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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모가 죄인가요" 탈모인 많은데 가발착용 쉬쉬, 왜 그래야 하나요

조회수 2020. 8. 24. 18: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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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 기자의 머리 숱이 갑자기 풍성해졌었다. 하지만, 그에게 머리 숱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다. 그가 가발을 썼는지, 모발 이식을 받았는지 궁금해할 수 있는 권한(?)은, 필자에게 없었다. 뒤늦게나마 평소 그가 모자를 즐겨 썼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탈모. 대한민국, 아니 전세계 남성들에게 가장 두려운 단어 중 하나다. 어느덧 40대를 맞이한 기자 주변에도 탈모에 신경쓰기 시작한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탈모인'을 만나 술 한잔할 때면 말은 늘 조심스럽다. '빠진다'거나, '매끈하다' 등의 단어는 금기어다.


이처럼 탈모인에게 가발은 당사자에게도, 그 주변인에게도 참 껄끄러운 주제다. 국내 가발 시장 규모는 연 1조 5,000억 원 정도로, 시장 선두권 업체 두 곳이 차지하는 연 매출 비중은 연간 1000억 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선두권 업체 두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별 소상공인들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 3위 업체마저 뚜렷하지 않았다. 가발을 원하는 수요층은 형성되어 있는데,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장인들이 가게를 꾸려가는 경우가 많다.


가발은 남성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가발 또는 탈모를 언급하는 것은 참 어렵다. 시장은 확실한데, 내세울 수 없는 아이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바로 헤어수트 매치(이하 매치)의 반은정 대표다.

헤어수트 매치 반은정 대표

반 대표는 가발을 '헤어수트'라고 말한다. 그는 가발을 쓴다라고 말하지 않고, 헤어수트를, 스타일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헤어수트. 단어 자체가 낯설다. 맞다. 낯설 수밖에. 없던 단어다. 반 대표가 매치를 설립하면서 자사 제품, 서비스가 추구하는 바를 곱씹으며 고민한, 신조어이자 브랜드를 뜻한다. 한번만 들어도 누구나 쉽게 연상할 수 있고, 매치가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위한 결과물이다. 


반 대표는 "헤어와 수트는 각각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뜻을 연상할 수 있죠. 매치가 추구하는 목표 역시 담아낸 단어가 헤어수트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출처: 매치 홈페이지

이제는 많이 사라진 문화지만, 첫 직장에 출근하며 소위 말해 꽤 좋은 정장(수트) 한 벌을 맞추곤 했다. 선택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달라진다.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사람은 보다 커 보이는 스타일을 선택할 것이고, 약간 뚱뚱하다 생각되는 사람은 날씬해 보이는 스타일을 선택한다. 즉, 자신에 맞는 정장을 찾는다.


매치가 추구하는 바다. 반 대표는 '헤어수트(가발)를 개개인마다 다른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입혀준다(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사람마다 다른 두상, 평소 추구하는 헤어스타일에 맞춘 헤어수트를 제공한다. 그래서 반 대표는 말한다. 쓰는 가발을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입는 헤어수트의 스타일을 제공한다고.


정장을 고르듯, 이제는 헤어수트


반 대표는 가발을 사용자가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일반적인 미용실과 이발소를 찾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한참 기억을 더듬던 기자는 '아니다', '못 봤다'라고 답했다. 머리를 자를 때, 옆 사람이 가발을 벗고, 머리카락을 깎은 뒤, 다시 가발을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반 대표는 "탈모인 스스로 일반적인 미용실, 이발소를 피합니다. 주변 시선이 따갑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발을 판매하는 국내 선두권 업체, 개인 매장 등도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에 있습니다. 4층 상가 맨 위층 구석에 있거나, 일반 주택에서 판매합니다"라며, "안타까웠습니다. 탈모인이 왜 주변 시선을 의식해 서비스 받을 수 있는 당당한 권리를 포기해야 하나요.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말이죠"라고 말했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탈모인 앞에서 금기어처럼 꺼내지 말아야 할 단어를 피해 대화하는 것 자체가 소리 없는 차별이고 편견이다. 그들도 일반인과 같은 경험, 사용자경험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매치와 협력하고 있는 마제스티 바버샵, 출처: 매치 홈페이지

이 같은 구조에서 매치가 선택한 것은 전문 바버샵(이발소)와의 제휴다. 반 대표는 고르고 골라,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프리미엄 바버샵, 마제스티와 제휴했다. 마제스티 바버샵은 현대백화점, 스타필드, 롯데백화점 등에 입점해 '남자의 품격을 높이는' 바버샵으로 유명하다.


또한, 매치는 스스로 인증한 헤어 디자이너와 협력해 헤어수트를 제공한다. 개개인에 맞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입을 수 있는 헤어수트를 스타일에 맞춰 제공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발사(마제스티 바버샵 등)라는 서비스 공급자와 헤어수트를 원하는 탈모인이라는 서비스 수요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다. 전국의 마제스티 바버샵은 현재 17곳으로 유명 백화점, 쇼핑몰 등에 입점해 있다. 국내 선두 가발 업체 매장은 전국에 60개 정도지만, 대부분 숨어 있다.


반 대표는 "지인이 나름 인정받는 업체의 대표입니다. 탈모 때문에 가발을 이용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뭐가 모자라서 이렇게 숨어 다녀야 하냐고. 매치가 바꾸고자 하는 사용자 경험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반 대표가 유럽 패션 분야 사업 투자자들에게 매치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 매치

스타트업 도전을 선택한 보잉사 임원


반은정 대표는 매치 준비를 2018년 7월부터 시작해, 2019년 2월 설립했다. 빠른 추진력이다. 사실 매치라는 스타트업, 헤어수트라는 아이템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반 대표의 이력이다.


반 대표는 공군사관학교 사관생도 출신으로 군수장교 대위를 거쳐 20대 후반에 전역했다. 사관학교 선배들로부터 안정된 군 생활을 왜 집어치우느냐, 군 출신 나가면 할 거 없다 핀잔을 들으면서도 "사회생활에 도전해 보겠다"라고 다짐했다. 


이어서 30대 초반엔 보잉 한국지사에서 부품 수급 업무를 맡아 최연소 임원으로 근무했다. 전세계 부품 수급체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외국어 커뮤니케이션도 적극적이어서 승진이 빨랐다. 국적, 성별 등 핸디캡을 안고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적지 않은 성취를 이뤘다.


더 올라갈 자리가 보이지 않았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자 새롭게 선택한 것이 매치다. 그는 "더 배우고 싶었고,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경험해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뷰티 사업을 선택했다. 스스로를 꾸미는 것이 좋았기에 사관학교에 못 갈 것이라는 주변 평가를 바꾼 경험이 이미 있던 그다. 미용, 뷰티를 선택한 배경에는 우리나라가 잘하고 있고, 앞으로 크게 성장할 산업이라는 분석도 거쳤다. 고민할수록 '할 수 있다'라는 자신이 넘쳤다고.


탈모를 겪고 있는 남성 연령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특히, 북미, 유럽 등에 탈모인이 많다.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 글로벌 진출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경쟁력을 인정받는 국내 뷰티 산업도 밑바탕이다. 반 대표는 "헤어수트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펼칠 수 있는 사업"이라고 자신했다. 


권명관 기자 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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