성 부문에서 감점이 되는 것 아닌가 우려됐다. ‘예상보다 만만치 않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순서는 성향파악. 말 그대로 지원자의 성향을 파악하는 단계다. ‘사소한 거짓말은 쉽게 하는 편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거짓말도 필요하다’ ‘내 능력은 뛰어나다’ 등의 정답이 없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부터 ‘매우 그렇지 않다’까지 5지선다로 답하면 된다. 총 1백70개의 질문이 있었고 10개당 60초를 넘겨선 안 돼 시간이 다소 촉박했다. 


마이다스IT 관계자에 따르면 깊게 생각할 시간을 주면 지원자가 스스로를 거짓으로 포장할 수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한다.

게임으로 나를 평가한다고?

다음 차례는 AI 역량감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전략게임’. 총 10개의 게임이 제시되며 추리력, 기억력, 순발력 등 테스트 영역은 다양하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게임 규칙을 숙지해야 했는데,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아 미처 규칙을 다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규칙도 제대로 모른 채 게임에 임하기도 했다.


게임의 난이도도 생각보다 높았다. 정해진 횟수 안에 공을 예시와 같은 모양과 같게 배치해야 하는 등 난해한 문제가 많았다. 어떻게든 머리를 쥐어짜 답을 찾았다 싶으면 시간제한에 걸려 오답처리가 되곤 했다. 


뇌의 전전두엽 6가지 영역과 관련된 역량을 측정한다는데, ‘내 전전두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며 ‘멘붕’상태가 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공부를 못 한다거나 머리가 나쁜 것 같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건만.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불안해졌다.

탈탈 털렸지만... 객관적 평가 알 수 있는 기회

게임을 모두 마치고 녹초가 된 상태로 마지막 순서인 심층 질문(영상 면접)에 임했다. 여기서의 질문 역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인생의 목표에 대해 말하라’ 등과 같이 정답은 없는 문제다. 다만 깊이 생각해 답해야 하고 질문에 답하면 그에 대한 꼬리 질문이 이어지기에 거짓말을 하면 곤경에 처할 수 있다. 검사 막바지에 이르러 화면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보니 시작 때와 비교해 낯빛이 심히 어두워졌고 영혼은 반쯤 가출해 있었다.


‘밝은 표정을 지어야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실천할 순 없었다. 마지막으로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실패. 어쨌든 모든 검사를 끝냈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10분이었다. 얼마 후 검사 결과를 받을 수 있었는데, 마이다스IT 측 보안상의 문제로 일부만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의 경우 겸손한 태도는 장점이지만 어떠한 일을 목표한 기간만큼 꾸준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건 단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객관성과 겸손함 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직성에선 낮은 점수를 받았으며 보상보다는 성취를 추구하는 성향으로 진단받았다. 결과지에서 공개된 특성인 ‘호감도’에서는 평균이하인 B-를 받았는데, 자신감, 의사표현, 신뢰도 측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게 원인이었다. 영상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음이 분명했다.


게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정확성 · 속도 · 집중력 유지 부문에서 ‘낮음’ 판정을 받았다. 아마 게임 규칙을 숙지하지 못한 채 게임을 한 것과 ‘멘붕’에 빠져 게임 막바지엔 집중하지 못한 게 드러난 듯 했다. 전반적으로 낮은 점수. 그나마 ‘기자’ 직군이 없어 영업 직군 지원자로 설정해 검사했다는 게 다행이었다. 본 검사 결과는 기자로서의 역량을 평가하는 건 아니리라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

AI역량검사 어떻게 하면 잘 볼 수 있을까

결과는 썩 좋지 않았지만 AI 역량검사 자체는 긍정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70분의 시간동안 자신의 역량을 AI라는 객관적인 잣대 아래 펼쳐 보이고, 일반 기업 면접에선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결과에 대한 피드백도 비교적 자세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에서 쓴 잔을 마신 기자. 역량검사를 잘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궁금해 개발사 측에 질문을 던졌다.

Q. AI 역량검사에서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A. 특별히 어떤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하루 중 가장 좋은 컨디션일 때, 감정적으로 평온한 상태일 때, 그리고 주변 환경이 나의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는 환경에서 응시하는 게 좋다.


Q. 외모나 복장을 보나.

A. AI가 평가하는 건 아니기에 그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진 않는다. 외모보단 자신감 있는 태도와 밝은 모습이 더 중요하다. 다만 해당 인사담당자가 영상을 확인하므로 일반 면접과 같이 단정한 모습으로 응시하는 게 좋다.


Q. 응시 중에 욕을 하면 감점 되나.

A. 결과 신뢰도에 반영된다. 응시 음성 역시 녹음되므로 바른 태도로 응시하길 바란다.


Q. 말을 유창하게 하면 유리한가.

A. 답변 내용을 AI가 평가하지 않는다. AI가 확인하는 것은 지원자가 대면적인 상황에서 신뢰도와 호감도를 주는지의 여부이다. 결과 또한 영업, 마케팅, 경영지원과 같이 대면적인 신뢰도가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직군에게만 해당된다.


Q. AI역량검사를 위한 학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효과가 있나.

A. 아예 효과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잡플렉스 홈페이지에서 무료 · 무제한으로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굳이 돈을 들여가며 학원을 다닐 필요는 없다. 이것만으로도 검사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Q. 여러 번 보면 검사 결과가 향상 되지 않을까.

A. 학습효과는 없다고 보면 된다. 당일 컨디션이 중요하고 집중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치는 게 포인트다. 다만 전략게임의 경우 게임 방법의 숙지도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미리 AI역량검사 튜토리얼로 체험하고 보는 걸 권장한다. 이 역시 홈페이지의 체험판을 통해 예행연습을 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검사에 임하길 추천한다.


사진 조영철 기자

글 이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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