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꿈 잠시 접고..무명 예술인의 '코로나 일과'

조회수 2020. 11. 4. 15: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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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공연계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갑자기 없어지기 일쑤입니다. 특히 무명 예술인들에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무력감 속에서도 예술을 위해 버티고 있는 배우, 인디밴드, 스태프 등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저희만 힘든가요. 예술인의 숙명인가 봅니다”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연극배우의 ‘코로나 하루’

이른 아침 빵집에 출근한 김한 씨가 빵이 담긴 트레이를 트럭에 싣고 있다(왼쪽 사진). 최근 방역업체에 취직한 김주왕 씨가 방호복을 입고 사무실 스위치를 닦고 있다.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학과 4학년·김주왕 씨 제공

지난해 국립국단 시즌제 단원으로 뽑힌 배우 김한 씨(42). 매일 연습실에 가던 그는 이제 서울 마포구 집에서부터 경기 화성시의 한 빵집으로 출근합니다.


10월 21일 오전 6시 눈을 비비며 승용차에 오른 그는 동틀 무렵까지 1시간 20분을 운전했습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을 지날 즈음 김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서 얼마 전까지 공연했는데… 11월까지 꽉 찼던 스케줄이 줄줄이 끊겼습니다. 배우는 몸 쓰는 직업이라 사고 위험이 있는 장거리 운송 알바는 가급적 안 할 생각이었는데…”


오전 7시 40분, 빵집에 도착하자 하얀 근무복으로 갈아입은 그가 빵을 진열하고 포장합니다. 첫 손님이 들어오자 힘차게 “어서 오세요!” 하고 외칩니다. 배우 활동이 아예 끊긴 건 아닙니다. 오디션이 가뭄에 콩 나듯 열립니다. 김 씨는 “다행히 강릉에서 촬영하는 영화 단역을 맡아서 다음 주엔 오전 4시쯤 일어나야 할 것 같다”며 엷게 미소 지었습니다. 최근엔 충남 천안에서 마당극 공연도 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빵집 건물 6층 공장에서 빵을 받아 트럭에 옮겨 실었습니다. 매일 경기 화성과 인천을 오가며 다른 매장에 배달합니다. 일이 많을 때는 일주일에 2000km를 달리기도 합니다. 오전 11시를 넘겨 인천 남동구의 한 매장에 빵을 내려놓고 2차 배송이 예정된 화성으로 향합니다. 끼니를 챙길 시간도 마땅치 않다. 2차 배송이 끝나면 서울에 가서 저녁 알바를 해야 합니다.


“연기할 자리가 생기면 사장님께 양해를 구해 일정을 조율하는 게 더 힘들죠. 마당극도 사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입니다.”


오후 5시, 김 씨는 두 번째 직장으로 출근합니다. 한 달 전부터 서울문화재단의 예술인 공공지원사업에 뽑혀 극장에서 일합니다. 하루 8시간 언제 재가동할지 모르는 무대와 극장을 정비하고 일과를 마친 뒤 침대에 누우면 다음 날 오전 1시. 


그는 “예측조차 할 수 없는 공연계의 미래 때문에 더 힘들다”고 했습니다. 랜선 공연이 늘면서 배우로서의 정체성도 고민입니다. “10년 후에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돈을 바라면 못 한다는 일이지만…”

인디밴드 ‘트레봉봉’


인디밴드 트레봉봉의 드러머 김하늘 씨는 “경제적 어려움은 몸에 익었습니다. 관객을 못 만나는 상황이 더 힘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무대가 간혹 열리면 무대에 굶주린 이들이 모여듭니다. 올 9월 온라인 ‘인천 펜타포트 음악축제’에 설 수 있는 ‘펜타 유스스타’ 경연에 299개 밴드가 몰렸습니다. 1, 2등만 무대에 설 수 있어 경쟁률은 150 대 1이었습니다. 지난해 경쟁률은 20 대 1 수준. 트레봉봉 리더 성기완(53)씨는 “3등을 해서 기회는 놓쳤지만 뮤지션들의 절박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7년차 뮤지컬 배우 김주왕 씨


꿈 하나로 지금까지 왔다는 7년차 뮤지컬 배우 김주왕 씨(34)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외 할리우드 연예인 대상으로 운동 수업도 병행했지만 일이 끊기자 스크린골프장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스크린골프장 손님이 줄어 해고된 뒤에는 방역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산업용 마스크에 방호복 차림으로 공연장, 사무실, 헬스장에 소독약을 뿌립니다. 퇴근 후에는 뮤지컬 넘버 커버곡 유튜브 영상을 만듭니다. 현재 그가 예술을 이어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공연이 끊기면서 장기간 방치된 음향장비함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김병주 음향감독 제공

11년차 음향감독 김병주 씨, 2년 차 조명감독 이정수 씨


11년 차 음향감독 김병주 씨(32)는 넓이 90m² 남짓한 창고로 출근해 음향장비를 쓸고 닦고 점검합니다. 그는 “장비 상자에 거미줄 쳐진 거 처음 봤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사진도 찍었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원래 9월부터 연말까지 성수기지만 지금은 대출로 버팁니다. 2년 차 조명감독 이정수 씨(30)는 최근 대리운전을 시작해 오전 4시까지 일합니다. 그는 “이건 기본”이라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공연 현장에 일감이 생겨 충북 괴산에 1박 2일 다녀왔습니다. 집에 가면 씻고 바로 대리 뛰어야 합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UIC 경제학과 졸업

이지윤 인턴기자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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